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주말의 (이미 죽은) 보르헤스 氏

지하련 2014. 5. 26. 08:44






나이가 한참 든 독신자에게 사랑의 도래는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 선물이다. 기적은 조건을 제시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 '울리카' 중에서, 보르헤스 


새삼스럽게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무표정한 행인들의 얼굴 밑으로 주체할 수 없는 표정들의 집합체를 읽어낸다. 실은 내 얼굴도 그렇다. 


주말 동안 틈틈히 보르헤스의 <<셰익스피어의 기억>>을 읽었다. 정확하게 보르헤스의 소설을 집중해서 읽은 건 대학 이후 처음이었다. 중국 속담 중에 '회화는 나이 든 사람의 예술이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데이비드 호크니가 나에게 이야기해주었지만, 나는 '위대한 소설은 나이 든 이들의 위안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문득 집에서 내 마음대로 문을 잠그고 혼자 있는 공간이 화장실 밖에 없다는 사실이 놀랍도록 슬펐고 놀랍도록 기뻤다.  이렇게 사십 대의 나는 분열되고 있(었)다. 


나이 든 보르헤스는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실은 그것 자체가 은유이고 상징이며 알레고리다. 그리고 그것 - 나는 쪼개져 나들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고 있어요 - 을 이야기하는 순간 '위대하고 아름다운 정신병'이 된다.  


무너질 듯 쓰러지지 않는 서가를 바라보고 내가 살아오는 동안 쌓아올린 것들의 부질없음을 보며 ... 약간 외로워졌을 뿐, 주말 (이미 죽은) 보르헤스 氏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죽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모두 죽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곤 한다. 

-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중에서, 보르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