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어느 일요일, 도서관

지하련 2022. 8. 29. 00:05

 

종종 나이를 잊는다. 내가 얼마나 나이가 들었는지 잊곤 한다. 아직 아이가 어리고, 내 마음도 어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아직 어리고 작기만 하다. 그래서 더 자라야 하고 더 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르는 것들이 아직 많고 계속 배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하지만 며칠 전 밤 11시까지 야근을 하고 들어와 혼자 소주 한 잔 했더니, 그 피로가 며칠 이어졌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늘 마음 뿐이다. 다들 그렇듯이.  

 

밀린 일들이 많아 일요일 출근을 해야 하는데, 하늘을 보자 그 마음이 사라졌다. 갑작스레 찾아온 가을 날씨는 어색하지만, 내 불편한 일상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렸다. 아이와 함께 아침 미사를 올리고 난 다음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최근 읽고 있는 올리비아 랭의 <<이상한 날씨 Funny Weather>>는 참 좋다. 올리비아 랭의 글에는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한국의 작가들에게는 그런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실은 그렇게 쓰기도 어렵다. 역자가 이동교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도서관에서 그녀의 다른 책을 빌려볼까 하다가 그냥 사서 소장하기로 한다. 좋은 책은 사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를 다 읽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그가 정년 퇴직을 하고 몸 담은 대학의 정치적 환경을 벗어났을 때부터라는 점은 늘 흥미롭다. 여기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언급된 글을 읽었는데, 어느 책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보수적인 대학 사회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대학 내 소수 학자였을 뿐이었다. 그가 대학을 나와 출간한 책들을 통해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학자와 대학교수와는 별 관련 없음을 지그문트 바우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대학교수들은 어쩌면 잘난 체만 할 줄 아는, 현실적 효용성은 상당히 떨어지는 정치적 전문가 집단으로 전락했다. 최근에 읽은 러셀 저코비의 <<마지막 지식인>>에서 줄기차게 언급되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바우만의 이 책은 상당히 좋지만, 딱 거기서 멈춘다. 왜냐면 불평등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제를 담은 책은 계속 나와야 하며, 많은 이들에게 읽혀야 한다. 그래야만 종말을 향해가는 이 자본주의의 무시무시한 돌진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을 테니. 

 

도서관에서 몇 권의 책을 빌렸다.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도 한 번 펼쳐보았는데, 나는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냥 나쁘지 않게 읽었다는 수준이었으니, 기억이 나지 않은 듯 싶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 리스트를 블로그에 올려도 재미있을 것같다. 간단한 평과 함께. 세 네권을 빌리면 그 중 한 권 정도 완독하는 수준이긴 하지만. 피터 자이한의 책 한 권도 빌렸다. 예전에 빌려 읽지 못하고 다시 반납한 책이었다. 

 

지정학이 중요해지는 시기다. 원래 지정학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하도 세상이 어수선해지니,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이미 미국의 패권주의가 무너지고 있으며, 이 상황 속에서 세계 정치, 경제 지형은 상당히 많이 변화하고 있다. 다만 그것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우크라이나 전쟁이 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향후 십년, 이십년 동안 세계는 다시 재편될 것이다. 이런 시기에 정치적 리더십은 더욱 중요한데, .... 한국의 상황이 상당히 안타깝다. 

 

저런 구름은 참 오랜만에다. 언제 비행기가 지나간 것일까.

 

파라솔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