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128

태풍 전야, 야근 중

요즘 너무 바쁘고 정신 없다. 8월 내내 책은 거의 읽지 못했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회의들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 예상과 달리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모호성과 변동성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일정은 이미 어긋나기 시작했고 여기에 대해 내가 대응할 수 있는 수준까지 대비해놓고 이해관계자들에게 프로젝트 위험 상황임을 알려야 한다. 일처리라는 건 결국 모호성과 변동성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위기 순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는 걸까. 아니면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에 있는 걸까. 실은 이 상황이 되리라 예상하지 못한 게 크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되기 전에 협조가 필요한 파트에 강하게 어필해야 하는데, 이 어필을 약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실은 협조한 필요한 파트도 자신들의 업무에 허덕이고 있는..

2015년 7월의 한국

불과 몇 년 사이에 한국은 절망적인 나라가 되었다. 어쩌면 천천히 우리 모두 절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실은 나는 여기에 대해 매우 '황당하다'는 느낌 밖에 없다. 뭐랄까, 상식과 교양을 가진 이들이 자리에서 다 밀려나가고 월급쟁이 철면피들만 언론과 공중파에 남아 사람들을 호도하고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그 때 그 사람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번화한 거리에서 만나는 장년층들에게선 한국 개인주의의 극단화된 이기심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욕하던 택시 기사를 위해 이제 한국은 고성장은 불가능한 나라가 되었고 그건 그만큼 한국이 경쟁해야 하는 세계가 20년 전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계단에 올라와 있다고. 노무현 정부는 경제적으로 선방하고..

지금에 대한 잡생각

일이 바빠서 - 이것도 핑계일 지 모르겠지만 -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다 보니, 책읽기, 글쓰기가 형편 없어졌다. 며칠 사이로 좋은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다음에 링크를 달아 블로그에 올려야겠다. 페이스북을 하다보니, 정리되지 않은 단상을 올리고 그것으로 끝을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글의 길이가 짧아지고 깊이는 얕아졌다. 여튼 그런 단상들 중 일부를 아래와 같이 옮긴다. 여유가 된다면 관련된 책들도 몇 권 읽고 길게 정리하고 싶지만, ... 늘 생각에만 머물 뿐이다. * * 정치에 대한 글을 적었다. 야당의 모습을 보면서 한심해서 적은 글이다. 몇 주 전에 적은 글이라 시의성이 떨어진다. 얼마 전 원내대표가 된 이종걸 의원은 한순간 언론에서 자신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건 (너무 불행..

무지한 백성들의 나라

작년부터였나, 아니면 그 이전이었나. 정치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아직도 시작하지 못했다. 마음 속의 분노와 절망은 너무 커져 폭발하기 직전이다. 오늘 광화문을 지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는 듯 사는 내가 미워졌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고 이젠 치료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건 아닌가 싶다. 조 단위로 해먹은 전직 대통령을 불러 조사하지도 못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이 그간의 갈등을 끊고 악수하는 자리에 한국 대통령은 없고 도리어 고산병을 극복하며 열정적으로 남미 외교를 하고 있다는 기사는, 대놓고 국민들을 무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벚꽃과 술

몇 개의 글 소재, 혹은 주제를 떠올렸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대학 졸업하면서부터 시작했지만, 가끔 글도 참 못 쓰고, 지적 성실성도 지적 통찰도 없는 이들이 교수가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그럴 여유가 존재했더라도, 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한다. 결국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동한다. 공동체는 무너졌고 쓸쓸한 개인만 남아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다. 지금 한국엔 너무 슬프고 화가 나는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지만, 내 일상에는 변화가 없다. 자본주의가 무섭다는 생각을 서른 초반에 했고 자본주의의 사슬에 매여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나를 마흔 초반에 발견했다. 쓸쓸하다. 벚꽃은 어김없이 봄이면 핀다. 벚꽃이 머리 ..

