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주말 오전의 첼로

지하련 2025. 2. 25. 04:41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 음반을 꺼내 듣는다. 대체로 음반들은 몇 달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 꺼내 듣는 게 전부다. 먼지 쌓인 음반을 닦으며 슬픈 표정으로 웃게 된다. 한 두 번 듣겠다고 지금도 음반을 사고 한 번 읽겠다고 책을 산다.

결국 헤어질 운명인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시인 남편은 바람이 나 집을 떠나고, 사랑 속에서 사랑을 잃고 시를 쓴 실비아 플라스도 죽고, 몇 년 후 그녀의 남편과 사랑에 빠져 살림을 차렸던 시인 아시아 베빌도, 테드 휴즈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딸과 함께 죽는다. 사랑이 뭔지.

이젠 테드 휴즈보다 실비아 플라스가 더 유명해졌지만, 사후의 명성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

첼로 소리는 주말 아침과 참 잘 어울린다. 고통받고 있는 마음을 가라 앉힌다. 플라스의 시를 읽으며 상처난 영혼을 어루만진다.

이십년 전 내 전화번호를 지운 그녀는 나 인지도 모르고 전화를 받고는 황급히 끊었다. 그녀의 일방적인 결별 선언 며칠이 지난 다음이었다. 그래서 나와 그녀 사이의 마지막 대화는 "여보세요"다. 사랑은 참 부질없는 흔적을 남기고 그런 흔적들이 주말 오전 대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사랑을 잃은 영혼들아, 슬퍼하지 말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렴, 이번 주말은 외로운 영혼들을 위해 준비된 이틀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