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미셸 포르트(지음), 신유진(옮김), 1984북스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했을 때,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다. 더듬어 보니 그녀의 소설은 딱 한 권 읽었다. 더 있을 듯한데, 기록된 것은 <<부끄러움>>뿐이었다. 이 소설에 대한 내 평가도 평범해서 금세 잊혀진 소설이었다. 그 당시 읽었던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나 미셸 투르니에와 비교한다면 정말 재미없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 소설은 아니 에르노에게 있어 자신의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린 작품이었음을 이 인터뷰집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바로 글이에요. 글은 하나의 장소이죠. 비물질적인 장소. 제가 상상의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기억과 현실의 글쓰기 역시 하나의 도피방식이에요. 다른 곳에 있는 거죠. 항상 글쓰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바로 침수하는 장면이에요. 내가 아닌, 그러나 나를 거친, 현실 속으로의 침수. 저의 경험은 통과의 경험, 그리고 사회 세계의 분리의 경험이죠. 이 분리는 현실에서 존재해요. 공간의 분리. 교육시스템의 분이. 별로 아는 것 하나 없이 16살에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에, 어떤 아이들은 25세까지 교육을 받아요. 사회 세계의 분리와 저라는 존재를 통과한 분리 사이에는 상응하는 것이 있고 우연의 형태가 있어서, 저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제 인생에 흥미를 갖는 일이 아닌, 이 분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일이 되게 만들어요. (80쪽)
아니 에르노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아니 에르노의 세계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준다고 할까. 아니 에르노는 이 책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자란 가정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자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비추어진 존재랄까.
결국 최종적으로 - 어쩌면 12살에 부모님이 나에 대해 했던 말 <<저 애는 늘 책만 파고 있어>>에 대한 응답인 것일까 - 글쓰기는 <<진정한 나만의 장소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 곳은 내가 자리한 모든 장소들 중에서 유일하게 비물질적인 장소이며, 어느 곳이라고 지정할 수 없지만 나는 어쨌든 그 곳에 그 모든 장소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11쪽)
일종의 극복으로, 혹은 탈출로서의 글쓰기라고 할까. 그러면서 상처를 드러내며 치유해나가는 과정으로서의 글, 창작. 이 책에서 읽게 된 아니 에르노는 그런 모습이었다.
사실상 무엇인가에 대해 쓰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깐요. (20쪽)
글을 쓰는 것은 이름이나 사람으로서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니에요. 시선의 흔적을 남기는 거죠. 세상에 대한 시선이요. (94쪽)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자신이 있기까지의 배경, 현재의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측면들. 그리고 그 존재가 있는 공간, 그 공간을 향한 시선들까지.
단지 하루하루를 살면서 간직하고 싶은 이미지들을 붙잡고 싶은 욕구였죠. 프랑프리(Franprix) 계산대의 한 남자. 동네의 작은 광장에 있는 아이들. 그것이 이 구역을 제 것으로 만들어 가는 하나의 방식이었고, 커다란 면적에 흩어져 있는, 매우 다양한 인구 구성원들에게 더 다가가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요. (19쪽)
우리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의 인터뷰라고 하면, 뭔가 철학적이고 대단히 사회비판적이거나 문화적으로도 풍성한 인터뷰를 기대하게 되는데, 이 책에서 비친 아니 에르노는,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고 있는 듯해보였다. 어쩌면 이런 지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녀의 소설들로 인해 인정받은 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저 역시 글쓰기가 조금은 기부 같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무엇을 주는지는 알지 못해요. 그건 모르죠. 우리가 주는 것에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가져가는지도 모르고요. 또 그들이 거부할 수도 있죠.(1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