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961

금요일 오후의 캠핑

한 일이 년 열심히 캠핑을 다니다가 요즘 뜸해졌다. 그 사이 우리 가족 모두가 바빠졌다. 더구나 올해는 아이가 성당 첫 영성체 반에 들어가면서. 나 또한 아이와 함께 일요일 오전 시간을 비워야만 한다. 일요일을 끼고 갈 수 없어 결국 금요일 오후 캠핑을 가기로 했다. 아내는 직장과 학업으로 모든 것에 열외된 상태라, 나와 아이 단 둘이 가는 캠핑이었다. 아빠와 아들, 하긴 단 둘이 여행을 자주 다녔던 터라 별 이상할 것도 없다. 오후 일찍 출발한다는 것이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늦게 출발하여 어두워질 무렵에서야 도착했다. 텐트를 치고 식사를 먹으려고 보니, 밤이다. 피곤했던 탓인지, 집에서 먹다 남긴 와인 반 병과 맥주 몇 캔을 마시고 보니, 취했다. 실은 내가 취한 지도 몰랐다. 나는 아이에게 이제 자..

코로나가 만들어내는 풍경

며칠 재택 근무를 했다. 이제 원격 근무가 가능해진 상태라 업무를 수행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Zoom이나 구글 Meet으로 회의를 할 수 있으며, 크롬 원격데스크탑이나 대부분의 회사에서 사용한 그룹웨어에는 원격 접속이 가능한 기능들이 탑재되어 있다. 사무실 PC에 원격으로 붙어서 작업하는데, 조금 속도가 느릴 뿐, 불편함은 없었다. 아이는 Zoom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고 아내는 코로나 확진으로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와 아이는 계속 음성이 나오다가 결국 아이까지 양성이 나왔다. 이제 내가 걸리는 건 시간 문제다. 그런데 나는 아직 걸리지 않았다. 오늘 내일 걸리겠지 한 게 벌써 1주일이 다 되어 간다. 결국 걸리지 않는 건가. 재택은 쉽지 않다. 의외로 시간이 없고 일을 많이 하게 된다. 사..

코로나 19의 봄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그럴 나이가 되었고 그럴 위치에 올라왔으며 그럴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디테일에 강해야 된다고 말하는 시대이니, 나도 사소한 것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확실히 17세기 유럽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근대성Modernity이란 기본적으로 바로크Baroque적인데, 어떤 목적(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을 극복해내려고 한다. 상당히 전투적이다. 과감하다. 푸생도 그렇고 루벤스도 그렇고 렘브란트도 그렇다. 다만 표현하는 방식(양식)에서의 작은 차이들이 있을 뿐, 기본적인 태도는 근대적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목표를 향해 가면서 겪는 고통마저도 고귀하고 아름답게 표현한다. 그러나 그것은 ..

뒤늦게 알게 되는 이들

가끔 영어로 된 신간들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한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많으니, 그 언어를 쓰는 작가들도 많을 것이며, 좋은 책들도 많을 것이다. 한글로 나오는 좋은 책들도 다 읽지 못하는데, 영어로는. 그래서 번역되지 않은 많은 작가들을 종종 그리워한다. 온라인 서점에 장바구니 목록에 영어 책들을 잔뜩 쌓아두고 있다. 제대로 읽을 능력도, 시간도 없으면서. 영어 공부를 틈틈히 하고 있으나, 쉽지 않다. 겨우 현상 유지만 할 뿐이고 영어로 된 비즈니스 아티클 정도 읽을 수준이다. 대화는 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한두달 휴직계를 내고 캐나다 같은 곳에 단기 어학 연수가면 어떨까 고민하기도 한다. 그나마 음악은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먼저 멜로디를 듣고 가사를 되새긴다. 가..

차 유리 현상 windshield phenomenon

과학자들은 '차 유리 현상'을 언급했다. 사람들이 몇 년 또는 몇십 년 전에는 운전을 하다가 날벌레 사체를 치워야 했는데 요즘 그럴 일이 없어지면서 비로소 곤충이 사라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을 일컫는 용어이다. 예전에 자동차 여행자들은 몇 시간마다 차를 세워서 차장을 더럽힌 메뚜기, 파리, 총채벌레, 각다귀 따위의 수많은 곤충을 닦아 내야 했다. 시골의 농경지나 숲 근처를 지날 때면 곤충의 날개, 다리, 더듬이 등으로 차창은 점점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어지러운 악보처럼 변했다.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그랬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차창이 안 더럽혀진다. 우리의 컴퓨터 스크린이 동물로 가득 차고 있는 동안, 우리와 자연 사이의 오래된 산업적 경계선인 차 유리창에서는 그것들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리시 수낙과 홍남기

