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3

설중매

2004년에 쓴 포스팅이라니. 벌써 12년이 흘렀구나. 함민복과 채호기의 시다. *** 2004년 1월 27일 *** 강화도 어느 폐가에 들어가 산 지 꽤 지난 듯 하다. 세상의 물욕과 시의 마음은 틀리다는 생각에 인적 뜸한 곳으로 들어가버린 시인 함민복. 그의 초기 시들은 무척 유쾌하면서도 시니컬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연시들이 많아졌다. 외로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광고를 위해 지은 그의 시 "설중매"는 세상의 술에 취한 영혼을 살며시 깨우고 저기 멀리 달아나는 그리움을 조용히 잡아 세운다. 설중매 당신 그리는 마음 그림자 아무 곳에나 내릴 수 없어 눈 위에 피었습니다. 꽃 피라고 마음 흔들어 주었으니 당신인가요 흔들리는 마음마저 보여주었으니 사랑인가요 보세요 내 향기도 당신 닮아 둥그렇게 휘..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산문집, 이레 열어놓은 창으로 차가운 새벽 공기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초가을 모기까지 들어와 날 괴롭힌다. 제 철이라 핀 코스모스는 바람의 상쾌한 노래 소리에 몸을 흔들지만, 그걸 곱게 봐 줄 사람 없는 도로 한 복판에 피어 지나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모기에게 물린 발등의 자국은 어느새 사라졌지만, 모기 소리는 계속 내 귓가를 맴돌며 흘러 다닌다. 이 모든 것들은 가을이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그것도 오염된 가을이. 오염된 몇 번의 가을을 거치자, 나도 오염되었다. 이제 매우 불순한 상태로 오염된 내가 몇 달 동안 읽은 함민복 산문집. 처음은 좋았으나, 중간은 피곤했으며 끝은 알 턱 없이 슬펐다. 나는 함민복 씨를 만나본 적 없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한다. 그의 ..

우울氏의 一日

비가 온다고 하더니, 하늘은 흐리기만 할 뿐 기척이 없다. 하루 사무실에서 엎드려 잠을 잤더니 몸 여기저기가 쑤시는 듯 하다. 세수를 하고 진한 커피 한 잔을 해 마신다. 그리고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3곡을 무한 반복시켜 놓고 4월 1일 토요일의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다. 어젠 술이 고파,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예전에 많던 그 친구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며칠 전 교보문고에 가서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를 샀다. 그리고 오늘 책들이 쌓여있는 구석에서 함민복의 '우울氏의 一日'을 꺼낸다. 1990년 10월 초판, 1991년 1월 2쇄. 이 때만 해도 시집이 잘 나갔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얇게 웃는다. 우산처럼 비가 오면 가슴 확 펼쳐 사랑 한번 못 해본 쓴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