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味적 우주

볼스 Bols 칵테일 클래스 후기 - 칵테일 세계로의 초대

지하련 2025. 4. 10. 06:22

 

칵테일을 마실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스트레이트로 마신다. 심지어 얼음도 넣지 않는다. 예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요즘 그렇다는 말이다. 위스키는, 뭐랄까, 타격감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드러운 셰리 위스키보다 묵직한 피트 위스키로만 마신다. 이런 점에서 접근성이 좋은 탈리스커는 아웃이다. 라가불린도 살짝 위험하다. 이런 내가 칵테일 클래스라니. 

 

주류 수입사에서는 마케팅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고 한다. 하긴 일 때문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실제 관계자가 어려움을 토로하는 걸 들으니 새삼스러웠다.. 성인 대상의 마케팅으로, 다양한 법적 규제 속에서 제한적인 마케팅을 할 수 밖에 없는 대표적인 상품이 술과 담배다. 그 다음이 의료 부문인데, 상당히 까다롭다. 그렇다보니, 주류 수입사에서는 자주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 이런 클래스를 자주 하고 있다. 이번에 운 좋게도 나도 참석하게 되었고, 꽤 의미있는 자리였다. 

 

집에서 칵테일을 만들어 먹긴 쉽지 않다. 고작 하이볼 정도인데, 나도 이걸 위해 지거 하나를 사두었다. 아래같이 생긴 도구 이다. 한 쪽은 30mm, 반대쪽은 45mm를 담을 수 있다. 

그 외 여러 도구들이 필요한데, 대표적인 것이 쉐이커이다. 안에 얼음과 술을 넣어 섞는 도구인데, 동일한 얼음양과 술을 넣어 매번 일정하게 술이 나와야 한다. 즉 쉐이커를 어떻게, 얼마나 흔드느냐에 따라 녹는 얼음의 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흔든 후 나오는 술의 양이 일정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일정해야 한다고 한다. ;;; (자주 가는 위스키바 바덴터가 이야기해주었다.) 쉐이커의 두껑 부분이 좀 헐렁하기 때문에 엄지 손가락으로 제대로 막고 흔들어야 하며, 체온이 있는 손이 되도록이면 덜 닿는 형태로 잡아야 하는 등 잡는 것부터 까다롭다. 칵테일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해야 하는 셈이다. 술을 이렇게 만들어서 마셔야 하니, 집에서 만드는 칵테일의 수준이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칵테일에서는 얼음도 중요한데, 가정용 냉장고에서 만드는 얼음보다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파는 '단단한 얼음'이 좋다. 적절한 온도에서 천천히 얼려야 한다. 얼리는 속도가 매우 중요한데, 가정용 냉장고에서 얼린 얼음은 그렇지 못하다. 가정용 냉장고에서 얼린 얼음으로 쉐이킹을 하면 아마 다 부서져 나올 듯. 

 

 

서두가 길었다. Bols는 157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된 알코올 브랜드다. 16세기 후반기 인데, 이 때쯤 술은 어느 정도 세상에 알려져 있는 상태였을 것이다. 다들 알다 시피, 유럽 지역 대부분은 물이 좋지 않다. 가령 우리는 상처가 생겼을 때, 근처 시냇물의 물로 상처 부위를 씻고 하는데, 이게 가능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몇 나라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상처가 더 곪아서 낭패를 보게 된다. 중국 사람들이 찻병을 들고 다니는 이유는 먹을 수 있는 자연 상태의 물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 사람들이 낮은 도수의 와인이나 맥주를 식사 때 마시는 것도 동일한 이유다. 이런 점에서 술은 신의 물방울인 셈이다. 술로 상처 부위를 적시면 상처는 곪지 않는다. 십자군 전쟁 때 아랍 사람들에게 배웠고, 술 만드는 법을 배워온 이들은 성직자들에게 알렸고 술을 만드는 일은 교회나 수도원에 맡기게 된 것이다. 술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 전에도 유럽 지역에선 낮은 도수의 술을 만들고 있었지만(대표적으로 와인),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드는 증류 기술은 아랍에서 유래된 것이 맞다. 즉 위스키 말이다. 

 

 

DnD Spirits는 국내 대표적인 위스키 수입사이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맥켈란. 이번에 알게 된 술은 볼스Bols다. 칵테일을 만들기 위한 술을 리퀴르라고 하는데, 이것만 마시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다. 맛이 나쁘지 않으나, 다음날 숙취로 엄청 고생할 것같은 느낌이 확 든다고 해야 할까. 

 

 

파쏘아는 브라질산 패션 프루츠로 만드는 리쿼르로, 열대 과일 특유의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술이 유명해지게 된 계기로는 '포르노스타(pronostar)' 마티니 덕분인데, 뉴욕의 럭셔리 호텔 바에서는 한 잔에 100불까지 받는다는... 이렇게 한참 술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술을 제대로 알고 마시려면 상당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이러니 결국 와인과 위스키도 안착하게 되는 걸까. 한국 전통 주류도 이런 식으로 잡다한 이야기들로 채워나가야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 잔의 칵테일을 직접 만들고 마실 수 있었다. 첫 번째는 파쏘아와 볼스 멜론 등으로 만든 위스키였다. 동일한 양으로 만든다고 하더라 조금의 변화만으로도 맛이 상당히 달라진다. 그래서 옆에 오신 분들과도 나누어 마셨는데, 미묘하게 맛이 달랐다. 

 

 

두 번째 잔은 주스와 함께 만드는 칵테일이었다. 아래와 위가 섞이지 않는 상태로 서브되었다가 섞어서 마시는 칵테일이다.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다 보니, 집에 온 손님들에게 접대용으로 좋아 보였지만, 쉐이킹까지 해서 할 필요까진...  

 

 

마지막은 진으로 만든 칵테일이었다. 이런 저런 재료들이 많이 들었다. 이 칵테일을 만들 땐, 진을 세게 넣어야만 했다. 위스키를 좋아하다 보니, 술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이 다소 낯설었다. 

 

 

낮은 도수라 쉽게 보면 안 된다. 더구나 칵테일은 미묘한 맛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최첨단 기호식품에 가깝기 때문에 한 번 제대로 마시기 시작하면 주머니는 거들난 채 인사불성이 되기 십상이다. 나도 이 날 문정동에서 술을 마시고 집 근처로 와서 다시 더 마시는 일이 일어났다. 즐거운 술자리가 이어졌지만, 이 덕분에 주말을 그대로 방 안에서 죽은 듯이 보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