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영화, 혹은 시네마

<<서울의 봄>>을 보고

지하련 2023. 12. 27. 19:55

 
 

 
 
성탄절 연휴 때 아들과 <<서울의 봄>>을 보았다. 그냥 보고 난 다음 생각을 메모해본다.
 
1.
지금 60대는 80년대에 이십대 청춘을 보낸 이들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기사들을 보면 이들 대다수가 현 여당(국민의 힘)을 지지한다. 그들이 그들의 청춘을 어둡게 만들었던 신군부 세력의 정치적 후배들을 지지한다. 나는 그것에 심한 절망감을 느꼈다. 심지어 80년대 반정부 민주화 투쟁으로 젊음을 불태웠던 이들 중 일부는 신군부 세력의 정치적 후배들이 되었다. 더 나아가 뉴라이트의 핵심 주축이 되었다. 
 
2. 
어쩌면 이것은 한국인 특유의 <관계주의> 성향이 개인 삶의 일관성이나 자신을 증명하는 세계관이나 가치, 철학을 한 번에 내팽개칠 수 있는 문화적, 심리적 토대를 형성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것이 심리적 변명으로 작용하여 보다 쉽게 하도록 만든 건 아닌가. 더 나아가 반대편 정당을 오가는 정치인을 두고 '철새'라고 하는데, 그냥 애초에 한국인들 자체가 '철새'가 아닐까. 냄비근성이 아니라 그냥 삶이나 인생을 관통하는 일관성이나 철학, 신념 같은 것에는 애초에 무관심한 관계주의적 철새들이 아닐까. 
 
3.
하지만 나는 한국인 특유의 <관계주의> 성향이 상당히 희박한 개인이라, 안타깝게도 이들의 변심, 변절, 또는 망각을 이해할 수 없다. 동일하게 지난 대선에서 자신만만하게 2번을 찍고 지금 그 지지를 거두고 비난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에겐 자신의 정치적 성향, 믿음, 신념은 없는가?  어쩌면 한국인 대부분에게는 정치적 성향, 믿음, 신념 같은 걸 논할 수 없는 건 아닐까(이렇게 내 정치적 냉소주의는 깊어만 간다).
그런데 왜 그들은 정치를 이야기할 때면 흥분하며 자기 주장을 해대는 것인가. 
 
4.
2030 세대가 이 영화 <<서울의 봄>>을 많이 보았다는 사실은, 어쩌면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고 추측을 했다. 아니면 그냥 볼만한 영화가 없었고 <<서울의 봄>>이 짜임새 있게 잘 만든 영화이기도 하고 황정민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기에 본 것일지도 모른다.
 
하긴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한참 KBS, MBC 등 공중파를 통해 방송되고 있을 때에도 사람들 대부분은 신군부의 정치적 후배들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은 한국 민주화 운동에 치명상을 남겼다. 이 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합당에 반대하여 탈당하지만.
 
문민정부 때 하나회는 해체된다. 고 김영삼 대통령이 시작하였으나, 하나회로 인해 유무형의 차별을 겪었던 이들이 더 나아가 군 내에 하나회 출신들의 권력을 없앴다. 하지만 지금 보니, 하나회 같은 조직들이 한국 사회에 한 두 개가 아닌 듯 싶다.
 
5.
내가 최근 19세기 조선에 대한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는 것은,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19세기의 그 황망함, 무력함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민란의 시대가 되었으며, 그 민란으로 죽은 사또(지방관리)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왜 우리의 녹두장군은 그렇게 관아로 끌려갔는지 정규 교육 과정에선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역사 교과 선생님이 흥분하며 이야기하더라도 그 때 뿐이다. 어떤 이유로 영정조 르네상스 이후 급작스럽게 조선이 몰락했는지, 그렇게 몰락하여 국가 시스템이 붕괴되어 직접적으로 일제 식민지로 연결되었는가, 그리고 대다수의 조선말 지식인들이 일본의 지배를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지지하게 되었는가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조선 시스템의 붕괴, 정치/경제의 낙후성, 신분제에 익숙한 민중들로 인해 결과적으로 일제 식민지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현재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대한제국 고종 황제와 일본의 메이지 천황의 나이가 같은 것도 모를 것이다(둘 다 1852년 생이다. 정확히는 고종이 몇 달 앞서 태어났다). 그러나 대한제국과 일본의 운명은 달랐고 일본은 그 당시 아시아에 유일했던 서구 열강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 러시아 함대를 격파했을 때 유럽 국가들의 충격은! 
 
