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10

얼론 Alone, 에이미 션, 줌파 라히리 외 17명

얼론Alone 에이미 션, 줌파 라히리, 제스민 워드, 마야 샨바그 랭, 레나 던햄 저 외 17명(지음), 정윤희(옮김), 혜다 책을 찾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서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텐데, 찾지 못한 건...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실은 집 근처 구립 도서관에서 빌려 읽던 중이었는데, 어딘가 두고 잃어버렸다. 서가와 바닥에 놓인 책들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쌓인 책들 사이의 공간은 끝이 없는 미지의 세계다. 때는 업무가 밀려 드는 늦가을이었고 대출 기간을 넘겨 연체를 하던 중, 연체 안내 문자를 보고 부랴부랴 책을 찾았는데, 어디다 두었는지 나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가끔 있는 일이긴 하다. 가지고 있던 책을 다시 사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결국 찾지 못해, 새로 구입했다. 도서관에선 ..

햄릿과 오필리어

오전의, 텅 빈 카페의 빈 의자 위로 내 마음을 살짝 내려놓고 나온다. 그 마음 위로 누군가의 시선이 닿고 어떤 이들의 수다와 몸짓들이 내려 앉을 때쯤 그제서야 내 자유의지로 숨 쉬기를 시작할 것이다. 결국엔 파국으로 치닫겠지만, 낯익은 결론, 예상되었던 비극, 인과율적인 종말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자유로 그것을 거부하는 용기를 꿈 꾼다. 햄릿 이후 꿈마저도 죽음과 맞바꾸어야 하는인생의 숙명같은 것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햄릿이 아니고, 너는 오필리어가 아니다. 불륜같은 사랑을 하고, 천생연분같은 결혼을 하고 신탁으로 낳은 자녀들 속에서 잠들지도 모를 일. 그리고 눈을 뜨면, 오후가 되었고, 아직 카페 안이지만, 소리없이 소란스러워져 있고, 길거리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두 눈을 치켜뜨고 내 앞을 ..

혼술과 커피에 대한 실존적 고찰

매일 아침 저녁, 또는 시간 날 때마다 일기를 쓴다. 특별한 내용은 없다. 그냥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라는 말과 종교적 기원을 적는다. 오늘 하루가 어떤 일들로 구성되었는지 적지 않는다. 그걸 적으려고 보니, 너무 길어질 것같기도 하고 그럴 정신적 에너지도 남지 않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작은 나이다. 앞으로 그 비율은 더 심해질 것이다. 딱히 지혜나 통찰을 가지지도 못했고, 그나마 있던 지식이나 상식도 얇게 스쳐가는 바람에 휘익 쓸려 날아가고 있는 늦겨울, 혹은 초봄이다. 낯선 이들과 교류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젊은 이들과 술을 마시거나 대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감수성이 무뎌지거나 슬픔이 덜 하거나 쓸쓸함이나 고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외면할 뿐. 다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보후밀 흐라발Bohumil Hrabal(지음), 이창실(옮김), 문학동네, 2016 서평 쓰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간단하게 감상을 적기도 하지만, 혹시 나중에 읽었던 책에 대한 내용을 찾을 때를 대비해 자료 정리의 측면도 있다 보니, 다소 길고 인용이 많아졌다. 결국 책 읽는 속도를 서평 쓰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읽었으나 리뷰를 올리지 못한 책들이 열 권을 넘겼다. 시간이 나면 정리해 올리려고 하고 있으나, 쉽지 않고 쫓기다보니 서평의 질도 예전만 못하다. 보후밀 흐라발(1914 - 1997). 체코 최고의 소설가이지만, 국내에는 뒤늦게 소개되었다(아니 전세계적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체코 소설가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가 밀란 쿤데라이고, 토니 주트(Tony Judt, 1..

