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동네 구멍가게의 폐업

지하련 2023. 12. 2. 10:33

 

 

마지막 남은 동네 구멍가게가 문을 닫았다. 이제 내가 사는 곳 반경 1km 이내에 구멍가게는, 없다. 대형 수퍼마켓과 편의점들만 남았다. 하나 둘 있던 식당들도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간판을 바꾸고 있다. 각자의 개성은 사라지고 평준화되며 비슷비슷하게 변해간다. 익숙해지고 평범해지면서 활력을 잃어간다. 풍경의 변화가 익숙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곳엔 이젠 나무 한 그루만 남아있다. 뒷산은 그대로이지만, 산으로 들어가는 길들은 모두 변했다. 어렸을 때 집들이, 마을이 사라지는 풍경을 보았다. 논, 밭, 집들이 있던 곳은 텅빈 황토빛 대지로 변했다. 그렇게 변해가던 몇 년 동안 그 곳을 돌아다니며 수정을 모았다. 자수정 광산이 있는 창원은 땅을 파헤치면 어렵지 않게 작은 수정들을 찾을 수 있었다. 살던 집과 집에 붙어있던 밭이 개발부지로 편입되면서 텅 빈 대지로 변해가는 그 곳에서 나왔다. 

 

얼마 전에 다시 가보니, 산 아래 있었던 기무부대 건물도 폐쇄되었고 연병장엔 잡초만 무성했다. 예전 읍사무소가 있었고 5일장이 열리던 동네 옆에 있던 군대(사단)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그 곳도 이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젠 인기척도 사라진 텅 빈 채로 먼지가 쌓여가는 그 건물 옆에는 고등학교가 있었고 뒤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었다. 인구는 줄어드는데, 아파트만 늘어나는 기이한 광경을 보고, 자본주의에 대해 짧게 생각했다. 

 

아마 우리는 간단하게 좋은 변화와 나쁜 변화로 나눌 수 있을 것이고 눈 앞의, 변한 모습을 보면서 가치판단을 하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가치 판단을 그토록 싫어해지만, 인류가 이정도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가치 판단을 했고 뒤이어 행동(실천)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그런 시대도 저물어간다는 염려가 마음 한 켠에서 자라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절대로 머리 속에 다 담을 수 없는, 방대한 정보와 사례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은 단순한 가치판단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인간은 단순한(기계적) 의사결정을 정말로 기계적 매커니즘에 기반한 인공지능에게 맡길 것이다. 이런 시대에 다수의 사람들은 왜곡되고 거짓된 정보를 바탕으로, 혹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익숙하고 우호적인 경향의 정보만을 취사선택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콘텐츠 서비스에서의 개인화나 맞춤화이란 이러한 방향을 더욱 강화한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개인화/맞춤화에 대해 다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을 인류가 진화하고 문명이 발달해 왔지만, 예측가능성 바깥은 미지의, 불확실한, 우연적인, 불편하고 생경스러운 어떤 사건/존재가 주는 극적인 것을 우리는 잃어버리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로드리게즈와 같은 슈가맨(*)은 없다. 이제 우리 앞엔 어떤 변화가 펼쳐질 것인가. 그것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나쁜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내가 아는 확실한 것은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편견없이 다양한 의견을 들고 판단을 내리며 단순한 의사결정부터 참여하면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즉 끊임없이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들며 저 우연성의, 불확실성의 바다로 자신을 던지며 노력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래야만 한다. 이제 지혜란 과거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다.  

 

* 슈가맨에 대해선  https://intempus.tistory.com/1934

 

고향의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목. 이 땅은 이 곳이 논밭이었을 때 뛰어놀던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