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곰팡이의 봄

지하련 2007. 2. 8. 13:16
냉장고에서 몇 달 동안 기거하고 있던 식빵을 음식물 수거함에 버리고 올라오는 계단 옆으로 2월 어둠이 살짝 삐져나와 나에게 손을 건네며, 방긋 웃었다. 내 시선, 내 발걸음, 내 마음은 이미 어둠을 향해 열려있으나, 차마 손마저 내밀며 ‘나, 요즘 너무 어두워’하고 싶진 않았다.

방 청소를 하지 않은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가끔 먼지들에게 떠밀려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건 겨울 태양이 너무 아름다워, 내 청춘의 질투심이 달아올랐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질투심 같은 건 달아오를 필요가 없는데, 그것이라도 달아오르지 않으면 달아오를 것이라곤 이제 남아있지도 않다. 사랑이라든가 애정이라든가 하는 것이 달아오르리라는 희망은 너무 실현되기엔 너무 늙어버렸고, 미움이라든지 증오라든지 하는 건 계속 가지고 싶어도, 그것을 가지면 가질수록 자신에 대한 미움도, 증오도 늘어나더라. 심지어는 술 마시고 죽을 생각이나 죽일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

2월 밤이 봄밤이 따뜻해졌을 때, 방안을 가득 채우는 건 지친 영혼의 주름들 사이사이 곱게 핀 곰팡이 냄새. 올해 봄 내 영혼의 곰팡이로 술을 담가, 꽃 핀 화분들마다 조금씩 뿌려주면 내 인생의 봄도 따뜻해질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