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
룰루 밀러(지음), 정지인(옮김), 곰출판
의외의 반전을 숨기고 있는 이 책은 이토록 찬사를 받을 만한가에 대해선 의문스럽지만, 미국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소 의외의 주제이기도 하거니와 서술 방식으로 다소 혼란스럽다. 자신의 사랑과 성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여정과 스탠포드대학의 초대 총장을 지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쫓아가는 과정이 서로 나란히 서술되면서 독자는 다소 혼란스럽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책 후반부의 반전이 너무 큰 탓에, 도리어 이러한 불편한 전개가 그 반전을 더욱 부각시키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기에 굳이 이러한 서술 방식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는 듯 싶다. 나 또한 이런저런 추천으로 이 책을 읽었고 거의 십년만에 재개된 독서모임의 첫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앞서 말했지만, 이 책은 자신의 성장, 사랑, 상실, 발견에 대한 이야기와 미국 스탠포드 대학 초대 총장이었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야기가 병행되어 진행된다.
다윈은 이렇게 썼다. “이종교배한 종들은 무조건 생식능력이 없다고도, 붙임성이 창조주가 부여한 특별한 자질이자 창조의 신호라고도 주장할 수 없다.” 이윽고 다윈은 종이, 그리고 사실상 분류학자들이 본질적으로 불변의 것이라 믿었던 그 모든 복잡한 분류 단계(속, 과, 목, 강 등)가 인간의 발명품일 뿐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끊임없이 진행되는 진화의 흐름 주위에 인간이 우리 ’편리’하자고 유용하지만 자의적인 선들을 그었다는 것이다. 그는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이라고 썼다. 다윈에 따르면 자연에는 가장자리도, 불변의 경계선도 없다. (67쪽)
하지만 이 책에서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어류 분류를 쫓아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류라는 생물의 분류가 없다는 건 최근의 일이다. 우리는 최근에서야 공룡들에게 깃털이 있었으며, 이들의 진정한 후손들이 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물고기들 또한 그냥 바다 속에 산다고 해서, 생김새가 비슷하다고 해서 동일한 분류에 속한 것이 아니라 아예 '어류'라는 분류 자체를 만들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가 가져 마땅한 미치광이들이 생겨난다.” 영국의 역사가 로이 포터Roy Porter가 언젠가 쓴 말이다. (146쪽)
하지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극단주의를 향하기도 한다. 책은 낙천주의와 자기 기만을 이야기하며 잘못된 생각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연 속의 혼돈에서 시작해 질서를 부여하는 과정 속에서 생겨난 잘못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저자 스스로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긍정하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거쳤는지 이야기하듯,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언급한다.
그래서 그는 책을 하나 쓰기 시작했다. 자선과 호의가 “부적합자 생존”을 초래하는 일이라 믿고, 그러한 자선의 위험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경각심을 심어주는 게 그 책을 쓰는 목적이었다. 전 세계에서 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이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이라고 권고하는 책, 겨우 몇십 년 전에 처음 생겨난 한 단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책이었다. ‘그 단어’는 그가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미국에서 그리 인기가 없는 단어였지만, 그가 지극한 열성과 과학적 권위를 갖고 옹호했던, 그리하여 그의 도움에 힘입어 미국 땅에 널리 보급된 단어, 바로 우생학eugenics이다. (181쪽)
데이비드는 <<당신의 가계도>>라는 우생학 선언서에서 “교육은 결코 유전을 대체하지 못한다”고 단언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 문제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아랍의 속담이 하나 있다. ‘아버지가 잡초이고 어머니도 잡초인데 딸에게 사프란 뿌리가 되기를 기대하는가?” (190쪽)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죽는 날까지 열광적인 우생학자로 남았다. 마지막 순간의 깨달음이나 회환을 보여주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자기 노력의 결과로 칼질을 당하고 흉터와 수치만 남은 수천 명에 대해서도, 자기 권력을 놓지 않으려 투쟁하는 와중에 짓밟힌 사람들 - 제인 스탠퍼드, 그에게 명예가 훼손된 의사들, 그가 해고한 스파이, 그에게 성도착자 소리를 들은 사서 - 에 대해서도. (201쪽)
솔직히 이 부분부터 책은 압도적인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나는 우생학이 히틀러의 독일이나 전범국가인 일본에서나 유행했던 것인줄 알았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유행했으며, 부랑자 복지 시설에서 체계적으로 불임시술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측면에서 왜 전후 한국의 복지시설에서도 이와 유사한 행위가, 거리낌 없이 자행되었는지에 대한 그 심리적 배경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성태'와 '능동태'의 개념을 악마화한 개념처럼 보였다. 근대 철학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하지만 20세기 초 일부 학자들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반동적 고대로 다시 돌아간 것이었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정리한 메모이다. 참고로 올린다.
* 독서모임 빡센은 거의 십년만에 다시 모임을 시작했다. 원년 멤버들 대부분은 연락도 잘 안 되지만. 혹시 한 달에 한 번 정도, 읽은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이들은 카페에 가입해 활동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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