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하련 2022. 10. 21. 20:56

 

아무도 아닌

황정은, 문학동네, 2016년

 

 

 

읽으면서 참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 세상은 소설가 황정은이 그리는 세상보다 더 끔찍하지 않은가. 언젠가 김서령의 소설집을 이야기하면서 한결같이 가난하거나 불행하거나 다 죽는다며 불평을 했다. 황정은의 이 소설집이 그런 식은 아니지만, 김서령의 소설들보다 더 끔찍하고 어둡다는 기분이 드는 건 황정은 특유의 문장 때문이리라(아니면 저 변하지 않는 세상 때문일지도).

 

무미건조하고 애정이 없는 문체(문장), 툭툭 던지듯이 서술되지만, 그 밑으로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숨어 흘러간다. 그러나 그 간절함은 오래된 지하수처럼 무겁고 차가우며 얼음장 같은 냉기와 함께 순간순간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그 안타까운 간절함마저 이야기 속에서 얼어 독자의 발 앞에 떨어진다(그 간절함을 들어올려 녹이는 건 독자의 몫이라는 건가).

 

소설이 끝나고, 그 이야기 뒷편에 우리는 남는다. 네가 남고 내가 남는다. 남은 우리는 브레히트의 싯구처럼 ‘살아남은 자들’인 셈이다. 살아남아 웃으며 오늘의 생을 챙긴다. 어쩌면 ‘살아남은 자들의 소리 없는 웃음’이라고 할까. 참혹한 비극의 주인공은 아닌, 그 옆을 살짝 비켜선 관찰자의 웃음. 그러나 이 웃음은 강제된 것. 그래서 어쩌면 이 웃음이야 말로 진실된 것. 역전된 웃음, 전도된 웃음, 슬퍼할 자유마저 잃어버리고 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박탈당한 채 쉼 없는 웃음으로 오늘을 버틴다.

 

짧은 단편 8개로 구성된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 하나하나 모두 묵직하고 끈질긴 서술로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무겁고 참혹하다. 그 참혹함 앞에서 나는 부끄러웠다. 고개 돌릴 곳을 찾아 소설을 집어 들었는데 소설가 황정은은 그 곳에서 고개 돌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소설가 황정은 (출처: 한국일보 2019년 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