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사

고전주의적 현대 양식 '모더니즘'에 대한 보충 설명

지하련 2003. 12. 9. 16:23

* 모더니즘을 고전주의라고 평가했는데, 어떤 분께서 낭만주의적 양식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어 그것에 대한 언급입니다. 

 

모더니즘에 대한 평가 작업은 현재 진행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더니즘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보면서 낭만주의적 양식이라 판단내리기 쉬워보입니다. 그동안 저도 그렇게 생각해왔습니다.

 

고전주의란 세상이 어떤 확고하고 고정불변된 원리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믿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이 태도를 바탕으로 예술 작품이 창조될 때 그 예술 작품들을 고전주의적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고전주의 양식은 예술의 역사 속에서 그리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따져도 그리 오래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바로크 고전주의'는, 지적하신대로 고전주의 속에 편입시키기 매우 애매합니다. 그럼에도 바로크 고전주의를 언급한 이유는 바로크 양식이,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근대적 정신 속에서 어떤 확조한 원리를 향해갔음을 보여주고 한 것입니다.(* 푸생의 경우에는 이것이 매우 두드러집니다) 다만 그것이 로코코 속으로 무너져내렸다는 점이 안타까운 일이긴 합니다만.

 

그러고 보면 고전주의란 어떤 허상이 아닐까요? 실제로 우리가 보는 이 세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는 아무런 원리도 규칙도 없이 보이는데 말이죠.(* 이것이 실존주의자들의 세계일 것입니다) 이런 세계 속에서 위대한 고전주의적 양식을 보여주었던 르네상스 고전주의 예술가들은 매너리즘으로 무너져 내립니다.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미완성이 아니라 그렇게밖에 만들어질 수 없었던 미켈란젤로의 정신적 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완성할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어떤 확고 불변한 규칙 속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이와 반대로 모더니즘의 예술가들은 이 세계의 아무런 원리도 규칙도 없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시작합니다. 모더니즘이 시작되었다고 믿어지는 19세기는 '위대한 폭로의 시대'(* 프로이드, 다윈, 마르크스로 대변되는)였으니, 세계를 지탱해왔던 그 동안의 원리는 다 무너진 시대였습니다. 이 속에서 예술가들은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의 감각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상주의자들은 이러한 감각에 충실한 작품들을 남깁니다. 모네, 피사로, 르느와르, 드가가 이룬 업적은 외부로 향하던 예술가들의 시선을 자신의 감각 지각에 충실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는 루소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도록 하였던 바의 그 '내면의 발견'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부터 추상은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이제 고정불변하는 외부 세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란 그리 수월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각,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향하는 예술 정신을 그 내면 속에서 어떤 규칙성을 발견해내려 노력하게 됩니다. 현대의 위대한 고전주의자들은, 과거의 고전주의자들이 외부 세계에서 발견했던, 또는 발견하려고 했던 규칙성을 자신의 내면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발레리가 그랬고 세잔이, 무질이, 조이스가, 말레비치가, ... 하지만 이러한 고전적 양식의 귀결은 그린버그식의 '텅 빈 캔버스'로 몰락(?)해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내면 속에서 발견한 규칙성은 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모더니즘 이후에 나타나는 양식들은 아무런 방향도, 좌표도 없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모더니즘이 '고전주의적 양식'이라고 말했을 때의 의미는 이상과 같습니다. 최근 읽은 책에서 보았던 르누와르의 말기 작품들에서도 고전주의적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고전주의란 안정되고 고정된 그 어떤 것을 염원하는 양식입니다. 이 때 표현되는 여성의 상은 대체로 인간의 어머니이면서 대지적인 느낌을 가지게 되면 이로 인해 풍만한 여체를 드러냅니다.(* 그와 반대로 낭만주의적 양식 속에서의 여성의 표현은 대체로 섹스의 대상이며 가냘프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예술 사조는 그 당대의 모든 양식을 포함시킬 수는 없습니다. 다만 대체로 그러한 경향을 보였다고 말할 뿐입니다. 19세기 말과 20세 초중반에 낭만주의적 경향을 보였던 예술가가 없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전체적인 경향이 고전주의적으로 흘렀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