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의 글을 쓰다 ... 프린트한 종이 더미 사이에 넣어버렸다. 혼자 쓰는 글이라는 게 마감 같은 게 있으리 없고, 돈벌이도 아닌 탓에, 쓰다만 몇 개의 글, 쓰다만 몇 개의 소설은 계속 짊어진 채 하루하루 살고 있는 셈이다.
오늘은 사무실에 칼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을 가지고 왔다. 어제 잠 들기 전에 서두와 역자 후기를 읽었고, 한동안 가방 속에 머물게 될 것이다.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존재론의 새로운 길>>을 읽다가 '철학자가 처한 현실'과 그것에 대한 사유와 실천의 관계 등에 대해 생각했고, 칼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까지 이어진 것이다.
작년 말 헤겔의 <<법철학>> 서문을 다시 읽었고, 뭐랄까, 뭔가 답답함을 느꼈다고 할까, ... 그런 기분을 느꼈다.
마르크스는 헤겔이 개념적 파악을 위해 정치적 현실을 논리화해 버렸다고 비판한다. 헤겔에서는 "사유를 정치적 규정들 속에서 구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전하는 정치적 규정들을 추상적 사유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이다. 사태의 논리가 아니라 논리의 사태가 철학의 계기이다. 논리가 국가를 증명하는 데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가 논리를 증명하는 데 봉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르크스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헤겔의 <<법철학>>이 이러한 비판을 받을 만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 강유원, '옮긴이후기' 중에서
그런데 저 지적은 철학 전반에 걸쳐 이루어질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르트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철학은 존재자에 대한 앎이 없이는 실천적인 과제에도 접근할 수 없다. (중략) 사실 모든 기술은 자연의 법칙성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토대로 하여 성립한다. 마찬가지로 의술은 생물학적인 지식 위에, 정치술은 역사적 지식 위에 구축된다. 철학에 있어서도 사정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그 대상이 보편적인 것, 즉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계 전체를 포괄한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조바심을 누르고 숙고의 길을 찾으며 또한 뒤로 멀찍이 물러서는 일 또한 서슴지 않는 것, 요구 사항이 시급하고 과제가 절박했을 때조차 바로 그렇게 했던 것이 언제나 독일 정신의 강점이었다'
- N. 하르트만, <<존재론의 새로운 길>> 중에서
현실에서 한 발 뒤로 떨어져 사태를 관망하고 사유하고 반성하는 것. 그것이 철학의 길인 셈이다.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의 사상으로서의 철학은 현실이 그 형성과정을 종료하여 확고한 모습을 갖추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시간 속에 나타난다.(Als der Gedanke der Welt erscheint sie in der Zeit, nachdem die Wirklischkeit ihren Bilduingsprozess vollendet und sich fertig gemacht hat.)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ammerung ihren Flug.)
- 헤겔, <<법철학>> 서문 중에서(임석진 역, 한길사)
이제서야 철학과 실천 사이의 묘한 긴장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된 셈이다. 눈 앞의 사태를 두고도 철학자는 사유한다. 그 사태가 끝날 무렵에서야 뭐라고 말하지만, 이미 현실적인 사태는 끝이 나 있을 무렵이고, 정리정돈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때까지 멀리 떨어져 있던 어떤 이가 와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참견을 한다. 현실 속에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힌 사람들 사이로 들어와선. 그런데 니콜라이 하르트만은 이것이 '독일 정신의 강점'이라고 이야기하며, 그 이전의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앞에서 마르크스는 얼마나 절망했을까. 현실 앞에선 아무 것도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없는 독일 정신을 가지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실 한 가운데에서 정확한 판단과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실은 현실 한 가운데에서도, 현실의 변두리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불가능하다는 게 현대 이론의 정설이다. 그러니 현대란 반-이론의 시대이고 합리적인 것들이란 믿을 수 없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으며, 의사결정이란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뒤로 유예되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반-헤겔주의와 반-마르크스주의가 동시에 휩쓴 시대라고 할까. 그러니 이론과 실천이라는 테마도 고리타분한 것이 되어버렸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관찰한다는 것이고 관찰하는 것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철학자들이 걸어온 길을 되새기는 것이며 끊임없이 성찰하고 반성하여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되지만, 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것 또한 철학이기도 하다.
결국 남는 건 나이고, 내 삶이고, 내 사유뿐이다. 그것이 시뮬라크르로 남든 간에. 그래서 이제서야 철학책이 제대로 읽히는 것일까.
* 위에서 언급된 책들
니콜라이 하르트만 저, 존재론의 새로운 길, 손동현 역, 서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