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지하련 2022. 6. 3. 08:11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지음), 송태욱(옮김), 자음과모음 

 

재미있게 읽었다. 의외로 금방 읽을 수 있다. 일본 학자의 책들은 의외로 쉽고 명쾌하게 읽힌다. 가라타니 고진도 마찬가지이고 사사키 아타루도 그렇다. 이와 반대로 한국 학자들의 책은 상당히 어렵고 난해하며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는 나조차 어렵다. 실은 쉽게 씌여진 책은 너무 뻔한 이야기만 적고 있어 시간이 아깝고 깊이를 가진 듯한 책은 이 학자는 자신도 알고 쓴 것일까, 그 스스로도 이 단어나 이 개념을 제대로 알고 쓴 것일까 되묻게 된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한국 학자가 쓴 책에는 손을 대지 않고 번역서에만 손이 갔다. 다만 이건 내가 한창 공부할 때이니, 지금 나오는 책은 어떤지 잘 모른다. 최근 읽은 책도 별로 없고. 조금 나아졌을 것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야전과 영원>>이라는 책으로 주목을 받은 일본의 철학자이다. <<야전과 영원>>이 그의 주저라고 한다면, 이 책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문학과 혁명의 관계를 다섯 번에 걸쳐 이야기하는 짧은 에세이에 가깝다. 하지만 이 에세이가 던지는 주장은 조금은 과격하고 확실한 문학중심주의의 입장을 취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추천을 받았을 지도. 

 

아타루는 글을 읽는다는 행위를 주목하며 여기에서부터 혁명이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루터의 종교 개혁도 루터가 성서를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근대 혁명도 중세 신학자들이 읽고 해석하는 행위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말한다. 

 

들뢰즈는 철학이란 개념concept의 창조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개념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애초에 '잉태된 것conceptus'이라는 뜻입니다. '개념으로 한다, 개념화한다conception'이라는 말도 '임신conceptio'이라는 말에서 유래합니다. '마리아의 수태'는 'conceptio Mariae'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개념화conceptio에 의해 산출된 개념인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것 두가지가 있습니다. 통상 신학 문헌에서 첫머리가 대문자로 쓰인 말Verbe은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또한 그리스도교 세계 전체를 '그리스도교 공동체corpus Christianum'이라 합니다만, 전통적으로 이것은 세계로 크게 확산되는 '그리스도의 신체corpus Christi' 자체로 여기고 있습니다. 구성원을 멤버라고 하는데, 이것은 애초에 사지四肢, membrum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성원(멤버)들은 구체적인 그리스도 신체의 사지인 것입니다. 즉 말인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개념이고, 그 개념은 '세계' 자체의 신체입니다. 개념, 임신, 그것은 세계를 다시 낳는 것입니다. (31쪽) 

 

그는 신학에서부터 근대가 구성된다고 말한다. 책 초반에 나오는 위 문장도 <넷째 밤, 우리에게는 보인다. 중세 해석자 혁명을 넘어>에서 더 구체화된다. 종교로부터 시작되어 글(문자)을 읽고 쓰는 것의 반복이며, 이것이 혁명, 혹은 혁명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읽으며, 강유원의 <<책과 세계>>를 떠올렸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오늘날의 사람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책을 읽는 이는 전체 숫자에 비해서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하고 있다 하여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압도적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소수의 책 읽는 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음모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사사키 아타루는 음모가 아닌 혁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래는 책을 읽으면서 메모해둔 것이다.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니, 한 번 읽기를 권한다. 

 

문학이란 영어로 literature입니다만, 라틴어 litteratura가 이식된 것은 프랑스어littérature가 먼저이고 거기에서 다시 영어에 도입되었습니다. 프랑스어littérature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2세기, 그리고 영어 literature가 나타난 것은 14세기입니다. 어원은 라틴어 '문자littera'입니다. 프랑스어로 되었던, 당초에 이것은 먼저 쓰는 것, 쓰는 방법 그리고 읽고 쓰는데 필요한 문학적 학식 일반을 의미했습니다. 다음으로 어떤 문제에 대해 공간公刊된 저작의 총체를 의미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문헌'이나 '서지'에 가깝겠지요. (53쪽)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근원이다, 라고. 루터는 문학자였습니다. 말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상 최대의 혁명가였습니다. (105쪽) 

 

그것은 무엇보다도 책을 읽는 것,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 이야기하는 것을 둘러싼 혁명이고, 언어에서의 언어 변혁이었습니다. (109쪽) 

 

지금까지 우리는 장황하게,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이며 폭력은 이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다고 이야기해왔습니다. 읽는 것,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하는 힘의 근원이라고도 했습니다. (172쪽) 

 

피에르 르장드르의 독창적인 사고의 핵심은 여기에 있는다.즉 그는 국가의 본질을 폭력이나 경제적 이익으로 줄여버리지 않습니다. 국가의 본질이란 "재생산 = 번식을 보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아이를 낳아 기르는 물질적, 제도적, 상징적 준비를 갖추고 대비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입니다. (1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