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많은 생각에 휩싸였다.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한국 사회에 대해서. 결론도 없지만, 더구나 결론을 내리기에 이제 남은 생도 얼마 되지 않으니까. 최근에 읽는 책들을 보면,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원래 그래왔던 것들, 그렇게 기록되지 않았던 옛날부터 내려온 어떤 것들이 층층히 쌓여 온 것임을 깨닫곤 절망한다. 오래 외국생활을 한 친구에게 아직 한국은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타자의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볼 때마다 느끼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한 조직에서의 승진이 정치적 역량으로 결정되는 모습에 이젠 포기했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 또한 답답함을 느꼈다.
2.
시간이 지나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고 낯선 곳을 향한 도전보다는 예상가능한 여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퇴보나 후퇴라는 것도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임을 알았다. 변화와 도전이 절대명제라고 여겼던 적이 있었고 지금도 그래야 된다고 믿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가령, 기만적인 언론들은 한국의 인구가 줄어든다고 호들갑이지만, 정부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하지만, 인구가 줄어들 때가 되었기 때문에 줄어드는 것이다. 각자가 원하는 삶의 기준이 다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그 기준으로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기엔 확실히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인구는 줄어드는 것이다. 현재의 인구 규모를 계속 유지하려면 한국 사회 특유의 폭력적인 경쟁 구도와 승부, 비교 등을 버리는 교육과 함께 확실한 부의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쉬울까. 반대로 그러한 정책을 강력하게 집행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도 그들 나름대로 문제가 없는 걸까 하고 따져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확실히 그들이 겪는 문제들은 우리 사회와 비교하자면 너무 사소한 것들이다.
3.
나는 문재인 정부가 결국 실패한 정부라고 여기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들 중에 차기 정권을 만들지 못한 것이 가장 크다. 부동산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으며, 홍남기 경제부총리와의 제대로 된(성공적인)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했으며(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능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인사 - 검찰총장, 감사원장 등 - 에 대해선 아직도 제대로 된 반성이나 성찰을 못하는 듯하다.
이에 반해 나는 현 정권에 대해 불만이 없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고 이미 이런 모습은 충분히 예상되었으니, 도리어 그 절망적이었던 예측보단 외부의 변화가 더 심해 이들의 무능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실은 뭔가 제대로 된 큰 일을 계획하거나 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대선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고를 가지지 못한 채, 자신의 이익이나 감정으로 투표를 하는 국민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가야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박근혜 정부 때 경험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냄비와 같은 기억력으로 투표를 하는 이들을 이해하기 어려울 뿐이다. 되도록이면 그런 사람들과는 멀리 떨어져 지내야 된다. 이야기하는 순간 혈압이 오르기 때문에.
4.
세계사 어디에서 같은 민족, 같은 마을 사람들을 노예로 부렸던 나라는 없다. 그것도 상속이 되는 노비. 중국은 노비와 양민의 구분이 거의 없을 정도 였다. 그냥 양민이 노비와 같은 생활을 했으며, 노비로 10년을 지내면 다시 양민으로 돌아왔다. 세습 노비는 없었다. 하지만 고려 시대 노비법이 법제화되었고(이를 원나라가 없애려고 했으나 실패함), 조선 시대 들어서 더 잔인해졌다. 종부법 대신 종모법(어머니를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이 실시되었으며, 좀 산다는 집안은 수십 명에서 수백 병의 노비를 부렸고 자녀들에게 상속되었다. 말이 수백명이지, 그 당시로 보자면 두 세 마을이 그냥 어느 집안의 노비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황당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똘아이같았던 지식인들은 실리적인 입장으로 외교 정책을 펼쳤던 광해군을 내려앉히는 인조반정으로 왕을 끌어내린 후 청나라와 한 판 붙는다. 똘아이같았던 선조는 한양을 떠날 때 만주로 가서 제후로 살 생각을 했다. 선조의 자녀들도 똘아이들이어서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류성룡과 이순신이 아니었으면 그 때 조선은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선조 이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영조나 정조 때의 반짝했던 시기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정조 때는 그냥 천재에 가까웠던 정조의 개인적 역량으로 조선이 지탱되었던 것일 뿐이다. 똑똑한 지식인들(실학자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정치에서 거리가 있었고 중앙 정치에서도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때를 떠올리면 참 슬플 뿐이다. 어쩌면 그 당시 유입되었던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성리학 대신 양명학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지식을 받아들였다면 세상은 다시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막은 쓰레기들이 바로 양반이라고 하는 작자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대착오적인 사상에 물든 채 자신들의 이익만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주요 언론사 간부들 대부분이 강남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강남에 거주한다고 해서 그들의 생각까지 폄하해선 안 되겠지만, 일반 서민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걸 왜 그렇게 모르는 것인지, 나는 알 턱이 없다. 언론에서 읊어주는 대로 받아적고 외우고 그렇게 생각하여 판단하는 현대판 노비들을 보면 한심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아직도 조선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고 있으니... )
소설가 박경리는 일본이 천주교를 제대로 받아들였다면 현재의 일본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도 천주교는 혁명적인 세계관이고 신앙이었다. 어떻게 노비와 양반이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을까. 이 당시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해있었던 교황은 조선에서의 천주교 신자들의 활동으로 용기를 내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니, 우리에게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개항 요구가 있을 때 그냥 일부 지역이더라도 개항을 해야 했다. 신미양요를 조선의 전략적 승리라고 하지만, 미군은 3명 죽고 조선 병사는 344명 이상이 죽었다. 그냥 이렇게 보자. 서해안은 그냥 갯벌이다. 물이 들어와있을 때 배가 들어오면 물이 빠진 후에는 나가지 못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344명의 전사자가 있었다.
