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7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마크 피셔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The Weird and The Eerie 마크 피셔(지음), 안현주(옮김), 구픽 마크 피셔Mark Fisher의 대표작은 이다. 마크 피셔를 읽겠다면, 보다 이 낫겠다. 나 또한 아직 읽지 않았지만. 내가 마크 피셔를 알게 된 계기는, Slow Cancellation of the Future라는 표현(에 나온 문구라는... 이 책은 번역되지 않았고 아마존 위시리스트에만 올라가 있을 뿐이다)때문이었다. 어떤 맥락에서 이 표현이 나왔는지 잊어버렸지만, 적어도 21세기 초반 젊은 세대들이 마주한 어떤 분위기라고나 할까. 얼마 전 치러진 선거도 이러한 분위기가 반영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야당에 대한 지지보다는 여당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반영된... 여튼 마크 피셔가 궁금하던 차에..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김승곤 외 지음, 홍디자인출판부, 2000년 몇 개의 논문은 읽을 만하다. 가령 최인진의 같은 논문은 이런 논문집이 아니곤 읽을 일이 거의 없다. 특히 3부에 실린 세 편의 논문, 이경률의 , 박주석의 , 최봉림의 는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대체로 재미없었다. 논문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김승곤 선생 회갑 기념 논문집'이라는 부제에 어울리지 않게 신변잡기적인 에세이가 실려 있기도 했다. 책의 출간년도가 2000년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한국의 사진 비평이나 이론의 수준이 딱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걸까. 한국 사진 이론의 변천을 전문적으로 다루지도 못하고 그 때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이들에게서 글을 받아 모은, 그냥 진짜 '기념 논문집'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구입한..

보이지 않는 용, 데이브 하키

보이지 않는 용 The Invisible Dragon: Essays on Beauty 데이브 하키(지음), 박대정(옮김), 마음산책, 2011년 몇 번 읽다가 만 책이다. 구입하려고 목록에 올려놓았다가 다른 책들에 밀려 결국 사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에 속한 몇몇 보기 어려운 작품을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책이기도 하다. X PortfolioRobert Mapplethorpe (United States, 1946-1989)1978Photographs; portfoliosBlack clamshell case with gelatin silver photographsClosed: 14 13/16 x 14 x 1 15/16 in. (37.62 x 35.56 x 4.92 cm); Ope..

파울 첼란 / 유대화된 독일인들 사이에서, 장 볼락

파울 첼란 / 유대화된 독일인들 사이에서 Paul Celan / unter judaisierten Deutschen 장 볼락Jean Bollack(지음), 윤정민(옮김), 에디투스, 2017 로 잘 알려진 파울 첼란의 연구서가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놀라운 일이다. 마흔아홉의 나이에 파리 센 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시인. 아우슈비츠에서 부모를 잃고 그 자신도 구사일생으로 유대인수용소에서 살아난 사람.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라고 말한 아도르노가 그 말을 번복하게 만든 작가. 하지만 시집을 읽지 않는 시대, 한국 시인도 잘 알지 못하는 요즘, 파울 첼란의 시를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이 때, 이 책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이다. 파울 첼란의 시는 쉽지 않다. 하지만 ..

(정치)평론가의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지금 페이스북은 정치 싸움 중이다. 각자 편을 나누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야기를 퍼다 나른다.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있다. 나라의 미래를 여는 즐거운 이벤트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한국의 정치 지형은 너무 형편없고 몇 명의 후보는 누가 봐도 함량미달인데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만만치 않다(일부 국민의 정치에 대한 이해나 식견이 한참 모자른다고 볼 수 밖에 업다고 말하는 너무 심한가. 하긴 트럼프도 만만치 않았으니, 여기나 거기나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도덕 수준은 형편없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정치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나이가 들수록 정치에 대한 이해나 분석력이나 판단이 희미해지는 듯 싶다. 이럴 때일수록 정치학자나 정치평론가, 전문가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도정일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도정일(지음), 문학동네 도정일 교수의 산문집을 읽었다. 다소(혹은 매우) 실망이다. 여러 일간지와 저널에, 마치 마감 시간에 쫓겨 쓴 듯한 짧은 글들의 모음이기 때문이고 대부분 지면에 실린 지 꽤 지났다. 다만 저자가 워낙 유명한 지라, 글 읽는 재미가 없다거나 형편없진 않다. 도리어 다른 책들보다 훨씬 낫다. 글들 대부분 짧고 금방 읽힌다. 대신 깊이 있는 통찰을 느끼기엔 글들이 너무 짧고 그 때 그 당시에 읽어야 하는 시평時評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90년대에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떠나 서글픔마저 느끼게 만든다. 옛날 글 읽는 느낌이 이런 걸까. 몇몇 인용문들은 기억해둘 만했고 다소 긴 분량을 가진 몇 편의 글은 충분히 읽을..

해석에 반대한다, 수잔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 수잔 손택 지음, 이민아 옮김/이후 수잔 손택을 알게 된 것은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을 통해서였다. 가라타니 고진은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을 인용하면서 근대 일본 문학을 이야기했다. 아마 내가 문학 이론서를 읽으면서, 최초로 감탄했던 책은 가라타니 고진의 책이 아니었나 싶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문학 비평가들의 책이 아니라. 한국의 문학 비평가들의 책을 종종 읽지만,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나, 작품의 결을 파악해 나가는 방식이나, 작품과는 무관하게 서술되거나 인용되는 이론들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긴 수작으로 평가받은 고진의 책이나 수잔 손택의 이 책과 비교해 말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젊은 날의 수잔 손택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