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배움에 관하여, 강남순

지하련 2019. 10. 20. 23:23




배움에 관하여 -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 

강남순(지음), 동녘, 2017 



"두려움과 떨림으로 당신 자신의 구원을 끊임없이 이루어 내십시오.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 빌리보서 2장 12절

- 키아케고르, <<두려움과 떨림>> 중에서 



얼마 전 '인문학 유행과 인문학적 사고'라는 짧은 포스팅 하나를 올렸다. 어느 신문 칼럼에서 인용된 강남순 교수의  글이 상당히 시사적이라 올린 포스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읽기 전에는 딱딱하고 건조한 이론서로 생각했는데, 막상 읽고 보니 짧은 글들을 모은 산문집이었다. 하지만 짧은 글이라고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인문학적인 통찰이 묻어났다. 다양한 학자들을 인용하였으며, 자신이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드러내며, 이를 뒤받침하기 위한 다양한 인용과 이야기를 덧붙였다. 자연스럽게 최근에 읽은 심보선의 산문집과 비교하게 되었으나,  강남순 교수의 이 책이 더 뛰어난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심보선의 책도 나쁘지 않았으나, 시인으로서의 그와 사회학자로서의 그 사이에서 살짝 어정쩡한 문장들의 글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는 강남순 교수의 글과 같이 짧으나, 단단하고 깊은 사고를 보여주는 글을 더 좋아한다. 아니면 볼프강 보르헤르트처럼 아예 서정적이거나. 


아래는 책을 읽으며 인상적인 구절들이다.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책이다. 그만큼 읽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 강남순 교수의 다른 책들도 한 번 찾아 읽어야겠다. 



알베르 까뮈는 그의 <시지프스 신화>에서 "자살이야말로 가장 진지한 철학적 주제"라고 말했다. 까뮈에 의하면 자살이란 "삶이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고백"이며, 그 고백은 "부조리의 감정 feeling of absurdity"과 연결되어 있다. 까뮈는 시지프스와 같이 무한한 일상성의 반복이 주는 공허함, 부조리, 허무를 넘어서는 용기를 갖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자살은 이러한 용기의 부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109쪽) 


"무관심은 인류에 대한 범죄의 시작이다. " - 자크 데리다. 


우분투ubuntu는 아프리카 응구니족의 말로, 한 단어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분투 철학은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 인해 비로소 한사람이다. A person is a person through other persons"라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우리의 인간됨이란 타자의 인간됨과 분리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272쪽) 


영어로 된 영화가 한국말로 더빙이 되어 나올 때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남편은 부인에게 반말을, 부인은 남편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으로 번역이 된다는 점이다. 원어에는 자취도 없는 관계의 위계가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덧붙여지는 것이다. (358쪽) 


공항은 또는 공적 환대와 적대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가를 경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내가 누구인가를 증명해내야 하는 여권 등 다양한 증명서를 통해서 내가 '환대의 대상'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적대의 대상'이 될 것인가가 국가 권력 기구에 의하여 결정되는 '권력의 공간'이기도 하다. (59쪽)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하나의 타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완벽하다. 예민성을 지닌 사람 The tender soul은 이 세계에서 한 곳에서만 애정을 고정시켰고, 강한 사람은 모든 장소를 애정으로 확장했고, 완전한 인간은 자신의 고향을 소멸시켰다. " -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한나 아렌트는 죽음을 의미하는 모탈리티mortality를 넘어서서, 탄생을 의미하는 네이털리티natality를 자신의 중요한 철학적 개념으로 삼는다. 자신에 대한 사랑, 타자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한 사랑은 누구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 즉 네이털리티란 생물학적 탄생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렌트는 세 종류의 탄생성, 즉 사실적factual, 정치적political, 이론적 theoretical 탄생성을 구분하여 분석한다. 사실적 탄생성이란 인간의 생물학적 탄생을 의미하며, 정치적 탄생성이란 정치적 자유와 해방을 위한 공적 공간에서의 정신적 탄생성을 의미한다. 또한 이론적 탄생성이란 인간의 내면 세계가 지닌 희망적 능력으로서 인간의 사유thinking, 의지willing, 판단 judging이 작동하는 탄생성이다. 이러한 탄생성은 나 자신은 물론 이 세계에 대한 사랑을 이루어내기 위한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과 연계되어 있다. (344쪽) 


"질문은 해답보다 심오하다. Questions are more profound than ans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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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교수를 잘 알 수 있는 기사 하나. 

"감신대가 버린 강남순, 미국 대학이 모셔간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7084 





배움에 관하여 - 10점
강남순 지음/동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