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리 3

후쿠시마의 풀 하우스

퇴근하여 집에 오니, 서재에 로봇청소기가 전사해 있었다. 출근하면서 방문을 살짝 닫아두고 블라인드를 내려 햇살이 들어오지 않게 한다. 방문을 열어두었다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집을 한 바퀴 돌아다니는 로봇청소기가 들어와 바닥에 스파이크로 세워둔 스피커를 쓰러뜨리고 결국엔 바닥에 이리저리 있는 전선들을 돌돌 말아 먹고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분명 방문을 닫아두고 출근했다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아니면 로봇청소기가 들어갈 수 있겠다 여겼던지, 이젠 집 구조에 익숙해져 용감해진 것인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와 퇴근길 더위로 땀 덤벅범이 된 나는 폭발하고 만다. 혼자 화를 내면서 로봇청소기가 먹은 전선들을 하나하나 돌려가며 꺼내고 쓰러진 스피커를 바로 세우고 바닥에 널브러진 레코드판과 스탠드등..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지음), 강방화(옮김), 소미미디어, 2021 이불에서 팔만 꺼내 시계를 얼굴 가까이 대어 보니 5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환갑 기념으로 아내 세쓰코와 딸 요코가 센다이에서 사다 준 세이코 손목시계였다. (154쪽) 최근 소설가 유미리의 근작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없었다. 마치 사라진 듯, 한국의 서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헌책으론 구할 수 있지만, 그녀의 존재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에 다소 안타까웠다. 재일한국인 여류 소설가. 아쿠타가와상 수상 때부터 갖은 논란의 중심에 섰던 소설가. 재일한국인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자신의 중간자적 존재를 무기 삼아 싸우던 소설가. 그녀의 소설들은 어느 순간 번역되지 않았고 그녀도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녀, 어..

세상의 균열과 혼의 공백, 유미리

요즘 친구들도 유미리를 읽을까. 유미리를 읽지 않는다면, 누구를 읽을까.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그녀. 해질녁 공원 계단에서 죽은 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그녀.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 도서관에 빌린 강상중의 책 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적 발언 때문에 강연회를 할 때마다 극우파의 공격에 대비해 배에 신문지를 넣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는 강상중 교수의 책을 보자, 문득 유미리가 떠올랐다. 서재에 이미 그녀의 책은 다른 책들로 인해 밀려밀려 어디로 사라지고 ... 도서관에 가서 그녀의 책을 빌려 읽어야겠다. 그녀의 트윗을 팔로워했는데(일본어를 할 줄 모르면서), 그녀의 딸인가 싶다. 혼자 딸을 키우고 살아가는 작가 유미리... (주제 넘은 생각이지만) 가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