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시를 쓴다는 것, 다니카와 슌타로

지하련 2022. 11. 27. 13:56

 

 

시를 쓴다는 것

다니카와 슌타로(지음), 조영렬(옮김), 고유서가

 

 

아주 오래 전에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집을 읽었다. 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첫 번째 시집에서 우주와 나를 노래하는 시를 읽으며, 이 정도가 되려면 타고 나야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이 인터뷰집을 읽으며 다니카와 슌타로가 시인이 된 건 우연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인이 아닌 그를 상상하기 어렵기도 하다. 짧은 인터뷰집이지만, 유쾌하고 시와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한때 내 꿈도 시인이었으니. 서가 어딘가에 습작하던 시절의 시가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오래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살게 되리라고 젊은 시절의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저도 뭔가를 쓰려고 할 때는 가능한 한 제 자신을 텅 비우려고 합니다. 텅 비우면 말이 들어옵니다. 그러지 않고 내 안에 말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판에 박은 표현으로 끌려가버리지만, 가능한 한 텅 비우면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어온다, 그런 느낌입니다. 호흡법과 닮은 데가 있는 듯합니다, 아마도. (45쪽)

 

텅 비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만큼 일상은 단조롭고 연락하는 이가 많지 않아야 된다. 나도 텅 비우고 싶은데, ... 언제쯤 이룰 수 있을까. 

 

 

시라는 것은 산문과 달라서, 의미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울림이라든지 이미지라든지 여러 가지 것을 동원해서 언어라는 놈을 전달합니다. 그러니까 무의미한 것을 시에 씀으로써 거꾸로 그 의미 이전의 세계를 만져서 느끼고 손으로 더듬어 ... ... 존재 자체의 리얼리티 같은, 뭔가 언어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느끼게 만든다. 그것이 시가 맡은 역할의 하나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12쪽)

 

그래서 시는 소리 내어 읽어야 제 맛이다. 그렇게 해야 제대로 시를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가끔은 술에 취해 읽어도 좋다. 

 

그렇다기보다 늘 현실에 노출되어 있고, 어떻게 대항해서 자기를 유지해가느냐, 그것이 아주 큰 문제이지요. 그러니까 자칫하면 우울해질 수도 있어요. 신문을 읽거나 하면, 다만 저는 기본적으로 '사회 안에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과 우주 안에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 이런 식으로 인간은 두 겹으로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데가 있습니다.

우주 안에 사는 존재란, 인간은 일종의 자연이니까, 그 자연 존재로서의 인간. 그것은 사회라는 단위가 아닌 곳에서 살 수 있다. 그렇게 말하면 될지. 이미 과거에서 미래에 걸친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기를 생각할 수도 있고, 도시에 벗어난 사막 안에 있는 자기,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자기의 활력' 같은 그러한 것을 소중히 여기며 '사회 안에서 정말로 트라우마가 되기 쉬운 사실이 잔뜩 몰려오는 것에 대항하자!', 그렇게 두 겹으로 생각하는 게 저에게 도움이 되는 점이 있습니다. 

저는 도쿄에 살고 있습니다만, 이제는 견딜 수 없이 자연 속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2~3일이라도 자연 속으로 가면, 역시 활력이 회복되어 몸에 스미는 느낌이 듭니다. (145쪽 ~146쪽)

 

몇 편의 시도 함께 실려있다. 다소 소란스러운 계절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읽을 만한, 좋은 책이다. 

 

 

다니카와 슌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