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마주하는 시간
라이너 쿤체(지음), 전영애, 박세인(옮김), 봄날의 책
오랜만에 쿤체의 시를 읽었다. 실은 잘 모르겠다. 몇 편의 시를 옮겨적긴 했으나, 노(老)시인의 독일어는 한국어로 옮겨져 나에게까지 왔으나, 그 거리는 꽤 멀게 느껴졌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
검은 날개 달고 날아갔다, 빨간 까치밥 열매
잎들에게 남은 날들은 헤아려져 있다.
인류는 이메일을 쓰고
나는 말을 찾고 있다, 더는 모르겠다는 말,
없다는 것만 알 뿐
아니면 내 문제인가. 나에게 이제 시(詩)는 너무 멀리 있는 건가.
사물들이 말이 되던 때
내 유년의 곡식 밭에서
밀은 여전히 밀이고, 호밀은 여전히 호밀이던 때,
추수를 끝낸 빈 밭에서
나는 주웠다 어머니와 함께 이삭을
그리고 낱말들을
낱말들은 까끄라기가
짧기도 하고 길기도 했다
시쓰기의 문제일까, 아니면 나를 드러내기 위한, 내 존재를 증명할 단어, 낱말을 찾지 못했다는 걸까. 아니면,
체르니브치
초록색 크리놀린 스커트를 입은
층층 도시
- 로제 아우스랜더
그저 멀리서, 유대인 묘지에서부터 보면
도시는 아직도 닮아있다
그 도시의 시인들의 기억과
인간의 오만, 그 보병의 떼거리가
저 도시 안에서 시인을 저질렀고
기억에마저 균열을 냈다
묘실은 저 혼자 곰팡이 슬고
묘석들은 기울어 서 있다
그 스러짐이 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아직도 전쟁 중이다. 문학은 과연 가치가 있는 걸까. 힘이 있는 걸까. 우리의 상처가 아물어가면서 그 기억도 희미해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다른 기억으로 대체될 것이다. 결국 사라지기 위해 그 무수한 방황, 모험, 언어들이, 시어들이 존재할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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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쿤체를 번역한 전영애 교수님의 이야기. 라이너 쿤체와의 일화를 이야기한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45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