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19

추석 연휴, 코로나 확진

지난 주 목요일에 걸렸으니, 이제 나흘이 흘렀다. 심하게 아프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무기력했고 밤에 잠을 잘 수 없었으며, 두통과 인후통은 종종 견디기 어려워 약을 먹어야만 했다. 코로나 탓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니 책이나 실컷 읽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약을 먹으면 졸렸고 졸리지 않을 때는 머리가 아프거나 힘이 없었다. 뭔가 집중할 수 있는 체력이 되지 않았다. 남은 격리기간 이틀은 평일 재택 근무다. 아마 쉴 새 없이 전화가 울려댈 것이다. 좀 쉬고 싶긴 한데 말이다. 세상이 혼란스럽게 돌아간다. 이럴 때 기회가 생기는 법인데, ... 나에겐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뭔가 저질러야 되는 건가. 고향집 뒷산에 가서 아버지 계신 곳을 둘러보고 내려왔다. 잡..

Jazz, Jazzy, and Gonzalo Rubalcaba

토요일이 끝나고 일요일이 시작된다. 어수선한 주말이 흐르고 가족이 잠든 새벽, 음악을 듣는다. 그러나 예전처럼 쉬이 음악 속에 빨려들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 나이가 들면 세상 사는 게 조금은 수월할 것이라 여겼는데, 예상과 달리 그렇지 않더라. 예전엔 화를 내고 분노하게 되는 상황임에도, 지금은 그냥 무덤덤하게 넘기고 있는 나를 보면서 쓸쓸해지곤 한다. 나이가 드는 건 좋지 않다. 이젠 마음이 뛰지도 않는다. Jazz를 들으면 Jazzy해질 것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곤잘로 루발카바는 한국에 여러 번 내한한 쿠바 하바나 출신의 피아니스트다. 그가 찰리 헤이든과 음반을 냈는데, 한국에선 이제 구하지 못하고 해외 주문을 해야 한다. 예전에는 음반을 구하기 위해 해외 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했는데,..

음반들, 그리고 우리들의 기다림

몇 번의 이사,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생의 변화 앞에서 음반들은 그 특유의 친화력과 생기를 잃어버렸다. 한 때 자신들의 소리를 보여줄 도구들마저 없었을 때, 아마 그들은 나를 원망했을 것이다. 주중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토요일 오전, 음반들 한 무더기를 꺼내 한 번 정렬해 보았다. 다들 오래된 음반들이다. 심지어 존 케이지(John Cage)를 연주한 음반도 눈에 보이지만, 몇 번 들었던가, 언제 마지막 들었던가, 그런 기억마저도 없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알아줄 이를 만났을 때에만 그 빛을 발한다. 그건 그녀도, 그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대상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알리고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아프고 구차하고 쓸쓸한 일인가를, 한 번이라도 ..

필소굿 Feels so good

척 맨지오니의 저 LP가 어디 있는가 찾다가 그만 두었다, 술에 취해. 몇 해 전 일이다. 혹시 결혼 전 일일 지도 모른다. 아니면 술에 취한 채 이 LP를 찾았는데,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사이 나이가 든 탓에 찾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도 있다'는 서술어이 가지는 느낌은, 젊었을 때는 '가능성'이었으나, 나이가 들면 무너진 터널 앞에 서 있는 기차같다. '수도 있다'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무모하게 시도했다는 의미다. 가령, '그녀와 키스할 수 있었는데', '그녀에게 고백할 수 있었는데', 혹은 '사랑하던 그를 붙잡을 수 있었는데' 따위의 표현들과 밀접한 연관를 갖는다. 결국 생명이란 생명의 지속과 연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그 시작은 작은 만남과 사랑으로 포장..

새벽을 견디는 힘

CANDID 레이블. 지금은 구하지도 못하는 레이블이 될 것이다. 집에 몇 장 있는데, 어디 꽂혀있는지, 나는 알 턱 없고. 결국 손이 가는 건, 역시 잡지 부록으로 나온 BEST COLLECTION이다. 레코드포럼, 매달 나오는 대로 사두었던 잡지, 그 잡지의 부록은 클래식 음반 1장, 재즈 음반 1장. 제법 좋았는데. 유튜브가 좋아질 수록 음반은 팔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하기 힘들던 시절의 아련함은, 우연히 구하고 싶은 음반을 구했을 때의 기쁨, 그리고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아는 이들을 불러모아 맥주 한 잔을 하며 낡은 영국제 앰프와 JBL 스피커로 밤새 음악을 듣던 시절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느껴진다.

