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6

뒤러Durer, The Knight, Death and Devil(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

The Knight, Death and Devil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Albrecht Dürer 알브레히트 뒤러 1513, Copperplate 동판화 기사 옆으로 죽음과 악마가 그가 가는 길을 방해한다. 이 명료한 동판화는 르네상스 시기의 신념을 보여준다고 할까. 인간이 가는 길을 과거의 유물들 - 죽음, 악마 - 이 훼방 놓으며 가지 못하게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종종 후기 고딕적 양식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사상 만큼은 근대적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기사는 도상학적으로 진리를 수호하는 자로 해석된다. 과거 종교인이 가졌던 역할을 이제 기사가 가지게 된 것이다. 이 극적인 변화는 르네상스 시기를 문예부흥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시기가 아니라, 급속하게 변화하는 혼돈기였음을 짐작케한다. 결국 고딕적..

건축예찬, 지오 폰티

건축 예찬지오 폰티(지음), 김원(옮김), 열화당 너무 늦게 이 책을 읽은 걸까. 나는 지오 폰티가 적어나가는 건축과 예술의 새로운 표현들을 접하며 건축이 왜 예술과 멀리 떨어지게 된 걸까 하는 의심을 했다. 아마 한국에서는 건축 관련 학과가 예술대학과 멀리 떨어진 탓이 클 것이라는 추측만 했고, 예술의 역사에서 건축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되새겼다. 이 책, 놀라운 책이다. 지오 폰티는 우아하게 건축과 예술을 찬양하며 현대적 예술이 지향해야 되는 바를 이야기해준다. 건축 속의 침묵으로 인해 건축을 사랑하라. 그 속에 건축의 목소리와 은밀함과 강한 노래가 감추어진 침묵으로 인해 (17쪽) 기계는 존재하기 위해, 그리고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역학의 소산이다. 건축은 꿈의 소산이다. 꿈과 같이, 건축은 움..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브뤼노 라투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 브뤼노 라투르 지음, 홍철기 옮김/갈무리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브뤼노 라투르(지음), 홍철기(옮김), 갈무리, 2009 야만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야 말로 야만인이다. - 레비 스트로스(Levi-Strauss) 직장 생활을 하며 이런 책을 읽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인가를 새삼 느꼈다. 솔직히 끔찍했다. 사무실에 인문학 책을 꺼내놓을 시간적 여유가 없고 집에 돌아와 책을 읽는 건 불가능하며(연신 나를 찾는 이제 20개월 정도를 넘긴 아들 녀석으로 인해), 내가 책을 읽는 시간이라곤, 아들이 잠든 후나 이동 중인 전철이거나 잠시 들른 커피숍이 전부다. 이 푸념이 나에게도 생소하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이들에게 독서는 참으로 멀리 있는 것인 듯..

살아야 하는 이유, 강상중

살아야 하는 이유 -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사계절출판사 살아야 하는 이유, 강상중(지음), 송태욱(옮김), 사계절 결국 우리는 각자 자신이 꿈속에서 제조한 폭탄을 껴안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죽음이라는 먼 곳으로 담소를 나누며 걸어가는 게 아닐까. 다만 어떤 것을 껴안고 있는지 다른 사람도 모르고 나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나는 내 병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유럽의 전쟁도 아마 어떤 시대부터 계속된 것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 나갈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계속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다. - 나쓰메 소세키, (산문집) 중에서 강상중 교수의 (사계절, 200..

2012년 대선과 근대적(modern) 의식

앞으로 자주 최저 기온을 갱신하는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출근길, 여러번 구두 바닥이 미끌,미끌거렸다. 그러나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나 또한 미끄러지지 않았다. 내 바람이, 미래가, 우리들의 마음이 미끄러져 끝없이 유예되는 것과는 반대로, 내 낡은 구두 밑은 의외로 눈이 녹아 언 길 위를 잘 버텨주었다. 잦은 술자리,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안 좋아졌다. 안 좋아지는 것만큼 세상도 안 좋아지고 개인 경제 상황도 안 좋아졌다. 말 그대로 올 한 해는 최악이다. 다행히 심심풀이 삼아 온 온라인 토정비결에선 내년 운이 좋다고 하니, 그걸 믿어볼까나. (이렇게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행운(저 세상의 논리와 질서)에 기대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서양미술사 강의를 할 때, 이집트 미술을 설명하면..

근대의 사회적 상상, 찰스 테일러

근대의 사회적 상상 찰스 테일러 지음, 이상길 옮김, 이음 기대했던 것만큼 책은 재미있지 않았다. 하긴 이런 인문서를 읽으면서 재미를 바란다는 것도 다소 당황스러운 종류의 일일 게다. 찰스 테일러는 역자의 말대로, '현재 도덕철학과 정치철학 분야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서구 사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하지만 찰스 테일러의 이름을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찰스 테일러의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그의 다른 저작, ' The Ethics of Authenticity'(불안한 현대 사회)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근대의 사회적 상상'은 '불안한 현대 사회'과 비교한다면, 다소 재미있는 구상이긴 하지만 호소력 있는 저작은 아니었다. 도리어 헤겔주의자로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