더 고독했던 때는 없네, 고트프리트 벤

더 고독했던 때는 없네 - 고트프리트 벤 (Gottfried Benn, 1886 ~ 1956) 8월처럼 고독했던 때는 없네성숙의 계절 -, 땅에는붉은, 황금빛 신열(身熱)그런데 그대 정원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는가? 맑은 호수, 부드러운 하늘,깨끗한 밭들은 조용히 빛나는데그대 군림하는 왕국의 개선(凱旋)은,그리고 그 개선의 자국은 어디에 있는가? 모든 것이 행복을 통해 드러나는 곳,술 냄새 속, 물건 소리 속에시선을 나누고, 반지를 나누는 곳에서그대는 행복의 적(敵)인 정신에 몸 두고 있네 지독했던 8월이 가고, 여기저기 긁힌 마음의 가장자리는 찢어진 헝겊으로 잘 덮어두곤 가을 놀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변화는, 몸에 무리를 주기 마련. 노트 정리를 하다가 메모 해 두었던 벤의 시를 읽으며, 문득 ..

고독행성, 박정대

고독 행성 박정대 콜 미, 가수는 밤 새 노래를 하고 나는 로즈제라늄 곁에 누워 있네 여기는 12월의 입구를 떠도는 고독 행성 방울토마토처럼 입 안 가득 깨물고 싶은 밤 그 밤의 옆구리로 밤새도록 눈발들은 허공의 밀사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데, 눈발들이 내려와 고독고독 쌓이는 이곳은 하얀 침묵의 지붕을 모자처럼 쓰고 서 있는 고독 행성 콜 미, 밤 새 가수는 저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지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쌓이는 노래들 고독 행성에 호롱불이 켜지는 점등의 시간이 오면 생의 비등점에선 주전자의 물이 끓어오르고 톱밥 난로의 내면을 가진 천사들은 따스하게 데워진 생의 안쪽에서 영혼의 국경선을 생각하네 콜 미, 가수의 목소리도 가랑잎처럼 바람에 뒤척이는데 창문 밖 국경수비대들도 하얀 눈발을 뒤집어쓰고 곤하..

에드워드 호퍼 - "calm, silent, stoic, luminous, and classic"

밤낮이 거꾸로 되었다기 보다는, 매우 불규칙해졌다. 가령 어제는 밤 10시에 자서 새벽 3시에 깨어나지만, 오늘은 새벽 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오전 늦게까지 잠자리에 못 일어난다는 식이다. 일이 밀렸고 스트레스는 쌓여간다. 운동을 꾸준히 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어떻게 될 지 두고 볼 일이다.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 택배를 받을 것도 있고 출퇴근 시간을 아껴보자는 생각에서 였다. 하지만 의외로 집에서 시간 관리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북마크된 여러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에드워드 호퍼 전시 소개 페이지와 마주하게 된다. 미국적 경험(American Experience)의 재료와 구조(grain and texture, 적절한 번역어가 생각나지 않는다.)라는 표현이 마음..

Philip-Lorca diCorcia

오래된 미술 잡지를 뒤지다가 2000년대에 기대되는 작가의 한 명으로 Philip-Lorca diCorcia를 외국의 어느 큐레이터가 추천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여기 올린 이미지의 상태가 좋지 않아, 실제 사진이 주는 '극적인 고독감'을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 작가의 다른 사진들이 다 이런 류는 아니다. 그의 사진들 중 일부는 마음에 들고 일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생일날의 고독, 에밀 시오랑

(원제 : 태어남의 잘못에 대하여) 에밀 시오랑 지음, 전성자 옮김, 에디터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루마니아어를 버리고 평생을 미혼으로 남은 채 파리 어느 다락방에서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는 것만으로도 현대적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에 휩싸인 어떤 매력을 풍긴다. 또한 그의 프랑스어는 어느 잡지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지난 세기 프랑스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 문장들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 매력, 그의 문장만으로 그를 좋아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가 가지는 인생에 대한 태도에 있다. 가령 이런 문장들, “젊은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할 유일한 사항은 생에 기대할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니라 태어났다는 재앙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그 재앙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