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39(2), 아트선재센터

지하련 2009. 5. 2. 21:07


39(2)
아트선재센터, 2008.12.6 - 2009. 2. 15




헌법 2장, 39조 2항에는 "누구든지 병역의 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 한다"는 문항이 있다. 지난 2월에 끝난 이 전시의 제목은 위 문항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 국가에 사는 국민으로, 군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터널 속에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9(2)”는 동시대 한국사진전시로 한국사회에 깊이 파고 들어있는 군사문화와 전쟁의 흔적들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5명의 사진가들로 구성되었다. 김규식, 노순택, 백승우, 이용훈, 전재홍 등 5명의 사진작가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한국 사회에서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군사문화와 전쟁의 이미지를 다양한 시각과 감각으로 포착하고 있다. 작가들은 시대에 따라서 혹은 다양한 계층에 의해서 변형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을 사진 이미지로 시각화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사진은 전략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흑백사진 인화를 하는 스트레이트 사진, 일상적인 스냅샷, 잡지나 대중매체 이미지를 차용하여 디지털 기술로 변형시키는 등의 사진의 다양한 기법들은, 이미지가 갖는 컨텍스트를 드러내게 하는 방식과 연계되어 있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은 동시대 사진이 이전의 사진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한금현, 전시도록 18쪽)



이용훈, Paradise, 잉크젯 프린트, 110×110cm, 2008


사진에 붙은 제목이 인상적이다. 실은 거칠고 피곤한 직장 생활을 하는 샐러리맨에겐 예비군 훈련은 '파라다이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흐릿하고 얼룩진 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몽환적이지 않다. 아마 다른 인물들이나 공간이 등장했다면 몽환적으로 보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군복과 군대라는 공간은 보는 이, 특히 경험해본 이들에게 몽환적으로 느끼게 해주질 않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군대 문화를 어렸을 때부터 반복해서 교육받고 훈련 받는다. 문화의 다양성에서 보자면, 군대 문화도 엄연히 하나의 문화다. 어떤 목적을 위해 다른, 대부분의 것들을 무시하는 문화. 하지만 그 문화가 나라 전체를 감싸고 돌 땐 문제가 매우 심각해진다.

김규식, Bombs, Rockets, Missiles, 잉크젯 프린트, 140×108cm, 2008


김규식의 사진은 매우 흥미로운 군대 문화의 시작을 알려준다. 그의 사진은 건조하고 딱딱하지만, 군대 문화가 어떻게 흥미를 끌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이 극적인 상징성은 현대 사진이 보여주는 것보다 이야기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음을, 그래서 과거 사진이 가졌던 여러 요소들을 과감하게 없앨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순택, “좋은, 살인”, Lambda print, 2008


군대 문화는 이미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눈치채지 못할 정도다. 노순택의 일련의 사진들은 군대 문화와 그 문화가 가지는 영향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군사주의의 극복은 비단 남성들만 이런 악몽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군대 갔다 온 아버지, 군대 갔다 온 선생님, 군대 갔다 온 친구와 애인, 군대 갔다 온 선생님, 군대 갔다 온 친구와 애인, 군대 갔다 온 선후배와 직장상사들과 부대껴 살아야 하는 여성들에게도 군사주의의 끈끈이주걱을 벗어나는 것이 절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출발점은 군사주의가 얼마나 우리 주변에 가까이 와 있는지를 인식하는 일에서부터이다." (한홍구, 전시 도록 40쪽)


그런데 군대 문화를 왜 극복해야 되는 것일까? 반대로 군대 문화를 변화시킬 순 있는 건 아닐까? 한홍구 교수의 군사주의 극복이란 어떤 의미일까?

"사진은 보여주거나 가리거나 강조하거나 은유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진가의 삶의 세계의 일부이며, 그 시선은 눈에서부터 뻗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눈의 일부이다. 그러니까 사진의 장치는 사진가들과 하나이며, 장치가 변하면 존재도 변한다. 인간과 사진 둘 다 기계이며 서로 붙어 있어서 한 쪽이 변하면 다른 쪽도 변하고, 한 쪽이 망 하면 다른 쪽도 망한다. 그러므로 사진가들이 군사 문화를 찍는다는 것은 마치 누드모델이 벌거벗고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기다리듯이 사진의 대상으로 떡하니 놓여있는 군사적인 어떤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의 존재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는 군사문화를 다른 곳에 취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영준, 전시도록 80쪽) 



백승우 “Utopia”, Digital c-type print, 2008


군대란 만일에 있을 지도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한국의 경우, 군대 문화가 급속도로 퍼진 이유는 단순하다. 50년대, 60년대, 심지어 70년대까지 군대는 최고의 조직 문화, 최고의 기술력, 최고의 효율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대에서 무언가를 배워 나온 사람들이 이 나라 곳곳을 (경제적 관점에서) 일으켜 세운 것이다. 고대 로마 제국도 하나의 군대가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가 이루어진 나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군대 문화가 가지는 효율성 밑의 폭력성, 비합리성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극복이란 그것을 먼저 인식하는 일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사진가들은 보여주는 것에서 머물지 않는다. 적극적인 현실 개입, 서사로 이야기하기를 통해 군대 문화의 현재, 과거를 보여주면서 우리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전재홍, 목포일본영사관, 전남 목포시 대의동 목포 개항 이후 1900년에 건립된 일본영사관 본관,

젤라틴 실버프린트, 50×60cm,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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