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19

한 잎의 여자

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1978년도 작품) 일을 하다 잠시 한 눈 판 사이, 오규원의 오래된 시가 눈을 환하..

어느 토요일 오전

바쁜 일정 탓에 2주 정도 청소를 하지 않았더니, 혼자 사는 집은 시디, 책, 옷, 노트들로 어지러웠다. 마치 긴 홍수 뒤 강 하구와 맞닿은 해변처럼. 창을 열었고 난초에 물을 주고 집 청소를 했다. 봄 먼지로 얼룩진 바람이 밀려들어왔다. 어수선한 마음에 먼지가 쌓였다. 많은 상념에 잠기지만, 정리되는 법이 없다. 그저 쌓여만 갈 뿐이다. 서재에 읽지 않은 책과 듣지 못한 시디가 쌓여가듯, 마음은 제 갈 방향을 잃어버렸고 올 해 봄은 자신이 2010년의 봄인지, 2011년의 가을인지, 혹은 먼 미래의 겨울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내 발걸음도 갈팡질팡했다. 요 며칠 리더십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또 다시 변해야 될 시기가 온 것이다. 언젠가 Sidsel Endresen에 대한 ..

The Bad Plus

오래된 친구들과 익숙한 술집에 앉아,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크게 들어놓은 90년대 초중반의 락 뮤직 속에서, 맥주 마시는, 그런 행복한 기회가 있었지만, 아트페어 준비 회의가 새벽 0시 40분에 끝나는 바람에 가지질 못했다. T_T 늘 그렇듯, 막판까지 힘들게 하는 것은 부스와 공간 설치/디스플레이, 오프닝 일정이다. 그리고 새벽에 들어온 집. 학.학. 거친 여름날의 쓸쓸한 열기로 가득하기만 하다. 대신 흥미로운 음악을 발견했다. 이 음악을 블로그 메인에다 걸어두신 실비아님께 감사를. (CD 사야겠다.) ... 이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낯선 너바나인가.

무거운 일요일 오후.

마음은 아프고 머리는 복잡한 일요일 오후다. 종일 집에 틀어박혀 청소하고 커피마시고 음악 들으면 보내지만, 몸은 무겁고 영혼은 쓸쓸하기만 하다. 주중 내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탓에, 담배를 좀 피웠더니 금세 목이 칼칼해졌다. 한 여름날과 같은 더위는 내 땀샘들을 자극하고 낮게 지나는 구름들은 내 마음의 세포들을 주눅들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재즈 시디를 찾다가 못 찾고 유튜브 동영상을 옮겨놓는다.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 잔 마시려고 했지만, 음주에의 욕구를 꾹 누른다. 잘못 걸려온 전화가 유일한 일요일이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보내는 하루도 있기도 하지만, 그것이 의례히 유쾌하고 활기 있어야 할 일요일일 땐, 기분이 상하기도 하는 법이다. 다음 주 일요일엔 전시라도 챙겨보고 와인이라도 마셔야겠다..

Dindi

이마트에서도 원두커피를 파는지 몰랐다. 어느새 원두커피도 대중화된 셈이다. 몇 번의 유럽 출장으로, 입에 원두커피가 붙어버렸다. 그 사이 터키에서 물 건너온 차와 스리랑카에서 넘어온 홍차가 그대로 먼지를 먹고 있는 중이다. 어디 찻집에라도 줘야할 판이다(혹시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마트에서 파는 원두커피의 품질과 맛은 '글쎄'올시다. 딱히 기대한 것도 아니었고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그런데 원두커피, 마시면 마실수록 묘하게 빠져드는 것이 여간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끓려 증기를 올려 뽑아내는 커피를 마시다가, 그 다음에는 커피를 망으로 된 부분에 넣어 뜨거운 우려먹는 방식으로, 요즘은 드랍 커피를 먹고 있다. 이 중에서 드랍커피가 제일 낫다. 필터 종이에 대한 불만, 주전자에 대한 불만이 늘고 ..

연락두절의 계절

FIAC에 나온 어느 뉴욕 갤러리 부스 전경. 사람들이 지나다녀서 정확하게 찍지 못했다. 연락두절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바람은 차고 햇살은 허무하기만 하다. 내일은 한남동의 갤러리와 강남의 갤러리 몇 군데를 둘러보고 강남이나 홍대에서 저녁 식사를 할 예정이다. 오전에는 후배의 할머님 장례식장에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차라리 후배에게 술 한 잔 사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냥 글만 올리기 밋밋해서, 사진 한 장과 동영상 하나, 음악 하나를 올린다. 위 사진은 파리 FIAC에서 본 뉴욕의 갤러리 부스다. 노란 색 사각형 판 위에 알듯 모를듯 텍스트가 적힌 작품들이 진열된 모습이 무척 흥미로왔다. 그리고 그 앞에는 세 개의 모니터에 넘어져 고통스러워 하는 축구선수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Fairytales, Radka Toneff & Steve Dobrogosz

Fairytales Radka Toneff (vocal), Steve Dobrogosz (piano) Ales2 Music, Korea (Odin Records) 꽤 오래 전에 재즈가 크게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빌리 할러데이(Billie Holiday)의 노래가 광고 배경 음악으로 깔리고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가 광고 카피에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나는 그 유행이 못마땅했다. 사람들은 그런 유행이 어떤 문화의 저변을 공고히 할 것이라 믿지만, 대부분 그렇게 되지 않는다. 도리어 깊이 있는 애호가들은 덧없는 유행의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기고 유행에 빠진 사람들은 고작 사라 본(Sarah Vaughan)의 ‘A Lover’s Concerto’ 정도나 기억할 뿐이다. 어쩌면 나는..

Flight To Denmark , Duke Jordan Trio

Flight To Denmark Duke Jordan Trio Steeple Chase, Denmark 눈으로 뒤 덮인 숲 속에 한 남자가 서있다. 두꺼운 외투에, 끝이 뾰족하게 솟은 모자, 둥근 안경, 두 손은 외투 주머니에 꽂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쌓인 눈의 울퉁불퉁함 때문인지, 사진을 찍은 사람이 약간 비스듬하게 카메라를 쥐고 있는 탓인지, 이 남자의 서 있는 포즈가 약간 오른 쪽으로 기울어져, 불안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흰 색으로만 채색된 그림 한 가운데 어정쩡하게, 잘못 자리잡은 듯한 그 남자의 이름은 듀크 조단(Duke Jordan). 1922년 태생의 그는 1940년대 후반 찰리 파커 쿼텟(Charlie Parker Quartet )에서 활동한 것으로 잘 알..

1963년, 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

사라 본Sarah Vaughan의 낡은 테잎을 선배가 하는 까페에 주고 난 다음, 난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그녀의 앨범을 샀다. 영화 때문에 나온 '2 for 1' 모 음집. 예전부터 들어왔던 음악이 영화나 광고 때문에 유명해지 면 기분이 나빠지기 일쑤다. 누군가에게 음악을 추천하면 대체 로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똑같은 음악이 영화나 광고에 서 유명해지면 내가 권했다는 사실을 잊고선 그 음반을 사선, 이 음악 좋지 않냐고 내게 말한다. 이건 소설이나 책 따위도 마찬가지다. 내가 말하면 잘 듣지도 않다가 교수나 유명한 작 가가 이 책 좋으니 읽어보라고 하면 바로 산다. * * '1963년에 이파네마 아가씨는 이런 식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1982년의 이파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