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
유제프 차프스키(지음), 류재화(옮김), 밤의책
프루스트에 관한 이 에세이는 1940~1941년 겨울 그랴조베츠 포로수용소에서, 우리가 식당으로 쓰던 어느 수도원의 차가운 방에서 구술된 것이다. (9쪽)
프루스트를 읽다만 사람에게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동경이자, 길 떠나기 전의 휴식이다. 이 달콤한 휴식으로 나는 먼 길의 여정에 쉽게 오를 수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너무 긴 분량 탓에 손을 대지 못했고, 손을 대는 순간 순식간에 빨려 들어갈 것같아 주저거렸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불과 십여년 전부터이지, 그 전, 지금보다 한창 젊을 때는, 제대로 된 번역서도 없었고 그 번역서를 막상 꺼내 읽어보면 재미도 없었다. 실은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더라도 재미없었을 것이다. 때로 어떤 문학들은 나이와 경험을 강하게 요구하는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책을 쓴 차프스키는 오로지 기억만을 가지고 프루스트를 이야기한다. 하긴 발자크의 소설을 외웠다는 프루스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책은 한국의 여느 불문학 선생들보다 더 폭넓은 시야에서 프루스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프루스트는1890년부터 1900년까지는 자신의 문학과 세계관을 수련하고 발전시켰으며, 1904년 또는 1905년부터 1923년에 걸쳐 모든 작품을 창조했다. 프랑스 문학과 예술운동에 있어 이 시기는 무엇을 표상하고 있는가? (43쪽)
잠시 회고해보자. 1889년 자연주의의 수장인 에밀 졸라의 제자들이 반反자연주의 선언을 한 해로, 반자연주의 운동은 자연주의 진영은 물론 그 수장인 졸라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스테판 말라르메와 모리스 마테를링크로 대표되는 상징파의 시대가 온 것이다. 말라르메는 프루스트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교사이기도 했다.
또한 1890~1900년대는 인상주의가 승리한 시기였다. 존 러스킨이 소개한 이탈리아 프리미티비즘이 인기를 얻은 해였으며, 프랑스에서는 특히 바그너의 음악이 유행했다. 인상주의의 몇몇 요소는 발전을 거듭했다. 엄밀히 말하면, 인상주의의 지나친 자연주의적 감각에 반발하여 신인상주의가 시작되었다. 음악에서는 드뷔시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드뷔시의 음악은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회화와 결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또 <<창조적 진화>>라는 저작으로 명성을 얻은 앙리 베르그송이 콜레주드프랑스에서 연속 강의를 하던 때였다. 연극계의 정점에는 여전히 사라 베르나르가 있었다. 한편 1900년 이후의 러시아 음악이 새롭게 조명되었다. 눈부신장신의 오리엔탈리즘풍 연출이 돋보이는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가 인기를 끌었으며, 뒤이어 모데스트 모소륵스키, 레온 박스트 그리고 <세에라자드>가 등장했다. 오페라계는 <펠리아스와 메리장드>같은 작품으로 명성을 떨친 마테를링크와 드뷔시가 장악했다. (43~44쪽)
(사실주의의 마지막 단계라 할) 자연주의와 그 대척점에 있는 상징주의는 19세기 말에 무척 풍부하고도 미묘하며 다양한 예술운동을 만들어냈다. 둘은 서로 부딪히고 얽히면서 깊이 상호 작용했지만, 교과서에는 이런 흐름이 너무 제한적인 분류로 도식화되어 있을 뿐이다. 말라르메는 자연주의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공쿠르 형제와 평생 교류했으며, 졸라와도 가까이 지냈다. 특히 졸라는, 만일 자신에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기꺼이 '말라르메'처럼 되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말라르메에게서 발견한 시적 요소들이 자신의 자연주의 이론과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화가 드가는 말라르메와 내밀하게 사귄 친구였다. 이른바 양립 불가능한 것들이 서로 얽혀서 짜여 있던 당시 예술의 형식을 훨씬 고양된 형태로 표현한 것이 바로 드가였다. 드가는 들라크루와와 앵그르를 함께 좋아하고 찬미했다. (45쪽)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저자는 프루스트의 생애와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 그리고 문장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많은 부분 프루스트에 집중하며 전개되어 작품을 너무 프루스트의 개인적 에피소드와 너무 연결지어 해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마저도 한국어 독자에겐 귀한 것일 테다.
