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 윌리스 파울리

지하련 2021. 10. 2. 22:59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 Rimbaud and Jim Morrison: The Rebel as Poet

월리스 파울리 Wallace Fowlie(지음), 이양준(옮김), 민미디어, 2001년

 

 

 

듀크대학의 불문학 교수인 윌리스 파울리는 랭보를 사랑했던 짐 모리슨을 기억하기 위해 이 책을 쓴다. 락스타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파리에서 시인을 꿈꾸었던 짐 모리슨을, 자신이 평생을 읽고 연구했던 프랑스의 시인 랭보와 비교하면서. 

 

그래서 이 책은 랭보 소개서라기 보다는 짐 모리슨에 더 시선이 가지만, 나에게 더 재미있었던 부분은 파울리 교수가 랭보의 시편에 대해 설명하던 챕터였다. 솔직히 그 동안 랭보에 대한 많은 글들-한글로 된-을 읽었으나, 윌리스 파울리 교수가 이 책에서 들려주는 랭보가 가장 흥미진진했다고 할까. 아마 외국 시인들에 대한 소개나 분석, 비평은 턱없이 부족한 한국 문학계의 현실일 테지만. 

 

랭보에게 있어 시 쓰기는 견자로서 자신이 본 세계를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었고, 이를 통해 그는 천사의 캐릭터, 주변과의 관계를 일절 끊고 오로지 고독 속으로 침잠한 인간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영적 세계와 물적 세계에는 뚜렷한 경계선이 없다. 천사와 인간은 동시에 창조된다. 천사들은 순수한 영들이며 신과 세상 사이의 중간자들이다. 천사와 인간과의 관계는 너무나도 밀접해서 자신의 천성 속에서 천사적 속성을 발굴하여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노력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를 ‘천사주의angelism’라고도 하는데, 자신의 자아를 확장하고자 노력하고 지성보다는 직관에 의해 지식을 얻는 천사적 형태이다. (137쪽)

 

<<일뤼미나시옹>>의 명석 정연한 구조는 니체가 그리스 조각의 예를 들어 설명했던 조화미를 창조하는 아폴로적 힘의 입증물이며, 시 속에서 등장하는 풍경들과 도시들과 꿈들의 붕괴는 술취한 디오니소스가 가하는 광포한 위협의 한 형태이다. (135쪽)

 

하지만 이 책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은 랭보 연구서가 아니라 짐 모리슨을 기억하기 위해, 그가 사랑했던 랭보를 이야기하며 시인을 꿈꾸며 글을 썼던, 예술가로서의 짐 모리슨을 되돌아보고 있음을 잊지 말자(랭보를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는 뜻).

 

이 모든 예들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예술 작품을 재간 있게 반영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의 성향의 흔적을 비춰 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마조키스트들이다. 그들이 지닌 단점들, 그들이 시달리는 대상, 그들이 지닌 강박관념 등은 그들이 빚어내는 예술작품들을 비춰 주는 빛이 되고 구성하는 내용물이 된다. 흔히 예술은 진실을 밝히는 행위로 정의 내려지곤 한다. 이에 따라 예술은 예술가와 그의 세계를 설명해 준다. 한편 예술은 신비한 존재이기도 하다. 나르시스는 물 위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 속으로 제 몸을 던지지만 그는 거기에 수반된 신비의 개념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어째서 나르시스는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일까? 나르시스의 신화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고, 그 신비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예술은 추한 존재에게도 매력을 부여하고 아름다움을 가져다 준다. 그것은 예술이 지닌 힘이며 자랑거리이다. 예술은 질곡이라는 진리, 예술가가 빚어낸 예술 작품은 길이길이 남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삶은 포기해 한다는 가혹한 운명을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예술가의 운명의 가혹함은 키츠나 밀턴 뿐 아니라 어느 록 싱어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213쪽~214쪽)

 

월리스 파울리(1908~1998)

 

아직도 The Doors를 듣는 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The Doors는 한 시대 젊은이들을 매혹시켰던 락 밴드였다. 또한 짐 모리슨을 중심으로 결성된 밴드였으니, 짐 모리슨이 죽은 후에는 그냥 사라진 밴드였다. 

 

세 번째 앨범의 첫 번째 싱글은 <이봐, 사랑해 Hello, I Love You>였고, 두 번째 싱글은 <무명 용사The Unknown Soldier>였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라 / 그때쯤이면 우리도 조금 더 나이 들어 있겠지 ... / 무명 용사에게는 모든 게 다 끝나버렸네 (Wait until the war is over / And we're both a little older ... / And it's all over for unknown soldier).' 이 곡은 반전가(反戰歌)였다. 그럼에도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도어스의 노래를 들었기 때문에 배트남 전쟁이 '로큰롤 전쟁'으로 불려진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67쪽) 

 

세 번째 앨범, Waiting for the Sun



월리스 파울리 교수가 영어로 번역한 랭보 시집

 

사족이지만 이런 책을 찾아 번역한 사람이나, 오래 전에 번역된 이 책을 어렵게 구해 읽는 사람이나 ... 그리고 아직도 아마존에서 팔리고 있는 걸 보면 ... 도어스 음악 들으며 술 마신 게 언제였는지 기억에 없구나.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음악이 있지. 하나는 우리 영혼을 위로해주는 알콜 뮤직. 그리고 알콜 뮤직이 아닌 나머지 것들. 그리고 도어스의 모든 음악은 진정한 알콜 뮤직이라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부르는. 

 

현재 책은 구할 수 없고 재출간되지도 않을 듯 싶다. 헌책으로는 구할 수 있을 것이나, 도어스 팬에게만 권할 만하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