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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큐비즘에 대한 세잔의 영향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바가 없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세잔의 영향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큐비즘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현대 미술가들은 세잔의 후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아마 내가 현대 미술에 대한 긴 글을 쓴다면, 뒤샹과 세잔만으로 글의 초반을 장식할 것이다. 뒤샹은 현대 미술을 난장판으로 만든 이라면, 세잔은 현대 미술을 견고하게 만든 이다. 과거와 단절하고 현대 미술이 끊임없는 혁신을 감행하게 된 계기는 뒤샹이고, 현대 미술이 과거의 역사와 단절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현대 미술 또한 서양 미술사의 한 챕터임을 끊임없이 환기시키에 한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세잔이 될 것이다. 


그는 현대 문화의 내향성을 최초로 들어내 보이며, 우리 마음 속의 기하학에 주목했다. 고전적 현대, 혹은 모더니즘을 새로운 고전주의라고 불리게 만든 예술가이다. 그리스 고전주의,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외부에 존재하는 기하학을 찾았다면, 세잔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기하학적임을 드러냈다. 


큐비즘은 세잔의 직접적 영향 속에서 기하학주의를 전면에 드러낸다. 세잔 이후 모더니즘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기하학주의로 예술을 지배한다. 아마 연구자들은 프랑스의 누보 로망이라든가, 전후 실존주의 문학이라 이후의 문학들 속에서도 기하학주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래 피카소와 세잔의 작품을 한 번 비교해보라. 얼마나 닮아 있는지. 

(나에게 여유가 된다면, 이와 비슷한 음악과 문학 작품을 찾아 나열해볼 수 있을 텐데.. 아직 그럴 여유가 없구나.) 



Pablo Picasso, Bread and dish with fruits on the table, 1909, oil on canvas, 164 x 132.5cm, Kunstmuseum, Basel 





Paul Cezanne, Still Life, oil on canvas, 60*73cm, 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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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 일찍 나와, 세느강 옆을 걸었다.

서울은 마치 표준화, 규격화, 효율화의 전범처럼 꾸며져 있다면, 파리는 모든 것 하나하나가 다르다. 얼마 전 서울시 청사의 재건축 과정 속에서 일어난 일은 한국 문화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느강 옆을 걸으면서 보게 된 강 옆에 놓인 배들의 모양 하나하나는 각각의 개성을 살려 설계되고 장식되어 있었다.

동일한 디자인의 아파트가 여기저기 세워져 있는 서울은 꼭 20세기 초 근대주의자들의 잃어버린 로망을 되살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 보인다. 하나가 잘 되면, 그 하나를 따라하기 바쁘다. 한국 사업가들이 '벤치마킹'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문화가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 있어 세계가 놀랄 정도의 시간 단축을 보여주었지만, 개성화나 창조성의 부분으로 들어가버리자 여기저기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떠들고 있는 '잃어버린 10년'이 바로 '삐걱거리기 시작한 10년'이다. 이는 좌파(이 표현만큼 부적절한 것도 없을 텐데. 실은 전혀 좌파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편의상 사용한다.)적 정책과는 무관하다. 현 정부의 잘못된 정치적 주장이 잘못된 정책 수립과 집행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시 유예된 미래를 파리에서 보내고 있는 나는 마자랭 72번지 갤러리 프레드릭 모아장(Galerie Frederic Moisan)에서 하루의 반을 보낸다. 그리고 갤러리 닫는 시간 쯤, 오데옹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샤틀레 역에서 일드프랑스로 나가는 A4 전철로 갈아타고 뷔시 생 조지 역에서 내려 숙소가 있는 골프장 마을까지 걸어간다.

어제서야 비로소 미술관을 갔다. 미술관 앞에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은 이 곳이 19세기 중후반 미술에 있어서 거의 독보적인 컬렉션을 자랑하고 있는 뮤제 오르세임을 알게 해 주었다. 약 3시간 동안 관람을 했다. 하지만 나는 빈 노트 하나 들고 나와 하루 종일 앉아 작품 보면서 작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많은 전시와 아트페어를 다니면서 무수한 현대 작품들을 보아왔으나, 19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근대 미술 작품 앞에서 얼마나 많은 현대의 예술가들이 절망했을까 하는 생각을 들었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미술(부게로, 제롬 같은 이들) 앞에서 A3 사이즈의 정도의 작품들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매혹시켰으며 끊임없이 물결치는 위대한 예술의 바다를 창조해낸 19세기 후반의 인상주의자들과 그 후예들을 만나면서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르세를 나오는 길에 책 몇 권을 사들고 나왔다. 잠시 한국 미술에 대해 생각했다. 온통 꽃 그림들과 과일 그림들로 도배된 한국 현대 미술을 보면 얼마나 참혹스러운 기분이 드는지, 도대체 몇 명쯤이나 알까. 아니면 숲 풍경? 그러고 보면 한국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한국 미술인 셈이다.


세느강변 산책로

드가(Degas)의 조각 작품들.

조르주 쇠라의 작품들. 어쩌면 후기 인상주의자들이야 말로 현대 추상 미술의 시작을 알린 예술가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모네, 피사로, 시슬리 같은 인상주의자들을 넘어서기 위해 쇠라, 시냑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어떤 이는 일찍 죽은 조르주 쇠라를 아쉬워 하기도 한다.

Comment +2

  • skynsea 2008.10.23 16:00 신고

    혼자서 오르세 갔다가 위통이 생겨서 거의 기절해서 일층 로비에 누워 있다시피하다가 온 기억이 나는 군요.. 기절 끝에 황홀경이라니,.. 복통 중 인상파의 거장들 앞 의자에 앉아 한참을 고통과 감동의 두가지 감정이 복받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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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Cezanne
창해ABC북


모더니즘을 새로운 형태의 고전주의라고 지칭하는 까닭에는 폴 세잔과 같은 예술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인상주의 사이에서 시작해 위대한 고전적 양식으로 귀결되는 그의 예술 세계는 20세기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는 “미술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조화이다”라고 생각했고 ‘회화에서 추구하는 진실은 현실에 대한 일루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확신에 이르는 작업’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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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Napkin, and Fruit (Un coin de table)
1895-1900 (150 Kb); Oil on canvas, 47 x 56 cm (18 1/4 x 22 in); The Barnes Foundation, Merion, Pennsylvania


모더니즘 회화의 시작이라고 여겨지는 인상주의가 무수하게 조각난 빛들로, 한 순간 자신의 시각을 자극했던 풍경들로, 자신들의 캔버스를 채웠다면, 세잔은 그 빛들, 그 풍경들을 영원하고 지속적인 어떤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리는 이 경향을 ‘내면의 고전주의’라고 지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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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ont Sainte-Victoire

세잔의 작품들이 감동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질서를 질서로 담아내기 위해 그는 전혀 다른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는 색채와 붓질만으로도 입체감과 형태를 충분히 표현하였으며, 선으로 그린 데생 개념은 완전히 사라졌다. 생트빅투아르 산의 기하학적인 윤곽에서조차 선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산은 색채와 빛의 대립관계 속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색채와 빛은 산을 하늘과 대비시킨다.’

이 책은 매우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인상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제대로 읽기에는 다소 딱딱한 책이다. 그러나 조금의 노력을 기울여 사전 지식을 습득하고 난 다음 이 책을 읽는다면 세잔의 세계를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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