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레네 2

어느 일요일의 닫힌 마음

일요일의 평온함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내 마음의 무너짐은 거침없이, 일상을 불규칙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고, 자주 불투명한 인식과 판단, 혼란과 착오, 표현력의 빈곤과 부딪히게 만들었다. 생각이 사라지는 법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 존재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데카르트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 삶이 한 번도 명증한 확실성 위에 있었던 적이 없었고 그저 그렇다고 여겼을(인식했을) 뿐이고, 데카르트도 그랬을 뿐이다. 플라톤의 번역서 한 권을 사러 나갔다. 광화문으로. 근처 흥국생명 빌딩으로 향했다. 망치질 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적인 설치 미술이자 공공미술(public art)이다. 이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유명세를 치를 만 하지만, ..

먼 미래에 ...

루이 알튀세르의 (저주받은 듯한 느낌의) 자서전, '미래를 오래 지속된다'가 재출간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93년, 돌베개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니, 벌써 십수년이 지났다. 이 책, 내가 20대 시절 생각나면 뒤적이던 책이었다. 잔인할 정도로 자신을 파고들며, 자신이 목 졸라 죽인 아내에 대한 기억을 태연하게 하는 죽기 전 알튀세르의 문장들 앞에서, 어쩌지 못하는 과거 앞에서 모든 걸 포기하고 모든 걸 포기하지 않는 어떤 지식인의 슬픈 초상 앞에서, 그나마 내 20대는 낫다고 위안받던 시절이 있었다. 일 때문에 잠시 나간 삼성역 반디앤루니스 서점(아직도 서울문고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에서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삐에로'와 알랭 레네의 '내 사랑 히로시마'를 샀다. 아, 오랫만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