보리스 존슨 다음으로 차기 영국 총리 물망에 오르는 리시 수낙(Rishi Sunak) 펀자브 민족의 브라만 계급 이민자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펀자브민족은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 근처에 살았던 이들로 펀자브어를 사용하며 대부분이 시크교도로 알려져 있다. 펀자브민족 출신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2명이니, 파키스탄의 유명인들 상당수가 펀자브인이라고 한다. 워낙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부유한 지방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영국에도 약 70만 명 정도 살고 있다고 한다. 리시 수낙은 퍼블릭스쿨 중 하나인 윈체스터 칼리지를 나왔다. 인도계 이민자 가족 출신이지만, 퍼블릭스쿨을 나왔다는 걸 보면 영국에서도 그냥 출신이 다르다고 보면 된다. 내가 리시 수낙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간단한다. 지금 영국은 엉망이다. 브렉시..

대선 결과를 보며 나는 절망하고 좌절하고 슬퍼할 것이다.

잠을 설쳤다. 잠을 자지 못했다. 내일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누웠으나,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출구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예측. 온라인공간, 특히 Social Media는 에코챔버(echo chamber)현상이 심한 곳이다. 여론이 왜곡된다. 왜곡될수록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좋다. 그래서 포털이나 Social Media는 이 왜곡을 막지도, 막을 생각도 없다. 그러한 왜곡이 심하면 심할수록 트래픽은 늘어나고 광고 수익으로 이어진다. 이는 언론도 마찬가지여서, 이제 정론지 같은 건 없고 온라인에는 모두 ‘스포츠신문’화가 되었다. (* 예전에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흑백의 종이 신문과 컬러의 스포츠신문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흑백의 일간지를 구독했으며, 스포츠신문은 주로 터..

우크라이나 사태와 언론, 대선, 한국

내부 문제를, 그 문제로 인한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이나 대립을 외부로 돌리는 건 손쉬운 방법이다. 시스템이나 체계, 문화나 관습으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원인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 그러나 많은 리더들이 이런 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실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나 구조의 문제인데. 그런데 흥미롭게도(안타깝게도) 대중들에게 참 잘 먹힌다. 제임스 서로위키James Surowiecki는 (랜덤하우스코리아)를 강조했지만, 이건 극히 제한적인 영역에서만 해당되는 건 아닐까. 더 나아가 '정치적인 갈등을 야기하는 문제'에 대해 대중의 지혜를 기대해선 안 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 프로퍼간다에 호도된 그들, 대중은 가끔 파시즘을 불러오거나 군사독재를 묵인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사..

주식 시장 구경 소감기

작년 말쯤 **만원으로 주식을 좀 사서 몇 달 구경 중이다. 예전과 비교해 주식 구입이 매우 손쉬워졌다. 객장에 나갈 필요도 없고 신문에 실린 주가 정보를 볼 필요도 없다. 정말 편해졌고 생산성이 높아졌다(그래서 이래저래 여유롭게 사는 건 도리어 더 힘들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동안 수익률은 최대 -30% 정도까지 내려갔고 오늘 기준으로는 -9%대를 유지하고 있다. 제약주가 포함된 포트폴리오라, 이 정도면 선방한 것이다(실은 다시 떨어지면 조금 더 사둘까하는데, 아마 이 정도에서 상당 기간 유지될 것같다). 몇 달 주식 시장을 구경한 소감은 아래와 같다. 1. 예상보다 더 심하게, 상당히 비이성적인 곳이었다. 어떤 이유로 오르고 내리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큰 폭의 상승이나 하락은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

2월을 물들이는 스산함, Hoc erat in votis

우리에게 삶의 희망이나 목적 같은 건 없고 사랑이라거나 미래 따윈 필요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글을 쓴다는 건, 그렇게 노력하다는 건 어떤 것일까. 아주 오래 전 조지 기싱George Gissing의 을 읽은 다음의 내 감상평이었다. 늘 다시 읽고 싶은 책이지만, 늘 다른 책들에게 밀려 손 안으로 들어왔다가 바로 서가 사이로 돌아가지만. 어쩌면 시의적절한 포기는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은 아닐까. 아는 분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너 그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니'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멈칫 했다. 글쎄, 나는 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건가. 지금 다니는 회사를 코스닥 상장까지 시키는 것, 또는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 만큼의 물리적 기반을 마련하고 싶은 것,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