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 12

빈곤과정, 조문영

빈곤과정 Poverty as Process 조문영(지음), 글항아리 조박사님, 그만두십시오. 아니 중국 공민도 아니고 외국인이 와서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여기 정부 쪽 사람들 반감 가질 게 뻔합니다. 한국 사람들 조선족 마을 와서 이것저것 대꾸하면 우리야 기분 나빠도 같은 동포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조 박사님은 이 중국인들한테 완전 외국인 아닙니까. 이 사람들이 법을 모르든 어떻든 그거야 그들 사정이죠. 아니 자기들 친척 다 있고 한데 어딜 괜히 나선답니까. 저 같은 중국인 기자도 이런 일에 관여하면 십중팔구 이기지 못하는 게 뻔한데 아니 외국서 온 사람 얘기를 도대체 누가 들어준답디까 … … 물론 도우려는 맘은 알겠지만 이쯤에서 그만두십시오. (175쪽) 일본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의 책들을 읽..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지음), 문학과 지성사 생각보다 많이 읽혀지는 책이라는 데 놀랐다. 2015년에 나와 벌써 24쇄를 찍었으니, 인문학 서적으로는 상당히 이례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책이다. 어느 수준 이상의 깊이를 가진 국내 학자의 책이라는 점도 좋고 적절한 시각에서 우리가 아닌 낯선 이들에 대한 환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도 좋다. 이제 한국의 민족주의 이야기를 뒤로 미루고 우리 사회 안으로 들어온 이방인들에 대한 논의가 시작해야 시기에 이 책이 가지는 인문학적 성찰은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으로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

처음 만난 오키나와, 기시 마사히코

처음 만난 오키나와 기시 마사히코(지음), 심정명(옮김), 한뼘책상 기시 마사히코의 책은 몇 해 전 읽었다. , 사회학 이론서만 읽다가 제대로 사회학을 읽었다는 느낌을 주었던 책이었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골랐는데, 과연 그런 책일까 싶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아마도 류큐 왕국을 1609년에 무력으로 제압했을 때부터 일본인에게는 오키나와에 대한 식민주의적인 감각이 있어왔다. (235쪽) 일본과 오키나와의 관계는 한 마디로 말해 차별적 관계다. 우리는 오키나와를 차별하고 있다. (24쪽) 차별이란 단순하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벽을 쌓고 거리를 둔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쪽 편과 저쪽 편의 구별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심보선

그 쪽의 풍경은 환한가심보선(지음), 문학동네 이유선과 심보선을 헷갈렸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아마 그렇게 오해하고 심보선의 시집들을 사 읽은 듯하다(아닐 수도 있다). 심보선, 그는 아마 한국의 시인들 중 정해진 독자층이 있는 몇 되지 않는 시인일 것이다. 신간 시집이 나오면 온라인 서점 메인에 책 소개가 실리고 여러 신문에도 출간 소식이 실리니까. 그 정도로 탁월한가보다는 적어도 돈을 주고 구입해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이 정도면 탁월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나 또한 그의 시집을 사 읽었다. 이번엔 그의 산문집이다. 그리고 읽으면서 이유선을 떠올린 것이다. 나는 왜 이유선의 를 시인 심보선이 썼다고 생각했을까, 이름의 끝자리가 똑같다는 이유였을까. (참고로 이유선의 저 책은 정말 좋은 서평집이다. 왜 그..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는 지도. 그래서 그 조각이나 파편들을 이어붙여 우리가 이해가능하거나 수용가능한 형태로 만들고자 하는 학문적/이론적 시도는 애체로 불가능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삶이나 그 삶 속의 사람들, 사건들, 이야기들을 분석하고 체계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그 조작과 파편들의 일부이거나, 그 일부를 묘사한 글이나 풍경이 전부이지 않을까. 그리고 기시 마사히코의 이 책, 은 그렇게 시작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주욱 늘어..

