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나가 첫 월급을 받으면 내가 사고 싶었던 책과 음반을 사게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공부보다는 원하는 책과 음반에 꽂혀 직장 생활을 하던 형을 알고 지낸 적이 있었다. 방 한 쪽 벽면 전체가 LP와 CD로 채워져 있고, 그 옆으로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이 놓여 있었다. 작가가 되는 것보다 원할 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자유가 더 나아보였던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 때 꿈이 있었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굳게 스스로에게 말하는 그런 꿈.
그리고 나 또한 한 때 꿈이 있었던 사람이 되었고, 어쩌다가 나도 책을 사고 음반을 사고 있지만,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심지어 그것이 중요한가 하는 생각마저... 그래서 누군가의 서재를 보면 참 부럽다. 정말 부럽다.
프랑스의 매력적인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서재다. 모디아노 뒤에 놓인 빨간 색 쇼파가 인상적이다. 그는 자주 쇼파에 앉거나 누워 책을 읽는 듯 싶다.
토마스만의 서재다. 토마스 만의 장광설과 같은 소설 스타일과 반대로 너무 깔끔한 건 아닐까. 토마스 만 기념관에 있는 서재이니, 정리정돈을 해서 그럴까. 그럴 것같진 않다.
서재 사진들을 구경하다가 아래 사진도 찾았다. 1971년 어느 날, 미국 오하이오주 로렌인 도서관 모습이다. 도미노처럼 서가가 넘어졌고 하루 종일 직원들이 모여 서가를 정리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날 도서관은 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들의 움베르토 에코. 미로와 같은 그의 서재. 긴 복도를 따라가 책을 하나 꺼낸다. 기자가 에코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책들을 다 읽었냐고? 그랬더니 에코는 당신은 다 읽은 책을 집에다 놔두냐고? 역시 에코다운 대답이다. 지금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번역된 그의 모든 책들을 구해 읽어야겠다. 내가 사랑하던 이들이 한 명 한 명 이 세상에서 떠나는 계절이 되었다. 그리고 나도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