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43

여름휴가

고대의 유적이란, 비-현실적이다. 마치 만화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일상 속으로 들어오지만, 기억에 남지 않고 현실과는 무관하거나 반-현실적이다. 가야 시대의 고분 위로 나무 하나 없는 모습을 보면서 관리된다는 느낌보다는, 신기하게도 나무 한 그루 없구나, 원래 묘 위엔 나무가 자라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생각은 논리와 경험을 비껴나간다. 그 당시 인구수를 헤아려보며 이 고분을 만들기 위해 몇 명의 사람들이 며칠 동안 일을 했을까 생각했지만, 이 역시 현실적이지 못했다. 자고로 현실은 돈과 직결된 것만 의미할 뿐, 나머지는 무의미했다.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20대 때 알았더라면, 나는 돈벌기에 집중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이 점에서 진화..

회사 생활, 그리고 글.

일주일에 한 번 운동을 한다. 이마저도 힘들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 저녁을 먹고 아이와 놀다 보면 9시, 10시, ... 이러면 운동하러 가지 못한다. 그리고 잔다. 꿈을 꾼다. 꿈 속에서도 나는 쫓기고. 그러다보면 아침이 오고 곱게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힘을 내자고 다짐을 한다. 이렇게 아빠,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알게 된다. 종종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놀란다. 이렇게 늙었다니. 그러고 보면 늙는다는 걸 인식하며 세월을 보내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 늙었구나 하고 인식한다. 그리고 그 때 뿐이다. 나는 아직 클럽에 갈 수 있다고 여기고(간 적도 없지만), 아직 옆을 지나는 여대생에게 말을 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말을 건 적도 없지만). 회사 워크샵을 다녀왔지..

맥주와 커피

며칠 전. 맥주와 포카칩. 대학 시절, 작디 작은 자취방에서 먹던 기억으로 가족을 다 재우고 난 뒤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 정확히 말해 예전의 맛이 아니었다. 그 사이 입맛이 변했나. 아니면 ... ... 한파주의보 내린 오전. 미팅 전 카페에서 잠시 메모. 쓸쓸한 풍경.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걸어가면서 만들 수 없는. 오전에 커피를 많이 마신 탓에, 내리지 않으려 했으나, 끝내 오래된 커피 알갱이로 만든 드립. 이렇게 물만 부으면 되는 커피처럼, 내가 걸어가는 길 위로 누군가에게 도움 되는 어떤 것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어느 화요일 선릉역 인근

무관심한 듯 시선을 거두는 행인 A, B, C, ... 무수한 알파벳들은 실은 다른 알파벳들, 다른 숫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봐주고 어떻게 평가할까에 극도로 민감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가치 기준을 가지고 봐주고 평가하느냐는 그 다음 문제였다. 커피 위로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선릉역 인근 빌딩숲에서는 그 수를 세기 어려운 모기들이 가을 깊숙한 곳까지 진을 치고 있었다. 화요일이 왔고, 수요일이 올 것이고, 목요일, 금요일, ... 2013년이 지날 테지만, 우리에게 인생의 해답은 절대로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안 그녀는 연애를 포기했고 그 남자는 한국을 떠났다. A는 그림을 포기했고 B는 사업을 시작했다. 15세기 르네상스의 위대한 세속적 가치, 뉴튼이 공표했고 데카르트가 뒷받침했던 ..

침묵하며, 언론의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한국의 언론. 그리고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옮긴다. 어제 아침 CNN에 올라온 기사라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 언론, TV에서는 다루어지지 않는다. 날이 멀다하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시국선언을 하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다. 언론과 관련된 교과서에는 '비판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은 그런 언론을 찾기 어렵다. 이 나라의 미래는 이렇게 어두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의 화살은 지금 침묵하는 언론들에게, 그 침묵을 강요하는 정부와 여당으로, 그 옆 무능력하기 이를 데 없는 야당에게까지 돌려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런 정치적 지형에 대해 알 생각도, 알아도 침묵하는 국민들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자연스럽게 육체의 나이에 익숙해지는 2013년.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이 아니라 몸이 쓸쓸해지는 나이. 사십대. 날씨 변화에 터무니없이 민감해지(또는, 아프)고, 어린 아들의 웃음에 눈물이 나고(고마워서) 아내의 잔소리가 듣고 싶어지는(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가지기 위해), 끝도 없이 물컹물컹해지는 마흔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지나간 젊음 위로 쌓여 얼어간다. 얼어붙은 불안은 깊고 날카로운 냉기를 시간 속으로 밀어넣고. 잠시 내일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사람들이 내 주위를 피한다. 미래는 무섭고 현재는 견디기 어렵다. 현대 문명은 어쩌면 과거 문명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불안들을 켜켜히 쌓아올려놓은 것은 아닐까.

반성과 정리

오늘 커피를 많이 마신 탓에 잠이 잘 올련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글쓰기란 일종의 반성이자, 정리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행동의 지침과도 같은 역할을 하곤 한다. 오늘 쓴 글의 일부를 옮기면서 하루를 마무리 해볼까. '사람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 따위는 없다. 하지만 친한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외톨이는 드물다. 유능한 협상가는 협상 파트너를 친구로 만들 줄 알며,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만든다. 그리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고 나아가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고 예상되었던 결과물 이상의 성과를 달성하게 만든다. 왜냐면 성공적인 협상이란 서로의 이기심을 채우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가 모두 승자가 되는 협력의 장이기 때문이다.' 두 편의 글을 마무리 하면서 참 많..

지금 경계선에서, 레베카 코스타

지금, 경계선에서 Watchman’s Rattle 레베카 코스타 Rebecca Costa 지음, 장세현 옮김, 쌤앤파커스 http://www.rebeccacosta.com/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미 설명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문명 붕괴의 패턴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슈퍼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계하고, 벤처자본 모델을 이용한 완화책의 실시로 시간을 벌고, 우리의 두뇌를 활용하여 침체되어 가는 인식 능력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인식 한계점에 대응하여 자연이 준 해결책인 통찰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신경과학은 장차 현대인의 생존을 좌우할 열쇠를 쥐고 있다. (362쪽) 책의 후반부는 다소 실망스럽다. 이 실망스러움은 책 끝에 붙은 저명 인사들의 찬사로..

논리와 현실, 그리고 우리 삶의 불투명성.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었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문득 내 나이를 떠올리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자 아팠다. "상이한 두 개의 세계에서 일했습니다. 국영은행 시절 나는 국가의 돈을 가지고 화폐와 대출정책을 실행했습니다.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최우선 순위는 다음과 같았어요. 첫째, 이 정책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둘째, 이 정책은 기업과 노동을 위해서도 유익할까? 그리고 세 번째 순위에 가서야 이 정책이 은행에도 유익할 것인가를 따졌습니다. 사적 자본을 위해 일할 때에는 우선 순위가 전도되었어요. 이 정책이 은행에 유익할까에 대한 질문이 우선이었지요." - 에드가 모스트(동독 출신의 경제학자), 자서전 '자본을 위해 봉사한 50년' 중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