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7

비토레 크리벨리,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

라는 템페라화로 베네치아의 화가 비토레 크리벨리(Vittore Crivelli, 1444 ~ 1501/1502)의 작품이다. 1490년대 작품으로 추정되며, 후기 고딕의 자연주의와 초기 르네상스의 화풍이 드러난다. 실은 양식상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서,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다. 지역적으로 이탈리아에 속한 관계로 초기 르네상스 작품으로 보아야 하지만, 자연주의적 표현이 두드러지긴 하나, 인물의 표현에 있어서 르네상스 특유의 생동감은 다소 떨어진다. 그래서 고딕 자연주의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 해야 할까. 성 카타리나는 4세기 경의 카톨릭 순교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알렉산드리아 총독의 딸로서 학자이며 카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으며, 카톨릭 박해로..

뒤러Durer, The Knight, Death and Devil(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The Knight, Death and Devil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Albrecht Dürer 알브레히트 뒤러 1513, Copperplate 동판화 기사 옆으로 죽음과 악마가 그가 가는 길을 방해한다. 이 명료한 동판화는 르네상스 시기의 신념을 보여준다고 할까. 인간이 가는 길을 과거의 유물들 - 죽음, 악마 - 이 훼방 놓으며 가지 못하게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종종 후기 고딕적 양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사상 만큼은 근대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기사는 도상학적으로 진리를 수호하는 자로 해석된다. 과거 종교인이 가졌던 역할을 이제 기사가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극적인 변화는 르네상스 시기를 문예부흥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시기가 아니라, 급속하게 변화하는 혼돈기였음을 짐작케한다. 결국 고딕적..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조중걸(지음)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조중걸저 | 한권의책 | 2013.03.04출처 : 반디앤루니스 http://www.bandinlunis.com 몬드리안의 은 이러한 이념의 회화적 대응물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종류의 재현적 요소도 없다. 그것은 서로 단지 네모들의 집합일 뿐이다. 세계는 결국 그와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추상적 창조물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렇게 되어 모방으로써의 예술은 완전히 종말을 고한다. 이제 창조로써의 예술만이 남게 되었다.(307쪽) 이렇게, 묵시록적으로 끝나는 이 책은 단순히 서양미술사에 대한 소개나 이해로만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양식, 하나의 작품 속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도상학적 해석으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예술(혹은 예술 작품..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와 초현실주의

노트를 정리하다가 메모 해놓은 것을 옮긴다. 수지 개블릭의 당연한, 하지만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에 대한 지적이다. 보스와 초현실주의를 연결짓는 것은 설명의 용이성 탓이지, 실제로 보스가 초현실주의와 관련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오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보스의 작품은 지극히 후기-중세적이고 고딕적이다. 신의 세계가 가졌던 호소력이 이른 아침의 안개처럼 정오를 향해가면서 사라져갈 때, 그 안개를 못내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보스의 작품은 먼저 중세말, 근대초의 심리적 방어를 위한 공포적 상상력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을 경우, 자신의 의지를 강제할 외부의 제어 수단을 바라기 마련이다. 중세 사람들에게 신의 세계란 이 세상의 시작과 끝이었고, 보스는 ..

중세의 가을, 호이징가

중세의 가을 요한 호이징가 (지음), 최홍숙(옮김) 문학과 지성사 책을 다 읽은 지 몇 달이 지났고, 그 사이 여러 번 책을 꺼내 읽으며 노트를 했지만, 쉽게 소개 글은 씌어지지 않는다.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대학 4학년 때였으니, 나는 거의 십 년 넘게 이 책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완독하지 못했다. 자끄 르 고프의 ‘서양중세문명’을 금방 완독한 것과 비교한다면, 이 책에 대한 내 느린 독서는 다소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책은 두툼하고 활자는 작으며 문장은 길다. 제 1장의 제목은 ‘삶의 쓰라림’이고 이렇게 시작된다. 세계가 지금보다 5세기 가량 더 젊었을 때, 삶에 일어난 많은 일들은 지금과 현저히 다른 모습과 윤곽을 띠고 있었다. 불행에서 행복까지의 거리도 훨씬 멀게 여겨졌..

퀼른 대성당

퀼른 대성당은 13세기에 짓기 시작해 19세기까지 공사가 계속되었다. 도대체 그 공사비는 누가 댄 것일까? 짓기 시작했을 때의 설계도는 남아있는 걸까? 자끄 르 고프는 '장기 지속의 중세'를 이야기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는 그의 여러 저서들에서 기독교가 그 힘을 유지하고 있었던 19세기까지 '중세'라고 이야기한다. 그러고보면 아직 중세가 끝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우리 마음 속에는 언제나 절대자 신을 염원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으니 말이다 기독교에서의 신은 인류가 고안해낸 어떠한 신보다 강력하고 절대적이다. 그에겐 불가능이란 없으며 시간마저도 그의 권능 아래에 있다. 그리스의 신들이 시간, 또는 운명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현실 속의 우리는 그렇게 절대적이라..

르네상스, 월터 페이터

르네상스 - 월터 페이터 지음, 이시영 옮김/학고재 르네상스 Renaissance 월터 페이터 지음, 이시영 옮김, 학고재 모든 시대는 동등하다. 그러나 천재는 항상 그의 시대를 초월한다 - 월리엄 브레이크(William Blake) 월터 페이터의 르네상스는 르네상스 개론서라기 보다는 그의 관심을 끌었던 르네상스적 인물들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그러므로 르네상스의 배경이나 특징, 주요 사건들이나 인물 등과 같은 르네상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구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 것은 좋지 않다. 하지만 19세기 말의 뛰어난 비평가였던 페이터의 심미안이나 그의 비평언어에 대해선 찬사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책의 서문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비평가 지망생들에게는 꼭 읽으라고 하고 싶은 구절이 있다.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