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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업을 넘어 … 위대한 기업으로, 짐 콜린스

지하련 2004. 4. 20. 23:49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 10점
짐 콜린스 지음, 이무열 옮김/김영사


좋은 기업을 넘어 …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
짐 콜린스 지음, 이무열 옮김, 김영사



행복하게 돈을 벌고 있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행복해지기 위해 사람들은 먼저 돈을 번다. 이렇듯 돈을 벌고 있다는 것과 행복과 연결되는 이유는 돈을 가지고 있어야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믿어지는 어떤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행복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 투덜대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렇다면 행복하게 돈을 버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점에서 기독교 윤리는 무척 좋은 점이 있다. 현세에서의 돈벌이가 신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아마 교회 다니는 이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텐데, 이런 생각은 고작 몇 백 년 되지도 않았고 루터나 칼뱅이 등장하기 전에는 이교도의 교리로 생각될 정도로 위험한 생각이었다.

짐 콜린스의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를 떠올리게 된 이유는 우리가 흔히 돈 잘 버는 사람들에게 보여진다고 믿어지는 활발한 사교술, 유창한 화술, 약삭빠름, 어느 정도의 허세, 어느 곳에 가서도 자신을 내보일 줄 아는 자신만만함이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조용한 성격에 어눌한 화술이지만, 정직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며 언제나 자신은 뒤로 숨는, 그리고 실패했을 땐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이가 위대한 기업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었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바, 신중하고 사려 깊으며 다른 이를 먼저 생각하는 이의 태도가 바로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리더의 조건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주장이 옳다 그르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앗아가고 있으며 앗아가고 말 것이라 예상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끝까지 살아남아 앞을 향해 나아가게 될 때, 이러한 이들이 그것을 지탱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들도 끝내 씁쓸해할 것이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리더를 단계 5의 리더쉽(level 5 leadership)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사람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할 일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일이든지 능히 해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지 일이 먼저 있는 것은 아니다는 말이다. 그리고 냉혹한 사실을 직시하라(그러나 믿음은 잃지 마라)라고 주문한다. 사람들은 뭔가 잘 풀린다 싶으면 그것에 대해 맹신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구절을 옮겨본다.


스톡데일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 간 수용소에 갇혀 있는 동안에 20여 차례의 고문을 당하면서, 전쟁포로의 권리도 보장 받지 못하고 정해진 석방일자도 없고 심지어는 살아남아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상태로 전쟁을 견뎌 냈다. 그는 수용소 내의 통솔 책임을 떠맡아, 자신을 체포한 사람들과 포로들을 선전에 이용하려는 그들의 시도에 맞서 싸우며, 가능한 한 많은 포로들이 큰 부상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했다. 한 번은 자신이 '훌륭한 대우를 받는 포로'의 사례로 비디오테이프에 찍히는 걸 피하기 위해 의자로 내리치고 면도날로 자신을 베는 등 고의로 자해를 하기도 했다.
(중략)
거듭된 고문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스톡데일의 뻣뻣한 다리가 절뚝거리며 연신 원호를 그려 댔다. 백 미터쯤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내가 물었다.
"견뎌 내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그가 말했다.
"아, 그건 간단하지요. 낙관주의자들입니다."
"낙관주의자요? 이해가 안 가는데요."
"낙관주의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갈 거야' 하고 말하던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오고 크리스마스가 갑니다. 그러면 그들은 '부활절까지는 나갈 거야'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부활절이 오고 다시 부활절이 가지요. 다음에는 추수감사절, 그리고는 다시 크리스마스를 고대합니다. 그러다가 상심해서 죽지요."
또 한 차례의 긴 침묵이 더 많은 걸음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그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건 매우 중요한 교훈입니다. 결국에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 결단코 실패할 리는 없다는 믿음과 그게 무엇이든 눈앞에 닫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규율을 결코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133쪽에서 135쪽)


스톡데일의 사례를 빗대어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을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짐 콜린스를 말한다.


그리고 당신이 깊은 열정을 가진 일, 당신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일, 당신의 경제 엔진을 움직이는 것을 고려한 비즈니스를 하라고 말한다. 이를 '고슴도치 컨셉'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회사 내에서 규율의 문화를 만들어야 된다고 말한다. 이는 행동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규율 있는 사고까지 요구하는 것이다.

기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기술이 유도하는 변화는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진짜 문제는 기술의 역할이 뭐냐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도약한 기업들이 기술에 대해 어떻게 달리 생각하느냐 하는 데 있다." 그래서 이러한 기업들은 기술에 열광하거나 기술이 주도한 어떤 변화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기술과는 떨어져서 기술에 대해서 신중하게 살펴본 뒤, 필요한 부분만을 자신의 비즈니스에 응용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짐 콜린스는 위에서 말한 몇 가지 기준들을 지속적으로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은 모순된 부분이 없지 않다. 짐 콜린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해선 기업의 재무적인 활동에서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정신적인 활동(이 단어가 적절한 지는 잘 모르겠지만)까지도 위대해져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너무 위험한 생각이다. 왜냐면 모든 기업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며 모든 기업이 그렇게 한다면 모든 기업이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리고 돈 벌이에만 혈안이 되어버린 한국의 기업가들을 보면서 짐 콜린스의 이 책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하는 어떤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꽤 좋은 책이다.

요즘 학자들은 거대 담론을 싫어하고 미시적 수준에서만 이야기하기를 즐기지만, 우리는 계속 거대 담론에 대응하여 미시적으로 분석해나가야 한다. 이 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솔직히 말해 미시담론이 유행하게 된 것은 지식인들의 패배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왜냐면 거대한 이야기를 다루기에는 그들 스스로 힘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나 힘이 없다는 것과 해야 할 것과의 구분은 언제나 명확하다.

짐 콜린스의 이 책은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첫 번째, 데이터를 기초로 작성되었다는 점. 둘째, 그 스스로 자신의 논리 속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런 점에서 한상복의 <한국의 부자들>은 여러모로 참 안타까운 책이다). 단 주의할 점이 있는데, 짐 콜린스의 주장은 기업활동에만 국한된 것이며, 지극히 미국적 상황 속에서 기술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적인 기업활동을 수행하는 것과 이 세계의 미래를 위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일이라는 점이다. 이를 염두해 두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