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6

Arvo Part, The Collection

Arvo Part, The Collection, Brilliant Classics “나의 칼레비포에그(Kalevipoeg)*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아르보 페르트 습관적으로 음반을 올리고 플레이 버튼를 누른다. 사각의 방은 어느 새 단조로운 음들로 가득차고, 마음은 가라앉고 대기는 숨을 죽이며 공기들의 작은 움직임까지 건조한 피부로 느껴진다. 이 때 아르보 페르트가 바라던 어떤 영성이 내려앉는다. 적대적인 느낌을 풍기며 나를 옥죄던 저 세상이 어느 새 감사한 곳으로 변하며 한 때 나를 힘들게 했던 아픔들마저도 나를 끝끝내 성장시킨 어떤 고비였음을 떠올리게 한다.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는, 20세기 후반 이후 최고의 작곡가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21세기 초반, 정확히 2..

불안

휴가를 내어도 마음은 불안했다. 전화가 무서웠다. 예전엔 이 정도까지 아니었다. 현대인 대부분은 이럴까. 아마 대부분 이럴 것이다. 불확실성은 우리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강조되는 불확실성. 연역법의 시대가 지나고 귀납법의 시대가 되었다. 합리론은 폐기되고 경험론이 주류가 되었다. 하지만 경험론이 강조하는 불확실성은 인간 이성의 오만함을 경고하지만, 현대 자본주의는 그 오만함을 지탱하기 위해 합리적 이성(?)이 결정 가능한 세계를 제한하고 이 안에서의 합리적 결정을 위한 다양한 이론들을 등장시킨다. 그러면서 한 쪽에서는 현대 사회의 복잡성을 강조하며 그 복잡성 위로 수학을 이야기한다.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고 결정할 수 없다는 경험론의 시대에 복잡성을 강조하며 이를 해결하고 결정할 수 있다고 밀어붙인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리처드 브라우티건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리처드 브라우티건 Richard Brautigan(지음), 김성곤(옮김), 비채 원제는 이지만, 보다 가 더 나아보인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하지만 이 책의 첫 번째로 등장하는 단편은 . 잭은 할머니와 30년이나 같이 살았다. 내 친할아버지는 아니었고 플로리다에서 물건을 팔던 이탈리아 사람이었다.잭은 사람들이 사과를 먹고 비가 많이 오는 곳에서 영원한 오렌지와 햇볕에 대한 비전을 파는 사람이었다. 잭은 마이애미 다운타운 근처에 있던 할머니집에 물건을 팔러 왔다. 그는 일주일 후 위스키를 배달하러 왔다가 30년을 눌러 살았으며, 그 후 플로리다는 그 없이 지내야 했다. - 중에서 (* 위 인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브라우티건은 사물의 관점에서 종종 서술하는데, 꽤 흥미롭다. '플로리다..

백설공주, 도널드 바셀미

백설공주도널드 바셀미(지음), 김상률(옮김), 책세상 이 번역 소설을 다시 영어로 옮긴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정도까지는 비슷할까, 아니면 전혀 다른 소설이 될까? 바셀미의 고도로 양식화되어 있는 미니멀리즘 소설을 한글로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을 테지만, 너무 성의 없이 옮겼다는 건 바셀미의 소설을 기다려온 나에겐 상당히 불쾌하게 여겨졌다. 실제 원작에서는 문장은 짧고 단순하며 표현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 번역본에서는 늘어지며 중언부언하면서 양식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 그러니 이 번역서를 읽고 바셀미를 읽었다고 하지 말기를. 도널드 바셀미는 20세기 후반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의 한 명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미니멀리즘 소설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제서야 소개된다는 것이 뒤늦..

미국의 송어 낚시, 리처드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 낚시Trout Fishing in America리처드 브라우티건Richard Brautigan(지음), 김성곤(올김), 비채 ‘미국의 송어 낚시’氏를 만나는 것이 쉬워진 탓에, 읽기는 맥주 캔 마시기와 비슷해졌다,고 빨간 말보루 담배를 피우던 그녀가 더듬, 더듬거리며 말했다. 티브이에 나오는 걸 그룹 아이돌이 꿈인 그녀는, 반드시 예능토크쇼에 나가 칼 마르크스의 에 대해 발언할 것이라고, 다시 나에게 말을 더듬, 더듬,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건전하고 낙천적이어서 그녀가 좋다. 그녀의 꿈과 행동, 그리고 현실에 심각한 오류가 있듯이, ‘미국의 송어 낚시’氏도 그와 그를 둘러싼 소설, 혹은 이야기가 가진 치명적 결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예의가 바르다는 이유로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

누가 미술관을 두려워하랴 - 2010 올해의 작가: 박기원

Who’s Afraid of Museums? - Artist of the Year: Kiwon Park 누가 미술관을 두려워하랴 - 2010 올해의 작가: 박기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010. 4. 6. – 5. 30. 나는 공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품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보다 공간 속의 작품, 즉 공간과 작품이 중립적이기를 원한다. 나는 이미 만들어진 환경이나 풍경은 그대로 있고, 그 위에 ‘미세한 공기의 흐름’, 팔의 솜털이 움직이듯 한 미세한 바람처럼 어떤 자극도 없어 보이며, 방금 지나친 한 행인의 기억할 수 없는 모습과 같은 최소한의 ‘움직임’을 원한다. – 작가 노트 중에서 무더운 날씨였다.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미술관으로 향했다. 실은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늘 보아오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