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처음 만난 오키나와, 기시 마사히코

지하련 2021. 4. 11. 16:45


처음 만난 오키나와

기시 마사히코(지음), 심정명(옮김), 한뼘책상

 

 

기시 마사히코의 책은 몇 해 전 읽었다.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사회학 이론서만 읽다가 제대로 사회학을 읽었다는 느낌을 주었던 책이었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골랐는데, 과연 그런 책일까 싶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아마도 류큐 왕국을 1609년에 무력으로 제압했을 때부터 일본인에게는 오키나와에 대한 식민주의적인 감각이 있어왔다. (235쪽) 

 

일본과 오키나와의 관계는 한 마디로 말해 차별적 관계다. 우리는 오키나와를 차별하고 있다. (24쪽) 

 

차별이란 단순하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벽을 쌓고 거리를 둔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쪽 편과 저쪽 편의 구별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경계선을 긋는 것, 벽을 쌓는 것이 차별의 가장 본질적인 행위이다. 차별이란 먼저 선긋기이다. (25쪽) 

 

이미지 아래 Naha라고 적힌 곳이 오키나와Okinawa다. 

 

류큐 왕국이 일본의 속국이 된 1609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오키나와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 있었다.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이미 지역-도시와 시골-을 차별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패트릭 스미스, <<일본의 재구성>>(마티) 참조), 그냥 오키나와는 일본 안의 다른 나라다. 류큐왕국부터 오키나와 전투, 현재의 미군 기지까지. 이런 것들을 막연히 알고 있었고 조금은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에,  오키나와에 대한 기시 마사히코의 이 책을 꺼내 읽었다.

 

지상전이 시작되고나서 근처에 살던 친척들이 모여 스물 몇 명이서 나하를 출발했는데, 최종적으로 남부의 어딘가에서 미군 병사의 포로가 됐을 무렵에는 다섯 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길가에는 아직 살아있지만 움직일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가 내내 들려왔다고 한다. (142쪽)

 

오키나와 전쟁이 한창일 때 미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가마라 불리는 동굴에 많은 주민들이 피난했다. 어린 아이나 아기가 큰 소리로 울부짖으면 그 소리 때문에 적에게 들킨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신들의 아이와 아기를 제 손을 죽였다. 그런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그리고 죽이라고 명령한 사람들 대다수가 일본군 병사였다고 한다. (143쪽)

 

하지만 오키나와 전투와 관련된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도리어 한국전쟁을 떠올렸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상황들은 한국전쟁 속에서, 혹은 그 전후로 벌어진 일들에 비하면 어쩌면 약하지 않나, 폭력성이나 잔혹함으로 따지자면 한국전쟁 동안 벌어진 일들이 더 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어느 사학자의 견해대로 조선이라는 나라는 세계 역사 상 유일하게 같은 민족을 노비(노예)로 삼았던 곳이었으며, 한국전쟁은 같은 민족 내에서 벌어진 전쟁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명 피해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적인 일들을 일어났음을 우리는 벌써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들을 잊지 말고 두 번 다시 그런 비극을 만들지 말기를 희망하며,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책무가 학자들이나 저널리스트들에게 있다고 여겨지지만. 나는 그런 책이나 기사를 제대로 읽어본 본 적이 없다. 더구나 해마다 6월 25일이 되면 그 때 벌어진 무수한 비극 대신 전투에서 승리한 것만 싣고 있으니(솔직히 같은 민족끼리 싸워놓고 누가 이겼다는 게 뭐 자랑할 일이라고).

 

기시 마사히코의 이 책은, 그가 어떻게 오키나아와 만났는지에 대한 소박한 에세이에 가깝다. 사회학적인 접근이라기 보다는, 그런 학문적인 목적으로 여러 차례 오키나와를 오가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 그리고 그들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를 옮기며,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사이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오키나와와 일본은 분단되어 있다. 둘 사이에는 경계선이 존재한다. 개개의 인생에서 그 경계선을 뛰어넘거나 상대화하는 경험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유동성이나 다양성 이야기를 들은 뒤조차 역시 그 경계선시 흔들리는 일은 없다. (228쪽)

 

확실히 현재 오키나와 사회의 출발점에는 오키나와 전투의 경험이 있다. (156쪽)

 

우리는 걸핏하면 차별이나 빈곤에 고통받는 오키나와인, 기지피해로 괴로워하는 오키나와인을 그리고 만다. 하지만 현장에 깊이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면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더 복잡하고 유동적인 현실을 그리게 된다. (172쪽)

 

우리들 나이차는 오키나와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오키나와라는 장소의 특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면 멈출 줄을 모른다. 그 독특한 문화에 대해, 일본과는 다른 역사에 대해, 그 전근대적인 관습에 대해 우리는 하염없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오키나와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오키나와를 더 잘 안다고 진지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188쪽)

 

우리는 오키나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 곳이 일본 안에 있으면서도 일본과는 다른, 내부의 타자이기 때문이다. (192쪽) 

 

저 '사랑한다'라는 표현이 어색하다. 대부분의 일본 본토인들은 오키나와를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과 보이지 않는 차별은 다른 종류일 것이다. 한국도 이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역 차별이라는 게 존재했으니.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어쩌면 이건 전 세계적인 현상일 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읽은 알렉산다르 헤몬의 <<나의 삶이라는 책>>에서도 그런 차별은 있었으니까. 그러니 차별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이니, 이런 차별을 넘어서는 사상이나 태도같은 것을 연구하고 전파시키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기시 마사히코의, 그런 노력이 투영된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짧고 소박하여 금방 읽히지만, 그렇게 읽지 못할 묵직한 내용들도 포함하고 있어, 아마 쉽게 읽어나가지 못할 것이다. 늘 그렇듯이 기시 마사히코의 책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처음 만난 오키나와 - 10점
기시 마사히코 지음, 심정명 옮김/한뼘책방

 

 

* <<일본의 재구성>> : intempus.tistory.com/967

 

일본의 재구성, 패트릭 스미스

일본의 재구성 -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옮김/마티 일본의 재구성 패트릭 스미스(지음), 노시내(옮김), 마티, 2008 1. 일본과 한국, 그 닮음에 대해 이 책을 읽고 있는, 그리고 읽었던 일본인은

intempus.tistory.com

*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 intempus.tistory.com/2183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들

intempus.tistory.com

 

* <<나의 삶이라는 책>> : intempus.tistory.com/2470 

 

나의 삶이라는 책, 알렉산다르 헤몬

나의 삶이라는 책 The Book of My Life 알렉산다르 헤몬Aleksandar Hemon(지음), 이동교(옮김), 은행나무 나는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 151쪽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서 아는 건 거의 없다...

intempus.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