어떤 중얼거림.

2주째가 아니라, 3주째다. 인후염에 걸린 지. 선천적으로 목 부위가 약해 가을에서 겨울 넘어갈 쯤, 매해 목감기에 걸렸다. 몇 번은, 그 때마다 다른 여자친구가, 서울 변두리에 살던 나에게 약을 사다 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십 수년 전이니, 나도 나이가 든 건가. 아니면 그냥 세월이 흐른 건가. 해마다 마음이 건조해지고 아침해가 방 안 깊숙이 들어오지 못할 때, 목 안이 약간이라도 불편하면, 유자차를 마시고 목에 수건을 감고 자곤 한다. 인후염에 걸리기라도 하면, 매우 심하게 앓아눕기 때문이다. 그런데 3주 전부터 목이 아프기 시작해, 매일 아침 저녁으로 유자차를 마시고 물을 하루에 몇 리터를 마시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아직 앓아눕진 않았지만(필사적으로 앓아눕지 않기 위해 술을 마시면 간경화가 ..

misc. - 2015년 3월 10일.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짬뽕을 폰 카메라로 찍기란 쉽지 않았다. 임시로 있는 사무실 근처 중화요리점에서 짬뽕에 이과두주를 마셨다. 붉은 색으로 장식된 벽면 아래 짙은 갈색 나무 무늬 테이블과 검정색 천이 씌워진 의자에 앉아, 바람과 오가는 사람들에 흔들리는 출입문을 잠시 보았다. 이것저것, 그냥, 잠시, 보는 시절이다. 정해져 있지 않아 자유롭고 정해져 있지 않아 불안한 시절이다. 자유와 불안, 혹은 두려움은 등가적 관계를 이룬다. 최초의 인류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 우리는 자유를 가지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자유 속에 깃든, 끝없는 불안과 두려움도 함께 가지고 왔다. 하지만 중년이 되자, 자유는 보이지 않고 불안과 두려움으로만 채워졌다. 마음 속에서, 육체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이라..

12월 23일 사무실 나가는 길, 나는.

방배동으로 나가는 길, 중대 앞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 효자손을 든 5살 무렵의 꼬마 여자아이와 길거리 카페 문 앞 긴 나무 조각들로 이어진 계단을 네모난 카드로 뭔가 찾는, 흰 머리가 절반 이상인 중년의 여자가 실성한 듯 두리번거렸다. 어제 불지 않던 바람이 오늘 아침 불었고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년의 여자와 꼬마 여자아이는 제 갈 길을 잃어버린 듯했다. 겨울 추위는 제 갈 길 잃어버린 자들에게 동정을 베풀지 않는다. 지구의 겨울은 거짓된 길이라도 제 갈 길을 가라고 가르친다. 심지어 인류의 역사도 길 잃은 자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데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발목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호랑이 무늬의 앙고라 자켓을 입은 꼬마 여자아이는 추위에 새하얗게 변한 얼굴 위로,..

어떤 습작의 시작, 혹은 버려진 추억.

십수년 전만 해도, 소설가가 되리라는 꿈을 꾸곤 했는데, 지금은 놓은 지 오래다. 얼마 전 아는 형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잘 나가는 소설가들의 인세 이야기를 듣고선(뭐, 한국에서 몇 명 되지도 않지만), 약간 부러웠던 건 사실이다. 아니, 매우 부러웠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소설가가 되지 않은 것이. 적어도 이제서야 인생의, 아주 작은 일부를 안 것 같으니 말이다. 아마 그 땐 다 거짓말이거나, 짐작, 혹은 추정이거나 과도한 감정 과잉 상태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문득 습작을 하던 글이 눈에 띄어 옮긴다. 이것도 거의 십오년 전 글이군. 그 사이 한 두 편 더 스케치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술만 마셨다. 어떤 소설이 아래와 같이, 이렇게 시작했다. 그리고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역시 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