자세히 알진 못하나, 어쩌면 일부 학자들의 식민지 근대화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정도로 조선이라는 국가는 무능했고 후진적였으며 개화개방을 하더라도 그것을 주도적으로 수입하여 성장할 토대가 없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십대 후반의 젊은 안창호가 한일합방 무렵에서야 비로소 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실은 그 전까지 조선 민중의 수준이 조선 시대 성리학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며, 개화개방이 되더라도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능력도 그것을 주도할 능력도 없었다. 실은 그들 대부분이 노비 신분이였거나 수백 년 동안 노비 신분으로 지내다가 겨우 양반 신분을 구했던 이들이었기도 했다.
 
6.
일본은 믿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소설가 고 김동리 선생은 일본 국가/사회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가 <천주교>의 유입이었다고 말하며, 그 이후 일본 국가/사회는 자신들이 변할 수 있었던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현재 일본 천주교회에는 한국인 신부들이 가서 성당 운영을 도와주고 있다. 신자수가 거의 없고 신부도 없다.
 
이와 비슷하게 조선도 <천주교>의 유입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으나, 너무 정치적이었던 탓에(신분제 철폐, 국왕의 권위 부정 등) 말할 수 없는 박해를 당하게 되었다. 성리학 시스템은 조선을 지탱하던 정치체제와 신분제 등과 너무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었던 탓에, 지배계층인 양반 뿐만 아니라 평민들도 성리학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유래한 <기독교>는 시작부터 비정치적이었으며, 지배계층으로부터 전파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7.
미 정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중에 한미일 군사동맹을 제의하였으나, 그는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지만, 일본은 아니다”라고 회신했다. 일본 사람들 대부분 몰역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가진 장점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향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굳이 이것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나 민족에게 개입할 때, 문제가 될 뿐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서구 제국주의적 사고로 조선을 근대 식민지화시켜야 된다고 믿었다. 그 연장선상으로 안창호 선생을 만나 '안창호 내각'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의 조선에 대한 연민은 마치 서구 열강이 마치 식민지 국가에게 하던 식의 방식으로, 열등한 민족을 개화시켜야 된다는 것이었지만, 그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 때는 다윈과 우생학의 시기였다. 만국박람회 때 조선인은 전시되었다. 실은 지금도 일본의 정치 리더들이나 지배층들은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어떻게 해서든 이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 이미 삼성, 현대, LG가 일본 기업을 능가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1인당 GDP는 엇비슷하고 실질적인 구매력에서는 일본을 넘어섰는데도 불구하고. 매년 반복적으로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하며 속 마음으로는 양안전쟁(중국-대만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들이 다시 다른 나라를 침략할 수 있는 국가가 되길 희망하고 있는 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이것저것 양보하고 있는 정당이 바로 신군부의 정치적 후배들이며, 그들이 옹립한 리더다. 
 
8.
영화는 재미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너무 놀라웠고 빠르고 긴박했던 스토리 전개로 관객의 몰입도는 상당했다. 하지만 그 뿐이다. 내 정치적 냉소주의는 너무 심각해서, 스스로도 반성하지만, 쉽지 않다. 나도 이제 미안한 어른이 된 것같아, 늘 아이에게 부끄럽기만 하다. 
 
이게 영화 리뷰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을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