어떻게 자유주의에서 벗어날 것인가, 알랭 투렌

어떻게 자유주의에서 벗어날 것인가알랭 투렌(지음), 고원(옮김), 당대 다소 급하게 읽은 것일까. 투렌이 이야기하는 ‘2와 2분의 1 정치’를 제대로 이해한 것일까. 미심쩍긴 하다. 실은 이런 고민할 시간이 없다. 내일은 월요일, 출근을 해야 하며, 나를 기다리는 몇 개의 회의가 있고, 내가 채워야 문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나도 월급쟁이인 형편에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상한 위치에 서 있으며, 똑똑하고 성실하게 일하지 않는 자를 매우 싫어하는 전형적인 관리자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처럼 고객 제일주의를 표방하며 고객에게 욕을 들어가면서 꿋꿋하게 자리를 리더의 모습을 지키려고 애쓴다. 이런 내가 알랭 투렌의 10년도 더 지난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 삶이 변하거나 내가 갑자기 ..

일상 재구성 조사법 Day Reconstruction Method

DRM이라고 하면, Digital Right Management만 아는 나에게, Day Reconstruction Method는 생소했다. 이에 관련 자료 하나를 찾아 프린트해놓았는데,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이 조사방법론은 각 개개인들이 영위하는 삶의 질을 조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내가 프린트해놓은 자료는 Approaches to Well-being이라는 슬라이드가 문서 첫 장에 등장한다. 조사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어제의 일을 사적인 내용들까지 포함해서 적는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각각의 이야기들로 나누어서 리스팅을 해야 하며, 해당 이야기마다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기술해야 한다. 그리고 각 이야기마다 시간도 적는다. 그 다음에는 기술된 어제의, 이야기들에..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게오르그 짐멜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 게오르그 짐멜 지음, 윤미애 외 옮김/새물결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게오르그 짐멜(지음), 김덕영, 윤미애(옮김), 새물결 국내에서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 ~ 1918)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저조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는 철학을 연구하였으며(신칸트주의자이면서 니체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에 있다), 사회학, 미학, 문화비평을 아우르며, 동시에 그의 글들은 대부분은 현대 문명이나 문화, 대도시 사람들의 마음/정신, 일상, 태도, 형식에 대한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고, 그의 문장은 짧으면서 뛰어난 문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세기 말, 20세기 초 이런 글을 썼다는 점에서 놀라움마저 불러일으킨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발터 벤야민 이전에, 그 누구도..

어느 사적인 일요일

안개가 자욱하게 시야를 가린다. 겨우 일어났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발바닥이 아팠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주문한, 드립용으로 잘게 부서진 브라질 산토스 원두로 드립 커피를 내린다. 물 끓는 소리, 위로 향하는 수증기, 떨리는 손, 돌보는 이 없는 듯 무심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뒤엉켜 어느 일요일 아침을 구성하였다. 요즘 힘겹게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 본래 ‘박탈된’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사적인’이라는 용어는 공론 영역의 이러한 다양한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완전히 사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선 진정한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 박탈되었음을 의미한다. 타인이 보고 들음으로써 생기는 현실성의 박탈, 공동의 사물세계의 중재를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거나 분리됨으로써 형성되는 타인과의..

세계화의 폭력성,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프랑스의 사회학자. '시뮬라시옹'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의 중심에 서있었던 학자이다. 나는 장 보드리야르의 암울한 사회 분석을 싫어했으며, 그것이 진실로 드러났을 때의 끔찍함을 무시하면서 장 보드리야르를 전파하는 일군의 학자들을 경멸했다. 그들 대부분이 의지하는 책이나 이론은 오직 시뮬레이션 이론이었으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극단적인 반-플라톤주의자이면서, (우호적으로 평가하자면) 마키아벨리와 같은 전도된 이상주의자였을 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20세기 후반 이후의 매스미디어에 의해 희석되고,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은 사라지고 미디어들에 의해 새롭게 조작된 것들이 진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하이퍼-리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