지하련의 우주/Jazz Life

금요일 오후의 캠핑

지하련 2022. 4. 24. 18:51

 

한 일이 년 열심히 캠핑을 다니다가 요즘 뜸해졌다. 그 사이 우리 가족 모두가 바빠졌다. 더구나 올해는 아이가 성당 첫 영성체 반에 들어가면서. 나 또한 아이와 함께 일요일 오전 시간을 비워야만 한다. 일요일을 끼고 갈 수 없어 결국 금요일 오후 캠핑을 가기로 했다. 아내는 직장과 학업으로 모든 것에 열외된 상태라, 나와 아이 단 둘이 가는 캠핑이었다. 아빠와 아들, 하긴 단 둘이 여행을 자주 다녔던 터라 별 이상할 것도 없다. 

 

오후 일찍 출발한다는 것이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늦게 출발하여 어두워질 무렵에서야 도착했다. 텐트를 치고 식사를 먹으려고 보니, 밤이다. 피곤했던 탓인지, 집에서 먹다 남긴 와인 반 병과 맥주 몇 캔을 마시고 보니, 취했다. 실은 내가 취한 지도 몰랐다. 나는 아이에게 이제 자야할 시간이라고 한 다음, 먼저 쓰러졌다. 그 다음 날 아침의 숙취 탓에 취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조금은 한심한 아빠가 되었다. 초등학생 아들은 밤늦게까지 혼자 불멍을 했다고 한다. 

 

금요일 오후에 출발하는 것이니, 캠핑장까지의 거리도 중요했다. 갈 수 있는 곳으로는 김포나 파주 인근이 적당하다. 그 지역이 아니라면 이동하는 데 최소 두 시간 이상은 소요된다. 막히면 기본 세 네 시간은 걸리고 그 시간 동안 운전을 해 캠핑을 간다면 최소 이박은 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할까. 상당히 피곤하다, 운전은, 캠핑은, 어디론가 떠난다는 건, 그럼에도 나는 이 도시가 싫다.

 

새로 생긴 캠핑장이라 시설은 깨끗했다. 하지만 새로 심은 나무에는 아직 이파리가 나오지 않았고(첫 해 나오지 않고 그 다음 해에 나오는 나무도 있다) 캠핑장의 구역을 나누기 위해 심은 작은 향나무 몇 그루는 말라가고 있었다. 잘못 심겨져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도시 근교 촌락, 논밭 한 가운데 자리잡은 듯한 인상을 풍기는 캠핑장으로 주위 풍광은 그닥 좋지 못했다. 캠핑장에 왔다는 걸 주위에 있는 텐트와 캠핑 장비로만 알 수 있을 뿐, 고개를 돌리면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마치 도시화의 밀물 앞에 선 농촌 풍경이랄까. 군데군데 마을이 보이고 작은 공장과 창고가 있는. 

 

그 동안 여러 곳의 캠핑장을 다녔다. 외진 산속에 있는 캠핑장이 좋다. 오래 되었지만, 관리가 잘 된 캠핑장도 괜찮다. 그러나 캠핑장 시설 관리는 쉽지 않다. 금세 낡는다. 매번 다른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와서, 각자의 방식으로 사용하다가, 애정 없이 대하다가, 일상의 스트레스를 쏟아내고 가거나, 또는 어떤 갈등이나 상처를 해소하러 왔다가,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는 곳, 그 곳이 캠핑장이다. 젊은 연인이 와서 꼭 껴안고만 잘 수 있는 곳이다. 딴 짓을 하면 안 된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크게 틀어서도 안 되고 술에 취해 돌아다녀도 안 된다. 코로나 이후 많은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어도 안 된다. 캠핑 장비로 서로의 경력을 가늠하며 장비 브랜드를 따지기도 하고 서로의 요리 실력을 뽐내기도 하다. 단연 압권은 마치 전쟁터에 나온 군인처럼 배낭 속에서 모든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를 만날 때이다. 대체로 혼자 와서 조용히 모닥불 앞에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어두워지면 자고 아침 일찍 떠난다.

 

 

캠핑장 안 주인은 베트남에서 온 여인이었다. 한글이 아직 어눌했지만, 열심히 이야기하려고 했다. 도리어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는 다소 불친절해보이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그 둘은 부부가 아니고, 그 여인은 캠핑장에 일을 하러 온 것일 수도 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농라와 대나무 모자를 쓰고 캠핑장 여기저기를 정리했다. 봄 햇살이 따스했다. 아침은 어묵탕에 햇반, 그리고 소세지였다. 밀키트가 워낙 잘 나와, 예전처럼 요리 재료를 미리 손질해 준비해올 필요가 없다. 바람이 불었다. 밤에 바람이 없어 텐트를 바닥에 고정하지 않았는데, 뒤늦게 고정했다. 오전에 철수할 예정이었지만. 애완동물을 데리고 올 수 없는 곳인데, 근처를 떠돌던 백구 한 마리가 들어왔다. 집을 잃어버린 백구는 캠핑장 안으로 들어와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몇 명이 나서서 먹을거리를 챙겨주었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애완동물을 호기심으로 키우다가 함부로 방치하거나 버리는 이들이 싫다. 

 

세면 시설 등이 관리가 잘 된 캠핑장에서, 적절하게 잘 갖추어진 텐트와 장비로 하루 지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다고 이 거대한 도시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러다 보니, 기회만 닿으면 캠핑을 가려 한다. 도시를 떠나 자연 속으로.  

 

 

어쩌면 우리의 영혼은 이 무분별한 도시화 속에서 황폐홰져 가는 것일 지도. 근대 문명이 만들어낸 도시는 먼 옛날의 도시와 다른 것이다. 지금의 도시란 운전자 도시다. "운전자 도시란 엄밀한 의미에서 도시라기보다 사적 실내 공간들 사이를 왕복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역기능적 교외일 뿐"이라고 레베카 솔닛은 말한다. 하지만 이 생각은 일부의 견해일 뿐, 현대인 대부분은 도시에서 살며 도시의 문명을 즐기길 원한다. 운전자 도시에서 제대로 살기 위해 카푸어를 마다 하지 않는다. 문득 내 모습을 떠올렸다,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을 읽으며. 

 

이 세상에 오래 살수록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르겠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록 나는 그 사람들을 잘 모르겠다. 내가 바보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 세상이 애초부터 바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투쟁하고 사랑하는 것일까. 

 

마장호수 인근의 기산골 캠핑장에서. 이 곳은 벚꽃 필 때 오면 좋다.

 

 

유식물원 캠핑장. 캠핑장 위에 사과농장이 있다.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정말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