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프랜 리보위츠
프랜 리보위츠(지음), 우아름(옮김), 문학동네
(살짝 기대를 품고 읽기 시작했으나, 어딘가 이상하게 읽히지 않았다. 번역이 이상했다. 번역된 글을 미루어보건대 상당히 시니컬하고 자신의 주장은 단정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유머러스할 것이라 여겨졌다. 그리고 읽어나갈수록 번역이 원문의 느낌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리의 숨바꼭질'이라는 제목에 대한 의심이 그 시작이었다. 리보위츠스럽지 않은 소제목이랄까. 그래서 그냥 목차부터 찾아보았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조금 의견을 적었다. 벌써 삼분의일 정도 읽었는데, ... 그리고 이 번역서로 리보위츠를 오해하지 말기를.)
읽히지 않았어. 읽히지 않는다를 넘어, 이렇게 재미없진 않았을 텐데. 이렇게 재미없어서야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재미없다니. 리보위츠의 명성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나. 아씨. 한국의 MZ세대에게 뒤늦게 주목받은 작가라고 하던데, 나도 MZ세대가 좋아라 하는 그런 작가를 읽고 싶단 말이야. 그런데 번역도 좀 이상한 것같아. 그래서 결국 미국의 Open Library를 통해 The Fran Lebowitz Reader를 꺼내 목차부터 읽기 시작했어(도서관에선 딱 목차만 보여주네, 이런). 아, 그런데 목차부터 이상한 번역이잖아!
나의 하루: 소개라면 소개랄까 - My Day: An Introduction of Sorts의 번역이라고 하기엔 너무 쉽게 번역한 거 아닌가. 소개랄까와 An Introduction은 전혀 다르단 말이야. An Introduction은 딱! 하고 닫히잖아. 랄까는 뭔가 리보위츠스럽지 않아. Sorts를 옮기기 어렵군. 하루를 시간대별로 쪼개서 자신을 소개하는 글이니, 시간으로 분류된 소개. 이렇게 번역해야 되나. 아니면 시간으로 구분된 안내. Sorts에 시간이라는 뜻은 없으니.. 그냥 조각들의 소개 정도로 해야 되나. 이런 고민 때문에 번역은 참 어렵다.
올바른 태도 - 단수 manner는 확실히 가치판단이 없는 것같아. 하지만 manners는 복수이면서 뭔가 집합명사의 느낌을 주지. 그래서 예의범절의 뜻을 가지는 것같아. 나도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올바른 태도는 아니지 않나. 올바른 태도는 예의범절을 잘 지키는 것이랑 같은 말이지, 예의범절은 아니잖아.
진정한 야심가를 위한 천직 안내 - Vocational Guidance for the Truly Ambitious. 구글 번역은 "진정한 야심가를 위한 직업 지도", 파파고 번역은 "진정한 야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직업 안내". 따라서 Vocational을 천직으로 옮기는 건 너무 과도한 번역이 아닐까 싶은.
현대 스포츠 - Modern Sports. 이건 그냥 모던 스포츠로 옮겼으면. 한글의 현대는 Contemporary(동시대)라는 느낌도 같이 있어서 그냥 모던이라고 옮기는 게 더 나은데.
피는 못 속여: 가족 치료법 - Breeding will tell: A Family Treatment. Breeding이 가족 내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훈육을 의미하는 것이니, 결국 피는 못 속이는 건가. 그리고 Treatment는 치료라기 보다는 대우에 가깝지 않을까. 글 내용도 그렇고.
디스코 팁: 새로운 에티켓 - Disco Hints : The New Etiquette. 아, 팁은 영어로 tip. 여긴 hints. 디스코 힌트로 옮겨야지. tip은 무언가를 하기 위한 조언이라면 hints는 살짝 숨겨서 알려주는 작은 실마리같은 것이 아닐까. 전혀 느낌이 다르잖아. ;;;
읽어야 산다: 의견 수정안 - Better read than dead : A Revised Opinion. 이런 문장 때문에 번역이 한계를 가지는 것이다. dead와 read는 철자 하나만 다르다. 초역을 하자면 '죽는 것보다 더 나은 읽기: 수정된 의견' 정도로 옮길 수 있을 게다. 문제는 원문에는 '산다'는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dead라는 단어 때문에 '산다'라는 단어로 옮긴 것같은데... 반대되는 단어라서 산다라고 한 듯 싶지만, 산다는 정반대의 단어라 다르게 해석되는 건 아닐까.
가족 계획: 교훈을 주는 이야기 - The Family Affair: A Moral Tale. 아, ... Affair를 계획으로 옮기다니. Affair라는 단어는 뭔가 세간의 주목을 받을 만한 사건이나 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외교적인 비화나 떠들썩한 연애, 불륜, 정사 같은 걸 뜻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걸 계획으로 옮기는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는 걸까.
진리의 숨바꼭질: 난 괜찮지만 넌 아냐 - Guide and Seek : I'm OK, You're Not. 원문에는 진리라는 단어가 없다. 진리는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리보위츠가 진리 같은 걸 좋아할 것같진 않은데. 그리고 숨바꼭질의 느낌도 없는데. 안내하고 찾는다지, 누군가(무언가)는 숨고 누군가를 찾는다가 아닌데.
나도 영어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책 번역은 좀 ... 이걸 번역을 하기 위해 노력한 번역자의 문제라기 보다는 번역된 글에 대해 같이 봐주고 조언을 주지 못한 편집자의 문제에 더 가까워 보인다. 내일 리보위츠의 글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얼마나 재미있기에 MZ세대가 열광하는지. (나는 이 기사를 어디서 읽은 거지....) 아무래도 출판사 보도자료인 것같지만.
혹시 직업 번역가가 아니라 오해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번역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리보위츠 스타일은 어떤 것인지 대강 짐작은 간다. 그래서 이 글을 쓴 것이다. The Family Affair를 읽어보면 엄청 시니컬하다. 술집이 등장하고 술집에서 경찰을 향해 아이들이 우유병을 집어드는 것이 묘사된다. 이건 계획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이걸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