프루스트는 베르그송의 강의를 들으러 다니는 데 열심이었다. 베르그송의 강의는 1890~1900년 무렵 프랑스에 거대한 파도같이 밀려온 사유 경향을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로는, 프루스트는 베르그송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다. 작품 제목만 보아도 그 시대가 문제 삼고 있던 '시간'이라는 주제에 프루스트가 심취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67쪽)
생명은 연속적이며 우리의 지각은 불연속적이라고 베르그송은 단언한다. 따라서 우리의 지성은 그것이 생명에 들어맞을 때만 생명의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생명에 훨씬 잘 들어맞는 것은 지성이 아니라 직감이다(인간에게 직감이란 동물의 본능에 해당하는 것이다!) 프루스트는 지각의 불연속성을 무의지적 기억과 본능적 직감으로 극복하려 했다. 이 두 가지가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관점으로 생의 연속성에 대한 인상을 얻을 수 있다. (68쪽)
프루스트의 독자가 되어 일견 모노톤의 흐름 같은 글 속에 들어가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인물들에, 다시 말해 그들의 삶이 한 번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에 놀라게 된다. 프루스트가 가지고 있던 자기 작품에 대한 최초의 계획은 그가 바라던 외적 형태로는 구현되지 못했다. 당초 프루스트는 이 거대한 "합合, somme"을 행갈이나 여백 없이, 그리고 장章이나 부部 없이 '단 한 권'으로 나타내고 싶어했다. 하나 이 계획은 파리의 '교양 있는' 출판사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69쪽)
위 설명에 의하면 애초부터 베르그송 철학의 영향권 아래에서 프루스트의 소설들이 집필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베르그송 강의를 들으러 다녔음을 나 또한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어쩌면 시간에 대한 관심은 인상주의 이후 문학, 예술, 철학 전반에 걸쳐 거대한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이 하나임을. 이 점에서 현대 문학은 현대 물리학의 성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아니면 누군가 지금 쓰고 있는데, 나는 아직 미처 알지 못하거나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있거나. 몇 명의 소설가 이름이 떠오르긴 하지만...).
프루스트는 작품 집필에 들어가면 작은 소리도 참지 못했다. 생애 마지막 몇 해 동안 그는 벽 전체를 코르크로 덮은 방의, 피아노 바로 옆에 붙여놓은 침대에서 거의 누워 지냈다. 책들이 피아노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침대 옆 탁자는 약봉지와 신경질적으로 쓴 듯 싶은 원고들로 그득했다. 프루스트는 오른쪽 팔꿈치에 몸을 기대고 누워서, 다시 말해 가장 불편한 자세로 글을 썼는데, 어느 편지에 썼듯 그에게는 "글을 쓰는 것이 순교"같았다. (51쪽)
프루스트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 그 작품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이 책의 저자 유제프 차프스키는 왜 포로수용소에서 프루스트 강의를 했던 것일까. 살아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건 무엇인가. 차프스키는 포로수용소에서 프루스트를 통해 우리 삶의 존재 이유를 묻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프루스트를 읽으려고 하는 이유 또한 그러할 것이며,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또한 ...
그로부터 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값비싼 상처와 고독으로 증가되는 자각"이라는 동인動因밖에 없는 까닭이다. (119쪽)
결국 값비싼 상처와 고독으로 증가되는 자각으로 나는 오늘 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다.
유제프 차프스키(1896 ~ 1993). 폴란드 출신의 화가이자 작가. 아래는 그의 <<해질녁>>이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