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건축 - 상 -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다빈치 |
정통 현대건축의 금욕적인 표현에 건축가들이 이제 더는 주눅들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순수한 것'보다는 이것저것 뒤섞인 혼성품이, '정확하고 깔끔한' 것보다는 적절히 타협한 것이, '쉽고 단순한' 것보다는 한 번 비튼 것이, '분명하게 표현된' 것보다는 애매한 것이, (... ...)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보다는 관습적인 평범한 것이, 배제하는 것보다는 수용하는 것이, 혁신적이면서도 남겨진 흔적을 지닌 것이, 직접적이고 명쾌한 것보다는 모순에 가득 차 있으며 불분명한 것이 좋다. 나는 명확한 통일감보다는 너저분해도 생동감 있는 것을 중시한다. 나는 불합리성을 인정하고 이중성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나는 의미가 명료한 것보다는 의미가 풍부한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기능만큼이나 내부에 감춰진 기능이 좋다. 그리고 둘 중 어느 하나를 고르기보다는 둘 모두를, 즉 흑이냐 백이냐 선택하기보다는 흑과 백 모두, 때로는 회색을 택한다.
- 로버트 벤투리, "건축의 다양성과 대립성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1966) 중에서 (<<내 마음의 건축>>, 상권 67쪽에서 재인용)
출처: http://www.paperny.com/venturi.html
1월에 읽은 책을 이제서야 블로그에 옮긴다. 하지만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 상하권으로 나누어진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내 마음의 건축'은 잔잔하고 서정적이면서도 현대 건축이 우리에게, 혹은 그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어느 새 우리 주변에는 딱딱하고 건조하기만 한 건물들로 빼곡하게 둘러쳐져 있다. 획일화된 아파트들, 사무용 빌딩들, 도시는 딱딱해져가고 사람들은 대화보다 침묵을 먼저 배우기 시작했다. 풍경의 일부로서의 건축이 아니라 풍경과 건축은 별도의 영역을 가지며, 즉물적인 풍경마저도 도시 안에선 무의미하게 방치되었다.
이런 세태에, 요시후미의 이 책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우리가 살아가는 곳의, 우리가 생활하는 - 잠 자고 먹고 마시며, 책을 읽기도 하고 잠시 앉아서 쉬기도 하는 공간으로서의 건축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해준다.
특히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의 '어머니의 집Mother's House'는 현대 건축, 혹은 기하학적인 공간이 어떻게 우리 일상과 만나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요시후미는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을 소개하며 책을 읽고 보관하는 공간에 대해 사색하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향수'에 등장한 폐허가 된 성당 - 산 갈가노 성당 Abbazia di San Galgano 을 찾아가기도 하고, 안동 하회 마을에서 지내면서, 정작 우리는 잊고 지내던 옛 조선 건축에 대해 칭찬하기도 한다.
책은 도판을 위해 크고 양장으로 제작되었으나, 글은 짧고 여유로우며 진솔하다. 도판은 풍부해서 저자가 소개하는 건물의 다양한 면면을 확인할 수 있어 좋다. 기회가 닿는다면, 이 책 읽기를 권한다.
하권에 대한 리뷰
2012/03/11 - [책들의 우주/예술] - 내 마음의 건축 - 하, 나카무라 요시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