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Klara and The Sun
가즈오 이시구로(지음), 홍한별(옮김), 민음사
클라라는 조시를 위해 자기 나름의 방식을 찾아 돕는다. 클라라에게 햇빛이 자양분이듯, 햇빛을 향해 조시를 낫게 해달라고 빈다.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노력한다. 실은 이것도 일종의 프로그래밍일 텐데, 이것을 풀어내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관찰과 학습을 통해 클라라는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자신만의 성찰로 조시에게 바람직한 행동을 하려고 노력한다.
"이봐, 네가 아주 똑똑한 에이에프일지 몰라도 네가 모르는 게 많아. 너는 조시 쪽 이야기만 들으니 전체 그림을 못 본다고. 조시는 엄마만 가지고 그러는 것도 아냐. 항상 날 함정에 빠뜨리려고 해." (212쪽)
하지만 한계는 분명하고 인간과 비교해 속도마저 느리기만 하다. 그러나 클라라에게는 모든 것이 진실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잘못된 것일 지라도, 클라라에겐 모든 것들은 진짜다.
"조시가 좋아지게 해 주세요. 거지 아저씨한테 한 것처럼요." (244쪽)
클라라의 입장에서 씌여진 이 소설은 클라라의 눈으로 관찰되고 서술된다. 그런 측면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표현은 참 흥미롭기만 하다.
이렇게 해가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는 운좋은 날이면 나는 얼굴을 내밀어 해가 주는 자양분을 최대한 많이 받으려 했다. (12쪽)
인공지능에 대한 사람들의 많은 관심 아래에서 가즈오 이시구로가 선택한 것은 무엇일까. 해답이 제시되지 않지만,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이 바라보고 해석해내는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결국 이 세계는 하나의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까지 포함된 다양한 해석들이 공존하는 곳이니 말이다.
"말씀하신 마음이요." 내가 말했다. "그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방이 아주 많은 집하고 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에이에프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방들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차례로 신중하게 연구해서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아버지도 옆길에서 끼어들려고 하는 차에 경적을 울렸다.
"하지만 네가 그 방 중 하나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방이 있다고 해봐. 그리고 그 방 안에는 또 다른 방이 있고. 방 안에 방이 있고 그 안에 또 있고 또 있고. 조시의 마음을 안다는 게 그런 식 아닐까? 아무리 오래 돌아다녀도 아직 들어가 보지 않은 방이 또 있지 않겠어?"
나는 이 말을 잠시 생각해 본 다음 대답했다. "물론 인간의 마음은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한계가 있을 거예요. 폴 씨가 지적인 의미로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배워야 할 것에는 끝이 있을 겁니다. 조시의 마음은 방안에 또 방이 있는 이상한 집을 닮았을 수 있지요. 하지만 이게 조시를 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저는 최선을 다하겠어요. 제가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321쪽 ~ 322쪽)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은 언제나 추천할 만하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처럼 '대가의 경지에 도달한 장인'인 듯 싶다. 사소한 것들도 참 맛깔나게 서술하고 표현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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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인공지능 친구인 클라라에게 인격화되어 감정적인 대상이 될 때, 사람은 수명이 다한 에이에프를 버릴 수 있을까. 기계로서 에이에프는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가 있을까. 강아지나 고양이는 감정적인 교류를 한다(내가 키우지는 않지만). 하지만 클라라는 조시와 감정적인 교류를 한 것일까. 클라라의 목적은 조시의 건강을 향해 있지만, 조시에게 클라라는. 감정적인 동물로 사람은 감정적인 교류의 대상으로 에이에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어쩌면 인간은 감정적인 나락으로 빠질 지도 모르는 생각이 책을 읽은 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건 소설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자동차에게 빠질 수 있지만, 그건 사람의 일방적인 애정이다. 그러나 그 양상이 달라졌을 때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