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하련 2023. 10. 12. 14:08

 


한국 나이로 쉰 아홉인 데이브는 2014년 이스라엘 전투기의 가자 지구 공습으로 그의 형제들과 조카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3살된 딸과 고작 7개월 밖에 안 된 아들을 잃었다. 데이브의 가족은 이미 무수히 죽어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부일 뿐이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기독교도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다니엘 바렌보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팔레스타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이야기를 한다. 상당히 수준 높은 연주를 들려주었던 오케스트라로 유명했다고 회고하지만, 이스라엘이 생기기 전 팔레스타인과 그 이후의 팔레스타인은 다른 나라다. 팔레스타인에 이슬람교도만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쇼아 이후 많은 유태인들이 그들에게 닥친 비극을 노래하지만, 국제 정치의 결과물인 이스라엘(솔직히 19세기에 없었던 듣보잡 나라다. 사우디아라비아만큼)로 인해 겪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비극과 슬픔은 나 몰라라 한다.
 
유대교 신자만큼 꼴통 근본주의도 없다. 그들은 유대교에서 파생된 그리스도교 신자를 무시하고 경멸한다.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오랫동안 유럽에서 박해당했지만, 그들은 그들의 종교적 근본주의를 버리지 않았다. 어쩌면 히틀러는 어렸을 때 유대인 공동체의 이기적인 폐쇄성을 보면서 그들을 향한 뿌리깊은 경멸과 증오를 쌓아나갔을 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내 눈에 이슬람 근본주의와 유대교 근본주의가 묘하게 겹쳤다(한국의 개신교 근본주의는 아직 종교적 근본주의라기 보다는 이단에 가깝지만, 한국도 근본주의로 흐를까 겁난다. 몇몇 목사들의 황당한 설교 내용을 전해 들으면...)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하마스의 무력 사용에 대한, 슬프고 안타까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비극을 보지 않고 공습 당한 이스라엘만 이야기하는 걸까. 미국 하버드 대학생들의 팔레스타인 지지 선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에 뿌리내린 유대인 공동체의 피해자는 어쩌면 미국에 사는 소시민들일 테니.
 
하마스의 리더인 무함마드 데이브이다. 데이브라는 이름은 손님이라는 뜻이다. 가슴 아픈 이름이다. 전쟁의 슬픔을 이야기하기 전에 왜 이 전쟁이 시작될 수 밖에 없었는가를,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을 가진 미국과 이스라엘은 반성해야 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적지만, 세상은 사려 깊은 자들의 편이 아니다. 반대로 목소리 크고 이기적이며 성격 급한 사람들의 편이다. 역사는 한 번도 약자의 편에 선 적이 없다. 

 

이렇게 변해갈 때,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서구인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