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9.
기록을 한다. 예전엔 종이 위에 펜으로 그리거나 썼는데, 이젠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리며 글을 쓴다. 격세지감이다. 아마 지금도 고향집 다락방엔 수십년 전, 짝사랑하던 여고생의 흔적이 남은 일기장이 먼지를 먹고 있겠지. 그 땐 참, 가슴이 너무 떨려 제대로 걷지도 못했는데. 지금도 그럴까. 그런 일이 생기면 나쁜 일이 될꺼야. 정말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진지하게 생계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탓에, 어쩌면 무심하게도 무조건 작가가 되겠다고 여겼던 탓에, 직장 생활이 가끔, 자주, 예고 없이 어색하기만 했다. 자주 회사를, 직장을 그만 두었다. 일을 못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탓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일을 잘하는 것 이상으로 책임감도 중요한데, 그걸 몰랐다. 그랬으면 가족의 생계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테니.
요즘 내 나이로 보인다는 게 너무 슬프다. 스스로 나이보단 젊게 산다고 생각했던 탓에, 나이만큼 보인다는 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지금도 나이와 무관하게, 마음은 아직 그 바람 불던 오후의 텅 빈 도로 위에 서 있는데. 그 오후에 기적이 일어났다면, 나는 어땠을까. 세상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예정된 대로 움직일 뿐이다. 이 마음조차도. 그러나 포기하지는 말자. 늙어가는 나를 위한 유일한 위로다.
09.20.
긴장과 스트레스, 피로는 내 영혼의 부피를 줄인다. 내 숨겨진 이드는 작아진 영혼 크기만큼 알코올을 원하고, 그걸 맞추려다 자주 길을 잃었고 사랑을 잃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의 표정을 보며 그 때의 나를 떠올리자 슬퍼졌다. 그 때 왜 나는 늘 혼자라고 생각했을까.
늦은 저녁 연체된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고 집으로 가는 대학생들을 보며 부러웠다. 나도 저들 사이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그러기엔 내 줄어든 영혼의 부피만큼 반비례하여 무겁고 심각해진 영혼의 무게가 걸렸다.
시집 한 권을 꺼내 소리내 읽으며 술을 마신다. 이영주의 <관측>은 참 좋다.
'(...) 수은이 빛나는 의자에서 우리는 노래를 부른다. 가사랑 상관없이 노래를 불러도 되지?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헤어지는 노래를 사랑을 담아 부른다. 뜨끈하고 이상하고 끈끈해'
그러게. 왜 우리는 연인을 만날 때마다 헤어짐을 걱정하는 걸까. 저 무한한 우주의 침묵은 아직도 우리 앞에 놓여있는 걸까.
09.21.
오전에 갑자기, 사무실 노트북의 전원이 나가는 바람에, 종일 일을 하지 못했다. 부랴부랴 노트북을 새로 받고 전원 나간 노트북 대신 집에서 사용하던 노트북 들고 와서 일을 조금하고, 고장난 노트북 분해해서 하드디스크 떼어 디스크 사이즈와 포맷을 알고 보는, 그러는 사이, 야당 대표의 체포 동의안이 가결되었다. 좀 황당했다. 현 정권과 검찰은 정치적 정적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최선을 다해 기울여왔음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동의하는 야당 국회의원이 있다는 건 좀 부끄러운 일이다. 정의당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정치판에 나오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 정부는 잠시 나라를 선진국으로 올려놓고 축포를 터뜨린 후 다시 정치적 후진국으로 만들었다. 현 정부는 전 정부의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계속 이어지는 정부다. 이 점을 알아야 한다. 이래저래 이 나라는 한동안 정말 답이 없을 듯 싶다.
한편으로, 위기는 기회다, 라고 말해보지만, ...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도 안다.
09. 22.
요즘 꿈을 많이 꾼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아니면 잦아진 음주 때문일까. 꿈을 꾸다가 깨어 이렇게 글을 업데이트한다. 어제 저녁에 동네 맥주집에서 혼자 한 잔 했다. 날이 선선하니, 야외 테이블에서 먹기 좋았다. 그럴 때, 누군가 아는 사람이 지나가 합석하면 참 좋은데, ... 나는 아직도 우연 같은 걸 기대하고 있나 보다. 피곤해서 인지, 맥주가 맛있진 않았다. 몸 컨디션에 따라 술의 맛도 달라지니, 신기한 일이다. 위스키도 그렇고 소주도 그렇고 맥주나 와인도 그렇고. 결국 내 문제다. 어쩌면 모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