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함유량이 60%이하인 석탄을 이탄(peat)라고 한다. 아래와 같이 생겼다. 이끼 등이 썩지 못한 채 탄화되어 쌓인 것으로 보면 되는데, 이끼, 풀, 심지어 작은 나무 가지들도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먹을 수 있다는 설도 있는데, 그건 아니고 대부분 땔감용이었다.
피트 위스키는 맥아를 건조시킬 때 킬른(kiln)이라는 가마에 넣어 뜨거운 바람으로 30시간 정도 말리는데, 이 때 땔감으로 이탄, 즉 피트를 사용하는 경우, 독특한 향이 입혀진다. 최근에는 피트향을 강하게 하기 위해 피트 연기로 가득찬 밀폐된 공간에 두기도 하는데, 전통적인 방식은 아닌 셈이다.
라가불린 16년산을 마셨다. 아드벡이 남성적이라면 라가불린은 꽃향기처럼 부드럽다. 부드럽게 깔리는 피트향도 이 위스키의 매력을 더한다. 탈리스커는 내 위스키 리스트에서 사라졌고, 다른 사람들과 편하게 마실 때는 라프로익, 혼자 마실 땐 아드벡이라고 생각했는데, 라가불린도 상당히 예쁘다. 우아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위스키다.
혹시나 싶어 스프링뱅크가 있는지 물었는데, 없다며 이걸 가지고 왔다. 스프링뱅크 증류소에 나온 롱로우(Longlow)다. 강한 피트향이 인상적이어야 하는데, 스트레스 탓인지 피트향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하긴 라가불린도 마찬가지였다. 와인도 그렇고 위스키도 그렇고 마음과 몸이 건전할 때, 그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듯 해서, 살짝 슬프고 쓸쓸해졌다.
몇 잔 마시자 취기가 올라왔다. 동굴같은 바를 나오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에 비가 오길 바라는 바람에 일부러 우산을 들고 나왔다. 그래서 저 불길이 잡힐 것같으니까. 박근혜 때도 불이 참 많았는데, 이번에도 참 불이 많다. 어떤 이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우경화가 되고 있다는 글을 공유했다. 경제적 불평등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만들고 있는지는 이미 여러 책들과 논문들로 증명되었지만, 공론화되지 못했다. 도리어 아직도 철지난, 심지어 아무 효과가 없음이 증명된 '낙수효과' 따위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걸 이야기하는 정치적, 경제적 리더들을 지지하는 무식한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다.
얼마 전 봤던 동영상(머니인사이드의 부동산 관련 영상)에서는 서울시의 부동산 정책 관련 여러 위원회에 속한 이들은 부동산 전문가들(건설이나 부동산 투자 등등에서 경력을 쌓은)인데,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챙기기 위해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며, 이런 사정을 잘 보면서 투자하라고 당부했다. 하도 부동산, 단적으로 아파트 가격이 오르지 않으니 토지거래 허가구역을 해제한 것이라고. 심지어 이렇게 해도 거래량이 오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신문 기사들은 그렇지 않다. 혹시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 대부분이 강남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제대로 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참 힘들다. 정확한 정보를 알기 어렵고 제대로 된 지식을 찾기 어려운 시대다. 유언비어와 거짓 정보들이 난무한다. 그리고 너무 쉽게 유통되는 시대다. 기술 발전은 너무 빠르고 사람들은 다들 모두 자신만을 챙기기 바쁘다. 나도 최근에 힘들다고 느낄 지경이니, 다른 이들은 오죽할까. 과연 이 나라에, 이 세계에 미래는 있는 걸까. 내일은 광화문에 나갈 예정이다. 이러다가 탄핵이 인용되지 않으면, 이 나라가 필리핀이나 페루처럼 될 것이라는 걸 우경화된 사람들은 모를까. 하긴 모르겠지. 그러니 아직도 경상도 사람들이 저 지경인 것이다. 나 또한 그 지역 출신이긴 하지만, 나는 그토록 무식한 사람들(집안 어르신들)이 본 적 없다.
다들 기운을 내자. 베르나노스가 그의 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서, '우리 삶을 증명하는 건 겨우 일상의 성실함뿐'이라고 했다. 이 소설도 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본능과 위선 속에서 살아가는 세속 사람들 속에서의 젊은 신부가 겪는 정신적 갈등과 위기를 담담하게 서술하는 이 소설은 어쩌면 현대의 우리가 마주하게 될 어떤 절망을 예견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 미세먼지 탓인지 이번 주 내내 목이 아프다. 이러다가 감기 걸리면 큰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