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6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

형태의 삶 Vie des Formes 앙리 포시용 Henri Focillon (지음), 강영주(옮김), 학고재, 2001 앙리 포시용의 책은 책을 따라간다. 프랭크 커모드(Frank Kermode)의 (문학과지성사, 1993)을 읽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책이 바로 앙리 포시용의 이었다. 프랭크 커모드는 앙리 포시용을 인용하면서 종말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갔다. 그 때, 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외국 서적을 구하기 쉽지 않았고, 더구나 앙리 포시용을 읽기는 커녕, 앙리 포시용을 아는 이조차 없었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미술작품은 시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면서도 영원에 속해있다. 미술작품은 특별하고 지엽적이고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성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술작품은 이 다양한 의미에서 군림한다. 뿐만..

만남을 찾아서, 이우환

만남을 찾아서 - 현대미술의 시작 이우환(지음), 김혜신(옮김), 학고재 번역자인 김혜신 교수에 따르면, 이 책에 실린 이우환의 글들은 주로 1960년대 말 쓰여졌다고 한다. 60년대 말에 출간된 이 책을 2000년에 일본에서 재 출간하였고, 2011년에 한국의 학고재에서 한글로 번역, 출판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당시 이 책은 일본 미술계의 ‘태풍이면서 바이블’이었다. 우리는 이우환이 세계적인 예술가의 반열에 올라섰음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탁월한 미술 비평가이자 이론가이며 일본 현대 미술에서도 그 위상이 대단한다는 사실은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일본어로 글을 쓰는 시인이자 산문가이며, 그의 일부 글은 일본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인정 받고 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I'M NOT A PINE TREE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 윤석남 개인전, 학고재

I'M NOT A PINE TREE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YUN SUKNAM 윤석남10.16 - 11.24, 2013, 학고재 Hakgojae 너와 11-초록으로 물들고 싶어, 113.5x57.5cm, 2013. 제공 | 학고재갤러리출처: http://news.sportsseoul.com/read/life/1254774.htm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품이 있다. 윤석남의 작품들이 그렇다. 몇 주 전 오랜만에 나간 주말 나들이에서 만난 윤석남의 작품은 어수선하던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했다. 그녀의 작품은 어머니 지구(가이아)로부터 뻗어져 나와 모든 존재에 깃든 모성의 흔적, 혹은 그리움을 담고 있었다. '나무'라는 소재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에는 그녀의 작품은 나무의 느낌은 뒤로 밀리고 그 위에 그려진..

팀 아이텔 Tim Eitel

Tim Eitel - Solo ExhibitionThe Placeholders2011. 9. 2 - 10. 23, 학고재 (이 철 지난 리뷰를 용서하시길... ) 현대는 본질적으로 외로운 시대다. 자신만만하던 데카르트적 자아가 그 본연의, 바로크적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사라진 의미 위로 부유한다. 마치 스스로의 결연한 의지로 대화하지도, 타인과의 의사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귀에는 이어폰을, 손에는 스마트폰을, 시선은 작은 액정 화면에 고정시킨 이들이 우리는 너무 자주 만나게 된다. 소니의 워크맨이 최초로 나왔을 때, 독일의 '슈피겔'(Der Spiegel) 지에선 "인간 상호 간에 의사소통도 사라질 수 있다"는 심리학자들의 의견을 실었듯이, 그러한 이들이 현대 문명 속에서 소리없이 일어나고 이젠 걷..

시원한 여름 나기를 위한 추천 전시

직장 다니는 이에게 토요일 오전만큼 금쪽 같은 시간은 없을 것입니다. 며칠 전에 사둔 원두로 드립커피를 내리고 낡은 오디오에 친숙한 선율의 모짜르트를 올리고 잠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멍하게 앉아 있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 전시를 보러 가는 것보다 계곡이나 바다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아마 전시장에서 관람객을 기다리는 큐레이터나 작가들도 마찬가지 기분이 아닐까요. 하지만 산, 계곡, 바다와 맞바꿀 만큼 흥미진진한 전시들도 있습니다. 제가 아직 보지 못한 전시입니다만,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가 있어서 이렇게 올립니다. 영국로열아카데미 대표작가전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2011.7.1 - 9.25 영국 현대 미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몇 해 전 Flash Art는 미술..

SENSITIVE SYSTEM, GALLERY HAKGOJAE

GALLERY HAKGOJAE 1988-2008 THE 20TH ANNIVERSARY EXHIBITION SENSITIVE SYSTEM LEE UFAN ROMAN OPALKA GIUSEPPE PENONE GUNTHER UECKER 비평이란 기생하는 것이다. 작품에 기생해, 작품의 진가를 알리는 핑계로, 글이 우아해지고 깊이를 가지기를 바라며 내심 글쓴이까지도 인정받기를 바라는, 기생하면서 바라지 말아야 할 것까지도 바라는 기생물이다. 많은 전시를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지만, 그 모든 경험을 글로 남기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좋은 전시, 좋은 책, 좋은 음악을 글로 남기는 것이 더 어렵다. 그냥 한 마디로, ‘가서 꼭 보세요/사서 꼭 읽으세요/반드시 들어봐야 해요’ 정도로 끝내면 안성맞춤인데, 그러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