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평면화되고 추상화된 근현대미술이 카메라의 발명으로 야기되었다는 동영상을 보았다. 아직까지 저렇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구나. 놀라웠다. 카메라가 원인이 되어 근현대 미술 양식이 결정되었다는 식의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이 설명 방식은 가장 단순하고 쉽게 현대미술, 즉 평면을 지나 추상으로의 진입을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어서, 많은 이들이 카메라가 원인, 인상주의 이후의 현대 미술은 결과로 설명하곤 하지만, 이는 현대미술이 가지는 풍성함, 진지함, 예술적 통찰을 없애는 설명이다. 따라서 도리어 카메라가 얼마나 원근법적인지, 환영주의적인지, 인간의 편견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도구인지를 설명하는 편이 낫다. 이런 이유로 인해 현대의 예술가들, 특히 영화감독이나 사진작가들은 카메라라는 도구가 가지는 원근법적인 관점(철학적으로 보자면 도구적 이성의 도구)을 해체하고 우리가 보는 바 진짜 세계를 드러낼 것인가에 집중했다. 카메라와의 대결 구도 속에서 인상주의 이후의 현대 미술(예술)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대결구도였다면, 카메라를 도구로 사용하는 양식들은 원근법에 집중하여 환영주의를 극단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했다. 하지만 현대 사진이나 예술성을 지향하는 영화, 혹은 영상물은 인상주의 회화가 추구했던 어떤 평면성, 그리고 그 이후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양식들이 추구했던 어떤 추상성, 비물질성을 동일하게 탐구하였다.
예술의 역사에서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대표적인 주제는 기술(technology)과 예술 의욕(kunstwollen)의 상관 관계이다. 아래 양식이 가지는 특성은 요약과 나열이다. 다시 말해 신석기 시대 미술이 가지는 추상적 특성, 양식적 경향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들은 눈(감각지각)에 보이는 바 자연스러운 양식을 표현하지 못한 것일까?
그러나 인류는 신석기 이전부터 자연주의적 양식을 알고 있었다. 아래 벽화는 신석기 미술이 나오기 전 수만년 전에서 수천년 전 사이에 그려진 벽화다. 아래 벽화가 발견되었을 때(19세기 중반), 사람들은 놀란 나머지 그 당시의 누군가가 동굴에 와서 장난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 신비로운 벽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마득히 오래된 벽화임이 드러났으며, 그 이후 많은 예술사가들의 고민이 되었고(어떻게 어두운 동굴 안에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자연주의적 양식으로 그렸을까), 우리는 어떤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자연주의와 추상주의를 오가는 것인가에 대한 많은 연구로 이어졌다.
우리는 종종 기술의 발달이 시간의 흐름과 나란히 흘러간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12세기 고딕성당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술의 발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오해하며, 르네상스 회화가 마치 원근법의 발명으로 이루어졌다고 믿는다. 그러나 원근법이 발명되었다고 믿는 이들에게 원근법적 환영주의가 적용된 로마 시기의 회화를 보여준다면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아직도 정말 많은 이들이, 심지어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조차 르네상스 시기에 원근법이 발명되었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원근법은 발명된 것이 아니라 발견되었으며(정말 고전 고대의 부활인 르네상스에 걸맞게), 원근법이라는 기법으로, 근대적 방식으로 이론화된 것이다. 알베르티에 의해서 선원근법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의 역사에서 대체로 기술이 예술 양식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 양식의 변화가 거기에 맞는 기술을 채택한다. 결국 카메라라는 도구도 일군의, 새로운 양식을 원하는 예술가들에 채택되며, 20세기 현대 예술은 회화나 조소, 설치, 영상과 사진, 장르나 매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새로운 추상과 비구상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카메라로 인해(원인) 근대 인상주의, 혹은 이 이후의 미술 양식이 나온 것(결과)이 아니라, 원근법에 대한 반발(근대적 자아, 혹은 도구적 이성)로 반원근법적 양식에 대한 탐구가 이어졌으며 이는 인상주의와 같은 회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모더니즘 양식은 회화, 조각, 문학, 음악, 무용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휩쓴 반원근법적 양식이었다. 그리고 그 절정은 세잔, 조이스와 프루스트, 드뷔시로 대표된다.
* 사족) 미학이나 예술사를 손에서 놓은 지 벌써 십수년이 지났습니다. 가끔 잊지 않으려고 글을 쓰긴 합니다만, 아마추어에 가까운 처지라 뭐라 말할 건 없지만,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게으름과 불성실함은 참 한심스럽군요. 실은 원근법이 르네상스 시기에 발명했다고 하는 이들은, 아, 뭐라 비난하기조차 어렵군요. 제가 다시 여유가 되어 예술사 공부나 강의 같은 걸 다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사소한 바람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