Beyond the Missouri Sky, Charlie Haden & Pat Metheny

Charlie Haden & Pat Metheny Beyond the Missouri Sky Verve, 1997 여러 번 들었던 음반, 그러나 딱히 좋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던 환경이 아니었던 걸까. 아니면 훨씬 더 좋은 음반들을 들고 있어서 그런 걸까. 토요일 저녁, 서재에 앉아 찰리 헤이든과 팻 메쓰니의 '미주리 하늘 너머'를 들었다. 악기의 구성이나 흐름은 단조롭지만, 풍성한 서정성은 '역시'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찰리 헤이든은 베이스를, 팻 메쓰니는 어쿠스틱 기타와 다른 악기들을 맡았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이 음반은 그들의 다른 앨범들-정말 뛰어났던-과 비교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쉽게 들을 수 있으면서, 컨템플러리 재즈가 가지는 서정성..

Summer Clouds, Summer Rain

간밤에 잠을 설쳤다. 일요일 오후에 낮잠을 잤고 밤 늦게 푸짐한 저녁 식사를 한 탓이다. 집 근처 홈플러스 마트에 갔더니, 프랑스산 삼겹살 1KG을 9,800원에 팔고 있어서, 이를 소주, 맥주와 함께 먹었는데, 12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소화를 못 시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냉동 삼겹살이라 고기는 다소 질겼다. 먹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싼 가격을 감수해야 했다. (그건 그렇고, 삼겹살 가격은 떨어지지 않을 것인가?) 오전에 사무실에 도착해 두 번의 회의를 했더니, 오전 시간은 다 지나가버렸고, 수면 시간이 채 3시간이 되지 않는 터라 점심식사 대신 낮잠을 택했다. 의자에 기대어 잠시 눈을 부치는 수준이었으나, 한결 나아졌다. 투명한 유리창으로 밀려드는 햇살의 두께와 밀도, 밝기는 한 여름날의 그것..

존 콜트레인의 india

흐린 하늘 아래의 지친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을 책 한 권. 몇 주 전부터 프린트해놓고 읽지 못한 여러 저널의 기사들. 영문 비즈니스 저널 한 권과 몇 달째 쓰고 있는 노트. 그리고 재즈. 내가 알고 있는 재즈 중에서 가장 프리하면서도 극적인 도입부를 가진 음악. India.귀에 오래된 이어폰을 끼고 존 콜트레인와 에릭 돌피가 수놓는 극적인 긴장감을 즐겼다. 지하철 역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이번 지하철역에서 다음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지하의 공간 안에서, 그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내 평범한 일상은 시작되었다. 유투브에서 음악을 옮긴다. 이렇게 콘텐츠를 쉽게 구하지 못했던 지난 날엔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반대로 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자, 콘텐츠의 가치는 더 떨어지는 느낌이다. 존 콜트레..

봄날 오후, 맥주 한 잔과 즐기는 알랭 마이에라스 트리오 Alain Mayeras Trio

Alain Mayeras Trio - Tenderly - 알랭 마이에라스 트리오 (Alain Mayeras Trio) 노래/강앤뮤직 (Kang & Music) 오랜만에 듣는 부드러움이었다. 음반이 많아지다 보면, 몇 년에 한 번 들을까 말까 하는 음반이 생긴다. 결국 1년에 듣는 음반들을 세어보면, 100장 남짓 되려나 싶다. 그런데 사람 욕심이라는 게 말처럼 제어하기 힘들어, 다 읽은 책을 버리지 못하고 음반도 버리지 못한다. 어느 때는 내가 이 책도 가지고 있었구나, 이 음반도 있네 하는 식이 된다. 참 미련스럽게도,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는 습성을 보면, 내 직업은 딱 수집가, 그것도 박물관이나 도서관의 직원이 딱 인데. 어제 서재를 정리하면서 음반들도 함께 정리했다. 그러다가 한 두 번 가볍게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