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일본산고, 박경리

지하련 2023. 3. 25. 08:41

 

 

 

일본산고日本散考

박경리(지음), 마로니에북스 

 

 

어수선하다.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 다만 한국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며(촛불을 들고 탄핵을 지지했다고 해서 근본이 바뀌진 않는다), 또한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져 온 진보와 퇴보의 순환 속에서 지금은 퇴보의 순간이며, 그것을 막기 위해 정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들이 여전히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에 그랬다. 바진의 <<매의 노래>>에 아우슈비츠가 날조된 거짓이라고 믿는 서독 청년 이야기를 읽으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데, 지금 한국이 똑같은 꼴이다. 

 

하지만 이것도 어쩌면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때문일 지도 모른다. 가짜 뉴스의 난무는 진짜 정보(진실)마저 사라지게 하며 가짜 뉴스를 믿는 사람들끼리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하며 서로를 부추기게 된다(에코 챔버 현상). 일제 식민지 시대 일어난, 상상하기 조차 싫은 아픔에 대해서도 말이다. 민주정치의 문제는 셈이 빠른 정치인들 대부분 선거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 그리고 당 지도부의 공천을 받기 위해 철학이니 가치니 나라의 미래 같은 저 멀리 던져버리는 정치인들과, 자기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그런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사람들까지.  

 

이런 점에서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드는 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시점에 박경리의 <<일본산고>>를 읽은 건 그냥 우연이라고 하기엔 ...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 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192쪽)

 

애초에 옆 나라끼리는 앙숙처럼 지내기 마련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독일 사람 싫어하듯이(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을 무시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 태도만으로 나라나 민족의 안위를 논하긴 어렵다. 결국 살아남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조선은 상당히 희귀했던 시대였다. 중국을 모셨던. 그리고 중국 사람들도 조선이 희귀했을 것이다. 자신들보다 중국 역사를 더 잘 알고 한자를 더 잘 하며 유학에 대해서 전문가 수준이니 함부로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걸 두고 나는 그 동안 조선을 높이 평가했다가, 요즘에서야 비로서 조선이 한반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가를 돌이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 성리학으로 인해 조선의 변화는 너무 느렸고 심지어 지금까지 조선에 대한 이상한 노스탈지어가 있는 걸 보면 한심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결국 옆 나라 탓을 하기 전에 자신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19세기 조선이 제대로 움직였다면 일본은 조선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1세기 넘도록 한국을 괴롭혔다. 

 

'철두철미 반일 작가'라고 이야기하는 이 책은 한 마디로 반일 메시지로만 꽉꽉 채워진 책이다. 원래는 살아 생전 제대로된 반일 책을 내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나마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돌아가신 후, 일본과 관련된 여러 기고문들을 모아 책을 낸 것이 바로 이 책 <<일본산고>>이다. 노년의 여류 소설가가 '반일'을 내세우며 씌여진 글 하나하나는 그 모진 세월을 견딘 <<토지>>의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문장들이다. 그만큼 일제는 우리에게 잊지 못할 상처와 수치를 남겼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애초에 역사관이 희박한 나라라서 신화 속에서 머문다.

 

한 사람 책임지는 자 없고 벌 받은 자 없는 그들에게 푼돈 얻어낸, 청풍당상의 그야말로 더럽혀지지 않았던 양반들, 차라리 그것은 희극이다. 혹자는 말하리라. 그 푼돈도 우리 발전의 밑천이 되었노라고. 그러나 자(尺)로는 잴 수 없고 저울로도 달 수 없는 가치도 있다. 그 가치로 인하여 우리는 인간인 것이다. (48쪽) 

 

일본의 다양한 측면을 살피며 일본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이 책은, 우리에게 일본을 제대로 알고 대처하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하지만 지금 정치나 외교를 보면 한숨부터 나오는 것은 일본에게 뭐라고 말하기 이전에 아직도 친일의 잔재가 남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창 밖에는 안개가 가득 실리어 산의 형체가 희미합니다. 내 마음에도 안개가 흘러들어옵니다. 자꾸만 짙어져 갑니다. 천지간이 모두 안개입니다. 동서남북도 없고 지상지하도 없는, 사유가 갈기갈기 찢기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허공무한. 알 수 없는 그 곳의 쉰 목소리. (133쪽)

 

어떤 분은 글쓰기 위해 원주로 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건 내게 사치스런 것이었습니다. 나는 인생만큼 문학이 거룩하고 절실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48쪽)

 