5.
소설가 가브리엘 마르께스는 어느 글에서, 슬프고 슬픈 남미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호소하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온 어느 흑인 젊은이의 이야기를 적었다. 그 젊은 대학생은 미국 CIA에서 주도한 장학 프로그램(가령 풀브라이트 장학생 제도 같은)으로 미국 대학으로 유학을 왔다. 하지만 자신의 유학 생활이 다소 황당하고 고국에 있는 사람들 걱정과 미안함으로 뒤범벅이 된 채 기숙사에서 떨어져 자살을 했다고 전했다. 20세기 중반 냉전이 그 절정을 다다를 무렵, 미국은 그들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제 3세계에 나쁜 짓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지금도 참 많이 하고 있다. 그들 내부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 몇몇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개박살이 났다. 그들에게 기축통화인 달러는 정말 유용한 (정치적) 무기다. 이 무기에 당한 국가들은 기축 통화 체계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기를. 그 반감을 가진 국가들 - 중국, 프랑스 등 - 도 미국 패권주의가 싫은 것이다. 국가는 자선 단체가 아니다. 패권국가들은 정해져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터키, 이란, 중국 ... 한 때 세계적인 파워를 가졌던 국가들이고 미국의 패권이 언젠가는 그 수명을 다할 테니, 그 때는 자신들의 제국이 시작된다고 믿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의 리더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6.
조선 시대 사람들 대부분은 노비였다. 심지어 그들은 민란을 일으키기도 조선의 임금이 이를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라가, 정부가, 책임있는 담당자가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다. 꿈 깨라. 그렇지 않다. 너 스스로 살아남아야 된다. 양반들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나라도 팔아먹고 일가친척도 팔아먹었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우는 것은 모두 바람직한 케이스만 다루기 때문에, 임진왜란 이후부터 나라가 어떻게 무너져갔는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지금 퇴보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한 쪽에서는 K팝, K만화, K .. 해대면서 국뽕을 넣고 있으니, 뭔가 제대로 되고 있다고 믿겠지만, 아직 멀었다.
하긴 이 정도까지 온 나라는 전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 되지만, 우리의 문화나 시스템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 그러니 계속 도전하고 변해서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7.
잡담이 길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할 일이 별로 없고 동료와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느 순간 나만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다.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이 드물고 깊이 있는 내용까지 건드려 가며 이야기할 벗이 없어졌다. 최근에 읽고 있는 어느 책에선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 시작된 '이자'(화폐의 시간 가치)를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리오 휴버만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에서 언급된 금융의 역사가 유럽 르네상스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금융가들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 문명이 시작될 때부터 금융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요즘 자주 혼자 지내는 것과 죽는다는 것, 변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지나간 사랑이나 한때의 꿈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지만, 그건 이제 돌이킬 수 없으니, 그저 편하게 지내길 바랄 뿐이었다. 그냥 쓸쓸하고 슬플 뿐이다. 어차피 미래는 정해져 있고 그저 성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이 몇 천 년후의 우리들에게 감동적인 이유는 정해져 있는 미래(운명) 앞에 서서 당당히 맞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인간의 존엄을 알렸기 때문이다. 내 몸을, 내 마음을 구성하고 있는 무수한 양자와 원자들이 어떤 이유로 나로 형성되었는지 나는 알 턱 없지만, 나는 어느 순간 입자들의 집합이 되었고, 저 우주 끝에 있었을 지도 모든 양자가 여기로 와서 입자가 되었을 것이고 그 때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운명은 정해졌을 것이다. 다만 그 운명 앞에서 슬퍼하고 아파하고 지금 후회하고 있을 뿐이지만.
시간은 짧고 짧다. 그러니 현재를 즐기고 최선을 다해야 된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그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도전하고 도전하여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도전의 측면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시공간이니까.
8.
아, 이제 혼자 어떻게 캠핑을 다니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