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자본가의 탄생, 그레그 스타인메츠

지하련 2023. 9. 3. 15:14

 

 

자본가의 탄생 The Life and Times of Jacob Fugger

그레그 스타인메츠(지음), 노승영(옮김), 부키

 

 

푸거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서문에 나온 아래 문단만 읽어도 된다. 책은 이 요약문의 자세한 설명이며 역사적 근거와 시대적 배경을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카를이 황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푸거의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푸거는 카를이 황제가 될 수 있도록 거액의 뇌물을 빌려주었을 뿐 아니라 카를의 할아버지에게 자금을 투자해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 정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중앙 무대로 진출할 수 있게 도왔다. 푸거는 다른 분야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그는 고리대금업 금지 조치를 해제하도록 교황을 설득해 상업을 중세의 미몽에서 흔들어 깨웠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첫 대규모 충돌인 독일 농민 전쟁에서는 전쟁 자금을 지원해 자기 기업 체제의 조기 붕괴를 막기도 했다. 푸거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상업 조직이던 한자 동맹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그가 은밀하게 꾸민 금융 계략은 뜻하지 않게 루터를 격분시켜 95개조 반박문을 작성하게 했다. 이로써 촉발된 종교 개혁은 유럽 기독교 세계를 양분하는 지각 변동으로 이어졌다. 또한 푸거는 마젤란의 세계 일주를 후원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좀 더 평범한 업적을 들자면 푸거는 알프스 산맥 이북에서 처음으로 복식부기를 도입했으며, 세계 최초로 여러 영업 결과를 하나의 재무제표로 통합하기도 했다(이 혁신 덕분에 푸거는 자신의 금융 제국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으며, 자금이 어디에 있는지 늘 알 수 있었다). 감사관을 파견해 지점을 감독하게 한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또한 푸거는 뉴스 서비스를 창시해 경쟁자와 고객에 대한 정보를 보다 먼저 파악함으로써 언론의 역사에도 발자취를 남겼다. 이 모든 이유로 인해 푸거는 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사업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11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서구 근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생생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 르네상스에 대한 책들을 읽으면서 '종교개혁'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중세 후기, 근대 초기, 즉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유럽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령 아래와 같은 표현만으로 종교 전체가 타락했다고 오해할 필요는 없다. 

 

교황청을 매춘 소굴로 만들고 성대한 난교 파티를 연 호색한, 알렉산데로나 갑옷을 입고 군대를 지휘한 호전가 율리우스 (134쪽)

 

더 나아가 종교가 뒤로 물러나고 세속적 세계가 성직자의 사회를 지배했다고 믿으면 큰 오산이다. 타락하고 부패한 성직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주위의 시선 때문이라도 성실하게 미사를 집전했으며 신앙과 교회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도리어 종교의 권위를 지키면서 세속의 권력을 종교 아래 어떻게 둘 것인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막시밀리안 1세(신성 로마 제국 황제)는 이미 교황은 타락했다고 여겼으며, 도리어 자신이 교황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 책은 야고프 푸거의 일생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하나 하나 에피소드가 흥미진진해서 서양 역사, 특히 근세 초기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려주는 책이라기 보다는 도리어 근대라는 시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책에 가깝다. 도리어 야고프 푸거는 그냥 지금 옆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금융 기업가의 모습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어쩌면 자본주의라는 우리 문명의 기본적인 틀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오해할 정도다. 하지만 금융이 중심이 된 현대 자본주의가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사람들은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피렌체나 베네치아의 유력 가문만을 떠올릴 테지만, 실은 야고프 푸거만큼 후대에 영향을 끼친 이는 없었다. 

 

이런 점에서 종교개혁은 세계적인 격변기, 비잔틴제국이 몰락하고 오스만 제국이 세워지던 그 시기, 서유럽의 종교 지도자들은 동방의 오스만 제국에게 밀릴 수 없었다. 적어도 로마는 고대 로마 제국에서처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도시여야 했으며, 그 중앙에 위치한 성 베드로 성당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상상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자본이 문제다.  

 

종교개혁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교황청의 부패, 성직가의 탐욕, 교회의 세속 개입 등이 카톨릭 교회에 대한 저항에 일조했다. 하지만 도화선에 불을 붙인 사람은 푸거였다. 그는 유명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 판매의 산파노릇을 했다. (175쪽)

 

결정권은 대금업의 이자부과를 승인한 교황 레오 10세에게 있었다. 그는 부패한 시대의 부패한 교황이었다. 본명이 조반니 데 메디치인 레오는 로렌초 데 메디치의 둘째 아들이었다. (176쪽)

 

푸거는 교황의 계좌로 돈을 이체했다. 일이 성사되자 알브레히트(마인츠의 대주교)는 푸거에게 빌린 돈을 갚을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아랫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들의 안은 면죄부라는 모금수단이었다. (…) 레오는 알브레히트의 면죄부 아이디어를 대번에 좋아했다. (178쪽 ~ 179쪽)

 

교황과 카톨릭 성직자들은 푸거에게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면죄부를 팔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종교도 자본주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왔음을 이 책은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그 체제를 반대하는 흐름이 최초로 나타난 것이 종교개혁이며 더 나아가 독일 농민 전쟁이었던 셈이다(이런 측면에서 카톨릭이 아닌 현대 기독교가 더 자본주의화되어 있음은 상당히 흥미롭고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칼뱅의 예정론에 기인한 것일 테지만). 

 

1450년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처음 제작했지만 그것이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520년대 들어서부터였다. 여기에는 루터가 큰 몫을 했다. (247쪽)

 

기술은 그 기술이 나온다고 해서 바로 그 쓰임새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시대적 흐름이나 요구가 어떤 기술을 선택하는 것에 가깝고 이 점에서 루터의 여러 글들은 너무 인기가 높았다. 그래서 루터의 글들을 인쇄하기 위해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농민지도자 중 푸거에게 가장 위협적인 인물은 토마스 뮌처였다. 총을 가장 많이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포퓰리즘적 주장이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뮌처는 튀링겐 출신의 사제로, 신비주의자를 자처했으며 공동 소유를 옹호하고 사적 소유의 철폐만이 은총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 푸거와 뮌처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한 사람은 대大 자본주의자였고 한 사람은 대大공산주의자였다. 두 사람은 냉전 시기 두 경쟁 체제의 영웅이 되기도 했다. 서독은 푸거 우표를 발행했고, 동독은 5마르크 지폐에 뮌처의 얼굴을 새겼다. (283쪽)

 

독일 농민 전쟁은 후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이나 철학자들에 의해서도 언급된다. 이미 근세 초 자본주의가 시작될 무렵 이미 그 갈등은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루터는 뮌처를 적으로 여겼다. 

 

성경 말씀을 철저히 지켜 교회를 개혁하려던 루터는 뮌처를 적으로 여겼다. (284쪽)

 

아직도 푸거 가문은 독일에서도 상당한 재력을 가진 부동산 소유주로 알려져 있다. 역사상 가장 큰 재력을 가진 가문으로 푸거를 능가한 곳은 아직도 없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종교적 세계, 중세에서 어떻게 세속적 세계, 근대로 넘어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한 가운데서 다양한 자본주의적 관행과 체계를 쌓아 금융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가를 야고프 푸거는 보여주었다. 이 책은 그 야고프 푸거의 자세한 기록이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Portrait of Jakob Fugger(1459-1525), Albrecht Durer(1471-1528), tempera on canvas, 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