예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잊고 있었던 이야기. 박경리 선생의 사위가 시인 김지하였다는 것. 김지하 시인이 투옥된 후 홀로 고생할 딸을 위해 원주에 내려가 살았다는 걸 알았다. 이런 개인적인 내용까지 이 책에 실린 산문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의 군국주의는 에로티시즘과 그로테스크, 난센스, 그리고 황도주의(신국사상)라는 틀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입니다. 더 깊이 설명을 하자면 고지키(古事記)에서부터 에로, 구로, 난센스가 절정이던 에도문학을 거론해야 할 것이고, 기회가 있으면 내 소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28쪽) 

 

일본 특유의 분위기가 어디에서 연유되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일본은 앞으로도 계속 그 문화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니 개인적으로는일본인을 대할 때와 일본이라는 나라를 대할 때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라 전체적으로 탈역사적 공간 속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인간을 신으로 보시며 곳곳마다 신사를 두고 있으며 토속 신앙이 아직도 나라 전체에 드리워져 있는 나라. 그래서 이런 것들이 서사물로 나올 때는 참 흥미롭지만, 그것이 세속 정치나 외교로 넘어오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가 일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힘으로 형식으로 대부분 변질되었고 내세관은 가냘프게 연명한 것 같다. 그러나 가톨릭은 일본의 정신계를 뒤짚어 엎을 뻔했다. 순수하게 힘차게 하라키리(切腹)와는 전혀 다른 순교를, 그러나 시마바라(島原)의 난에서 가톨릭은 철저히 분쇄되고 전멸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하여간 일본에서의 죽음이란 어둡고, 어둡고, 어둡고, 캄캄한 나락이다. (53쪽) 

 

일본 신화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는데, 박경리 선생이 언급한 내용의 일부를 옮긴다. 많은 이들이 보았던 '나루토'라는 애니메이션에서 나왔던 무수한 단어들이 일본 신화에서 유래한 것임을 이제서아 알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고사기 신대편은 국토 기원에서 시작된다. 해월같이 떠도는 국토를 수리 고정하라는 천신의 명을 받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하늘 부교에 서서 창으로 바다를 휘젓는데 그 창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섬으로 변한다. 섬으로 내려온 두 남녀 신은 부부의 연을 맺은 뒤, 섬과 바다를 낳고 산천과 목석, 들판을 낳고 마지막에 화신을 낳다가 화상을 입은 이자나미는 죽게 된다. 망처를 그리워한 이자나기는 명부국으로 찾아가는데 이자나미를 바라보지 말라는 계율을 어겨 두 신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다. (35쪽) 

 

일본에 들어온 불교가 신도의 허약한 면을 보충해온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다시 말해서 양부신도라 하여 신불(神佛) 습합(習合)이 체계화되면서 대일여래의 위상을 아마테라스에게 옮겨놨는지, 또는 대일여래를 송두리째 옮겨놨는지, 만일 이 설을 인정한다면 불교전래 이전에 쓰여진 고사기의 부분 개작을 생각해 볼 수 있고 거의 행적이 나타나 있지 않는 쓰키요미를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 사이에 두게 된 것도 그간의 사정을 짐작하게한다. (38쪽)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생각했으나, 책을 다 읽고 나선 조선과 한국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은 일제 식민지 때 우리가 무슨 일을 당했고 그 이후로도 무슨 일을 당했는지 다 잊어버렸거나 잊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여 끔찍했다. IMF 구제금융이 일어나기 전, 한국은 급하게 일본에서 손을 내밀었지만, 일본은 매몰차게 거절했음을. 사법부의 재판 결과에 대해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정치의 원칙은 무시하고 반도체 수출 제제를 해버린 일을 잊어버린 것인가 싶다. 그리곤 그 품목에 대한 지원금을 삭감해버리는 일을 저지르는 작자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깊은 절망을 품지 않는다고 하면 너무 뻔한 거짓말이지 않은가. 정말 절망스러운 시기다.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먼저 욕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권을 잡은 이들 뿐 아니라 지금은 야당이 된 이들도 마찬가지다. 야당의 일부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야비해보이기까지 한다. 대장동에 대한 거짓된 소문을 퍼뜨린 것도 그들이고(검찰은 좋은 먹잇감을 발견하였고), 아직도 그들의 리더를 밀어내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참 형편없다.

 

이러다가 정치 냉소주의에 빠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이 나라는 퇴보 중이다. 그리고 얼마나 퇴보해야만 정신을 차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박경리의 <<일본산고>>는 작지만 단단하다. 노년의 작가가 분노를 숨기지 않으며 일본에 대해 쓴 글들을 읽으며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경리(1926~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