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14

앙드레 말로와 나

공부를 띄엄띄엄한 탓에, 길고 체계적인 글에 약하고 외국어는 그저 읽을 수준 밖에 되지 못한다. 국제 행사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고 이런저런 일 탓에 불어 공부를 놓아두고 있었던 터라 간단한 인사조차 가물가물한 지경인데, 이번에 들어오신 선생님들 인사 드리러 가야한다. 몇 시간만 하면 간단한 회화 정도를 될 것같기도 한데, 오늘 밤엔 밀린 일도 하고 불어 공부도 해야한다. 오늘 가자는 걸 내일로 미루었다. 헐. 앙리 고다르는 세계적인 학자인데, 국내에선 인지도 낮다. 브라질에서 오신 에드손 로사 드 실바 선생도 브라질에선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는 분이라, 브라질 대사관에서 협회로 연락이 왔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의 인문학 지식인층은 너무 얕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세상에나, 앙드레 말로를 ..

트레이시 에민 Tracey Emin : "There's something wrong?"

Self-Portrait as a Small Bird, 2002 Appliqued blanket ⓒ Tracey Emin. Photo: Stephen White. Courtesy Jay Joplin/White Cube, London 그녀는 13살 때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그녀는 기억 사이에서 왔다갔다 한다. 그녀의 첫 솔로 전시 제목도 "A Wall of Memorabillia"였다. 그러고 보면 예술가는 자신의 상처 속에서 헤매다 사라지는 모양이다.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95. Appliqued tent, mattress and light. 122 x 245 x 215 cm. ⓒ Tracey Emin. Photo: Stephen Whi..

모래의 여자, 아베 코보

, 아베 코보(지음), 김난주(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55 그는 소설이 끝나고 그 모래의 세계 속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까. 그 속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벗어나지 못했다면, 그래서 그 속에서 그가 늙어죽고 그녀가 늙어죽고 그들이 살던 집이 모래로 뒤덮이는 것을 아베 코보가 보여주었다면 독자들은 무슨 말을 할까. 혹시 그녀처럼 ‘무슨 상관이에요. 그런, 남의 일이야 어떻게 되든!’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감동적이지도 않고 그렇게 슬프지도 않다. 그저 쓸쓸할 뿐이다. 모래의 세계 속이나 낮고 높은 건물로 둘러쳐진 도시 속이나 갇혀있기는 마찬가지다. 소설은 육체의 고립을 극대화했을 뿐이지, 소설 밖 우리들의 의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어딘가에 갇혀있었다. 아베 코보는 갇혀있는 우리들의 한 면..

불안의 개념, 쇠렌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 쇠렌 키에르케고르 지음/한길사쇠렌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Begrebet Angest)』, 임규정 옮김, 한길사, 1999.비트겐슈타인이 키에르케고르를 두고 ‘진실로 종교적’이며, 자기에겐 ‘너무 심오하다’라고 말했을 때, 여기에서 우리는 키에르케고르의 철학 세계의 한 단면을 알아차릴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언제나 ‘신앙’이었고 그 신앙으로 자신이 구원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가. 그가 ‘확신과 내면성은 사실상 주체성이다’(p. 365)라고 말했을 때 난 이미 확신과 내면성을 내 속에서 몰아내고 있었으며, 그가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이다’(p. 397)라고 말했을 때 난 불안을 앞에 두고 ‘고개 돌리기’와 ‘눈감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